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페레이라(사진 왼쪽)와 이스라엘 아데산야

알렉스 페레이라(사진 왼쪽)와 이스라엘 아데산야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지난 8일 있었던 UFC 287대회는 이스라엘 아데산야(33‧나이지리아) 입장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승부의 장으로 남을 듯하다. 무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을 옭아맨 악몽의 실타래를 풀고 하늘을 향해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이전까지만 해도 아데산야는 '미들급 역대 최강'을 논하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화려한 파이팅 스타일에 비해 판정 경기가 많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스트라이커, 레슬러, 주짓떼로 등 상대 유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잡아내며 자신을 부정하는 이들과 싸워나갔다. 그런 아데산야를 곤란하게 한 파이터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알렉스 페레이라(35‧브라질)다.

페레이라에 대한 아데산야의 원한은 깊었다. 9일 시합 전까지 상대 전적 0승 3패였다. 킥복싱 무대서 2번, UFC에서 한 차례 패했으며 마지막 패배 과정에서는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까지 빼앗겼다. 아데산야는 미들급에서 12연승을 거두며 무적의 챔피언으로 군림해왔다. 더 이상 해당 체급에서는 이룰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킥복서 시절부터 그를 괴롭혔던 숙적은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킥복싱에서 따라온 페레이라는 5라운드 TKO승으로 아데산야를 무너뜨리고 벨트마저 가져갔다. 격투 스포츠에서 최정상급 선수가 특정 상대에게 내리 3연패를 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아데산야는 지난 세 번의 경기에서 분명 내용적인 면에서는 이기고 있었다. 하지만 페레이라의 전매특허인 왼손 훅이 폭발하며 막판 역전패를 허용하는 마무리를 반복했다. 페레이라의 약진과 함께 아데산야의 최강 이미지는 다시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 미들급 챔피언 이스라엘 아데산야는 자신에게 3번이나 패배를 안겨준 상대에게 설욕에 성공했다.

전 미들급 챔피언 이스라엘 아데산야는 자신에게 3번이나 패배를 안겨준 상대에게 설욕에 성공했다.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만화속 주인공처럼
 
아데산야는 애니메이션 및 영화광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옹박>을 보고 파이터의 꿈을 꾸고, 일본만화 <나루토>의 주인공 우즈마키 나루토를 가장 존경하며 <데스노트>를 즐겨봤다고 밝혔다. 유명 격투만화 <파이터 바키>의 여러 장면을 스스로 흉내내며 SNS에 올리기도 했다. 만화 속 주인공은 시련을 겪지만 이겨내고 결국 정상에 선다. 아데산야 역시 자신이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 게 아닐까. 

페레이라와의 2차전은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아무리 아데산야가 그간 이뤄놓은 게 많다고 해도 특정 상대에게 자꾸 지면 자신감이 무너진다. 2차전에서 진다면 팬들도 등을 돌릴 것이고 주최 측에서도 다른 흥행카드를 만지작거릴 공산이 컸다. 랭킹 쟁탈전에 들어가 밑에서부터 다시 치고 올라와야 되는 상황이 펼쳐지지 말란 법도 없었다.

아데산야는 자신의 상황을 에미넴 주연의 영화 < 8 마일 >에 비유했다. 시합 전에 있었던 미디어 데이에서 "이번 경기는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에미넴의 '8 마일'과 같은 순간이다. 오직 한 번의 기회가 있다. 이 기회는 평생에 한 번만 오기 때문에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라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3번이나 당했음에도 아데산야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이 한 수 위라고 생각했다. "페레이라를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매번 내가 이기고 있었는데 페레이라는 특출난 회복 능력으로 되살아나 반격했다. 그렇게 되면 딱히 방법이 없다. 의식을 완전히 끊어버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페레이라는 다른 생각을 했다. 자신이 3번이나 이겼다는 자신감은 그 무엇보다도 컸다. "아데산야는 더 이상 내 라이벌이 아니다. 난 그를 KO시켰다. 그가 싸우는 스타일을 알고, 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두 알고 있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이스라엘 아데산야에게 강펀치를 날리는 알렉스 페레이라

이스라엘 아데산야에게 강펀치를 날리는 알렉스 페레이라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3전 4기!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아데산야와 페레이라는 2차전을 앞두고 서로에 대한 전투력을 최고치까지 끌어 올렸다.

경기 전부터 아데산야는 배수의 진을 치고나온 모습이었다. 기자회견에 금속 개목걸이를 하고 나타나서는 "나는 개다. 이건 개목걸이고 이제 곧 이걸 풀어헤칠 것이다. 벨트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라며 큰소리쳤다(개는 터프하고, 거칠다는 의미로 쓰였다-기자주).

브라질 파탁소 원주민 전통 분장을 하고 나타난 페레이라는 아데산야의 도발에 "옥타곤에서 그의 개목줄을 벗긴 다음에 개처럼 두들겨 패겠다"고 받아쳤다. 결과적으로 아데산야는 3전 4기 끝에 복수에 성공했다. 아데산야는 2라운드에 다리에 데미지를 입은 척하며 페레이라를 유인했다. 직전 경기에서 다리에 충격을 받아서 스텝이 묶인 사이 맹공을 허용해 KO패한 것을 역이용한 전략이었다.

아데산야의 준비된 낚시는 성공했다. 페레이라는 절뚝거리는 아데산야를 따라 들어가 피니시를 노리고 펀치와 니킥을 퍼부었다. 그 순간을 노리고 있던 아데산야는 페레이라의 타격 빈틈을 노리고 있었고 눈에 들어왔다 싶은 순간 전광석화 같은 오른손 오버핸드훅을 날렸다. 예상치 못한 한방을 허용한 페레이라는 큰 충격을 받고 휘청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오버핸드훅이 한번 더 터지자 실신한 페레이라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아데산야는 "복수는 달콤하다고 하던데, 실제로 해보니 정말 달콤하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행복감을 느껴봤으면 좋겠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다면 무엇인가를 계속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라며 "사람들이 당신을 비난하고, 당신의 목을 짓밟을 때 그냥 가만히 있는다면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다. 용기를 내라"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페레이라, 날 이겨줘서 고맙다. 네가 날 이긴 덕분에 이제 내가 더 훌륭한 파이터가 됐다"라며 "페레이라의 이야기 속에서는 내가 빌런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내 스토리였다. 이게 역사다"라는 말로 마음의 울림을 전했다.

아데산야는 끝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고 인생의 큰 벽을 부쉈다. 그리고 이는 다른 많은 파이터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줬다.

롤모델을 보면 희망이 생긴다. 전 UFC 페더급 챔피언 맥스 할로웨이(31·미국) 또한 그렇다. 아데산야가 그랬던 것처럼 할로웨이 또한 현 챔피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34·호주)에게 무려 3번을 패했다. 현존 최강을 넘어 역대 최강을 향해 다가가고 있던 상황에서 또 다른 괴물에게 완전히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이제는 도전 자격마저 쉽게 주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할로웨이는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여전히 본인이 볼카노프스키를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최근 아데산야의 경기를 보면서 더욱 큰 힘을 얻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할로웨이처럼 용기를 전해 받은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아데산야의 승리는 격투기를 넘어서 패배에 좌절하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가 돼 준 '3전 4기'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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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전) 홀로스, 전) 올레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농구카툰 'JB 농구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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