앳된 티가 가득한 중학교 1학년생 송희, 연우, 소정은 사진동아리 '빛나리'의 부원이다. 전학을 온 시연이 빛나리에 가입해 동아리방을 찾아갔는데, 영 어색하기만 하다. 떨어진 렌즈를 찾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불빛을 비추며 도움을 주니 소정이 시연의 옆에 앉아 이것저것 묻고 답하며 이내 친구로 거듭난다.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 빛나리 부원들은 선생님이 여름방학 숙제로 내준 '세상의 끝을 사진으로 찍어오기'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한다. "세상의 끝은 어디로 가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멀리 나가본 적이 없기도 하고 막연한 두려움도 있지만, 함께 세상의 끝을 찾으러 떠나보기로 한다.
 
영화 <종착역>은 14살 중학생들의 이야기다. '어린이'라는 타이틀을 던져 버리고 '청소년'의 길로 들어서는,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나는 시기이자 다음 챕터가 시작되는 시기의 오묘한 느낌을 담았다. 짧은 휴가 같은 그때, 친구들은 어떤 의미일까? 함께 세상의 끝을 향하는 기분은 어떨까?
 
14살 동갑내기 네 친구가 세상의 끝을 찾아가 사진을 찍어오는 과제를 해결하는 게 결코 쉽진 않다. 여정도 여정이고 세상의 끝도 그렇지만, 네 친구가 따로 또 같이 고민하고 걱정하며 스트레스 받고 있는 사항들이 누구에게도 내보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함께 길을 나서니 다양한 일을 겪으며 자연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타인의 이야기를 건네받는다.
 
 영화 <종착역> 포스터.

영화 <종착역> 포스터. ⓒ 필름다빈

 
아이에게 친구는 어떤 의미일까? 가족도 아닌 데다가 나와 비슷하지만 완벽하게 타인인 또래 친구는, 난생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친해지면 어느덧 감정을 나누는 특별한 사이가 된다. 가족이 전부였던 아이의 인간관계는 사회 속으로 들어가며 친구, 선생님, 이웃들까지 확장된다.
 
그중에서도 또래 관계는 사회성 발달의 기본으로 아이에게 매우 중요하다. 사회성은 상호 주고받음이 가능한 평등 관계에서 발달하기에, 수직 관계인 부모나 선생님보다 또래 친구와의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아이들은 친구와 우정과 배려, 사랑, 갈등, 싸움, 화해 등 행동과 감정들을 주고받으며 사회성을 발달시킨다.
 
인간으로서 사회의 일원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고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인된 언어나 사고, 감정이나 행동 등을 학습하며 타인과 건전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성향이 사회성이다. 사회성이 발달하면 자신의 말이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고 조절할 수 있다.
 
사회성이 발달하면 타인과 소통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것과 친구를 사귀고 사회적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반면 사회성이 결여되면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개념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타인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걸 힘들어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걸 어려워할 수 있다.
 
친구와 놀기, 아이에겐 소중한 시간
 
대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부모는 아이의 공부보다 친구 관계를 더 걱정한다. 아이가 친구를 사귀지 못하거나 어울리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다. 그런데 아이가 성장할수록 부모의 걱정은 반대로 바뀐다. 아이가 너무 친구만 신경 써서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걱정이라고 한다.
 
부모의 걱정도 당연하지만, 친구만 찾는 아이의 행동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이의 뇌는 끊임없이 발달하는데, 정서와 동기를 담당하는 '변연계'는 10~12세 무렵 거의 성숙해진다. 반면 감정을 통제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전전두엽'은 20세가 되어서야 성숙해진다. 이 둘의 성숙 속도에 따른 혼란으로 힘들어하는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다.
 
변연계는 감정을 담당하는 곳으로, 이곳을 이루는 주된 구조물인 '편도체'는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을 추구한다. 전전두엽은 추상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를 가능케 하고, 감정이나 행동을 통제하며,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는 사회적 행동이나 감정, 언어들을 조율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다.
 
이 시기의 아이는 이전까지 '나'라는 개인을 사회에 속한 '나'로 인식하면서 타인의 시선이나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생기기 때문에 당연히 또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한 자신을 조절하고 타인과의 공감을 훈련하는 게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바로 사회성이 발달하는 것이다.
 
영화 <종착역>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는 "아, 진짜?"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누군가 말이 끝나면 무조건 "아, 진짜?" 하며 반응한다. 이 짧은 추임새는 타인의 말을 듣고 공감하는 표현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사고가 확장되는 것이다. 공감도 하고 나와 다른 생각도 이해한다.
 
세상의 끝이 대체 어디인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정하고자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서로 의견을 들으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행동과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친구 관계에 너무 신경 쓰기보다 공부에 집중해주길 바라지만, 친구 문제는 학업 성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는 거의 성숙했으나 계획하고 조절하는 이성적인 일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은 아직 미성숙 상태이니, 친구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학업에 집중하기 어렵다. 부모에겐 공부할 시간에 친구를 만나 노는 게 시간 낭비 같거나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아이들에겐 너무나도 중요한 시간인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은 친구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는 시기로, 균형 있는 발달을 위해선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성 발달은 아이들과 함께 놀며 다져지므로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오히려 아이의 친구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인간관계의 기초가 만들어지는 시기이니 말이다.
 
안정적인 애착과 불안정한 애착
 
 영화 <종착역> 스틸 이미지.

영화 <종착역>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아이가 친구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인간관계의 모습을 보여주면 애착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애착은 영유아가 주양육자에 형성하는 애정적 결속이나 정서적 유대 관계를 말한다. 아이의 첫 번째 인간관계인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애착 패턴이 향후 모든 관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기에 대인 관계의 중요한 기초가 된다.
 
안정적인 애착은 부모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때 형성될 가능성이 높고,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된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기에 친구 관계에서도 원만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반면 불안정한 애착이 형성된 경우, 친구 관계를 형성하거나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유아 시절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주양육자가 부재, 비일관적인 태도 등의 이유로 의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인식되었을 때 '저항 애착'이 형성되기 쉽다. 그렇게 형성된 저항 애착으로 친구와 관계를 형성할 때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 우정을 확인하려 하거나 과장된 애착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유아 시절 부모가 아이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거나 반응하지 못했을 때 형성되기 쉬운 '회피형 애착' 성향의 아이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쉬워 유대감 형성을 회피하고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회피와 저항 애착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혼란 애착'이 형성된 경우, 친구와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만 타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 스스로 또래 관계를 회피하는 등 친구 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다.
 
다행인 건 아이들의 뇌는 놀라울 정도로 적응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청소년기에는 뇌가 쉽게 변할 수 있다. 영유아기에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더라도 청소년기에 건강한 애착 관계 형성의 기회가 제공되면 불안정 애착을 가진 아이의 정서나 문제 행동 회복이 가능하다는 연구도 있다.
 
따라서 친구는 평생에 걸쳐 만들어갈 인간관계와 사회성의 기초이기도 하면서 변화무쌍한 시기를 함께 모험하는 동기이자 정서적 안전기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이의 친구 관계를 지켜보며 건강한 또래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야 한다.
 
사랑도 갈등도 싸움도 화해도 필요하다
 
아이가 또래 관계에서 다툼이나 갈등으로 힘들어하면, 일단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게 좋다.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인 게 아니라면, 아이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대화하며 지켜봐 주는 게 좋다.
 
아이가 나쁜 친구를 사귈까 봐, 친구 관계에서 상처받을까 봐 걱정해 모든 친구 관계에 개입할 순 없다. 아이의 사회적 발달에 반드시 좋은 친구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사랑도 갈등도 싸움도 화해도 필요하다. 직접 경험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영화 <종착역>의 네 친구는 1호선의 종착역인 신창역을 찾아 두 눈으로 세상의 끝을 확인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철로가 끝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자신들이 아는 세상에서 가장 먼 1호선 종착역에 왔지만, 철로는 이어져 있었다.
 
아이들의 세상은 종착역을 찾아 사진기에 담으며 더욱 넓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한 걸음 디딜 준비도 되었다. 자, 이제 아이들은 또 어떤 세계로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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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배우는 방법과 잘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선생입니다.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으로 석사와 박사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수업 컨설팅 및 학습 컨설팅 자격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학습 상담과 학습 프로그램 운영, 교육 콘텐츠 기획과 개발 그리고 연구 프로젝트에 다수 참여했습니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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