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동계체육대회 결승전에서 우승한 경기고등학교 선수들이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전국동계체육대회 결승전에서 우승한 경기고등학교 선수들이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 박장식

 
만화 시나리오같은 명승부가 전국동계체육대회 아이스하키 결승전에서 쓰여졌다. 경기 종료 5분을 남기고 넣은 극적인 동점골이 연장전, 슛오프(승부치기)까지 이어졌다. 극적인 드라마를 써낸 주인공은 경기고등학교 선수들이었다.

지난 동계체전 기간 광교복합체육센터에서 열린 전국동계체전 아이스하키 고교부 결승전. '최강자' 경복고등학교와 '명문' 경기고등학교가 맞붙은 이날 결승전. 고교 졸업을 앞둔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 이날 결승전에서는 여느 프로 대회 못지 않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히 이번 동계체전 기간에는 하이원 아이스하키단이 해체한다는 보도와 공식 발표까지 나왔다. 상무와 대명의 잇다른 해체에 이어 한국 아이스하키의 또다른 위기가 닥쳐오던 시기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런 시기 벌어진 고교 아이스하키에서의 명승부였기에 의미 역시 더욱 깊다. 

9분 만에 터진 골... 초반 승기 잡은 경복고교

고교 대회에서 만날 때마다 뜨거운 승부를 펼쳤던 두 학교가 전국체육대회 결승에서 만났다. 첫 골은 경복고등학교에서 터졌다. 경기 시작 이후 9분 즈음 경복고의 김시환 선수가 자신의 골대 뒤에서부터 퍽을 지치고 나와 경기고 골대의 빈 틈에 쳐넣었다. 스코어 1-0.

하지만 첫 득점 이후 교착상태가 이어졌다. 13분 경에는 경기고의 이무영 선수가 반격의 슈팅에 나섰지만 막히고 말았다. 선수들 역시 1피리어드의 탐색전이 끝나자 2피리어드부터 본격적으로 파상공세에 나섰다. 점수가 열세였던 경기고 선수들이 특히 전진 공격에 나섰다.

2피리어드 경기고등학교가 기록한 유효슈팅은 10개. 특히 상대 간담을 서늘케 하는 순간도 적잖게 나왔다. 다만 상대 골리의 선방과 2피리어드 시작과 동시에 패널티 아웃으로 파워 플레이(패널티 아웃으로 2분 퇴장을 받을 때, 상대 팀이 수적 우세로 경기를 진행하는 것-기자 주)를 두 번 가량 내준 것이 컸다. 

하지만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경복고의 오은율 골리가 상대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는 세이브를 여럿 기록하며 상대의 실점을 막아냈다. 경기고의 서경민 골리도 1피리어드 실점을 내줬지만, 초반 실점을 극복하고 상대가 공격해내는 아찔한 순간을 막아내는 활약을 펼쳤다.

3피리어드까지 이런 교착상태는 이어졌다. 추가 득점을 위해, 그리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마음이 급해진 선수들이 거친 플레이를 펼치다 바디체크로 인해 서로 긴장되는 순간이 펼쳐지기도 했다. 곧바로 심판이 개입해 경기를 속개했지만, 양 팀에서 한 번에 최대 두 명의 선수가 패널티 아웃을 받는 등 여파도 이어졌다.

극적 골, '승부치기'에서 극적인 역전승
 
 전국동계체육대회 아이스하키 고교부 결승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경기고등학교 최원형(등번호 21번) 선수가 동료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전국동계체육대회 아이스하키 고교부 결승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경기고등학교 최원형(등번호 21번) 선수가 동료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 박장식

 
3피리어드도 5분을 남겨둔 상황, 경기고 측의 진영에서 페이스 오프가 벌어졌다. 퍽을 얻어낸 것은 경기고등학교의 최원형 선수였다. 최원형은 센터라인을 넘어 데굴데굴 굴러가는 퍽을 잡아 바로 상대 골문으로 돌진했다. 골리와의 1대 1 상황 쳐낸 퍽은 곧바로 골로 연결되었다. 극적인 동점골이었다.

그런 가운데 경복고에 아찔한 순간도 연출되었다. 경기 종료 3분을 남겨두고 펼쳐진 경복고 진영에서의 페이스오프 상황에서 이무영 선수가 후방에서 갑작스러운 슈팅에 나선 것이었다. 퍽이 오은율 골리의 보호대를 맞고 튕겨나오며 골은 무위에 돌아갔지만, 경기를 한 순간에 내줄 뻔한 상황이었다.

이제 바빠진 것은 경복고였다. 경복고는 상대 골망을 흔들려 애썼지만, 퍽을 글러브로 캐치하는 서경민 선수의 슈퍼세이브가 나오는 등 3피리어드에는 더 이상의 득점이 나오지 않으며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전은 5대 5로 치러지는 정규경기와는 달리 3대 3 경기로 펼쳐졌다.

하지만 5분동안 이어진 연장전에서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결국 승부를 가릴 방법은 슛오프, '승부치기'였다. 슛오프에서도 팽팽한 분위기는 이어졌다. 첫 주자로 나선 경복고의 허민준, 경기고의 이무영 선수가 각각 슛을 실패하며 슛오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슛오프 첫 골은 경복고 채수민이 이뤘다. 채수민은 골을 기록한 뒤 벤치의 선수들과 기쁨을 나눴다. 하지만 이에 질 세라 경기고의 권우현도 골을 기록했다. 경복고의 세 번째 슛오프는 실패로 끝난 가운데, 경기고는 이재현 선수가 골을 기록하며 슛오프 점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경복고가 네 번째 슛오프까지 연달아 실패한 가운데, 경기고는 네 번째 슛오프를 성공하면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경기고의 네 번째 슛오프에는 3피리어드 극적인 골을 넣었던 최원형 선수가 나섰다. 최원형 선수가 센터라인부터 지치고 나간 퍽은 상대의 골문을 흔들었다. 
 
 전국동계체육대회 고교부 아이스하키에서 우승을 지킨 경기고등학교 서경민 골리.

전국동계체육대회 고교부 아이스하키에서 우승을 지킨 경기고등학교 서경민 골리. ⓒ 박장식

 
그 순간 경기고등학교의 선수들이 벤치에서 모두 뛰어나와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경기고등학교의 극적 우승이었다. 선수들은 코칭스태프와도 우승의 기쁨을 나눈 뒤 부모님에게 큰절을 하며 감사를, 그리고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경기고 선수들은 3학년 선배들의 마지막 우승을 함께 지켜내며 이날 승자가 되었다.

65분을 넘어 슛오프까지 골대를 지켰던 경기고등학교 서경민 골리는 이날 우승의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서경민 선수는 "졸업 직전 마지막 대회였는데 친구들과 함께 우승하고 끝낼 수 있어서 좋았다. 김유진 코치님, 김한성 감독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이다. 감사하다"며 고교 무대 마지막 우승의 소감을 전했다.

서경민 선수는 이날 경기에서의 활약에 대해 "그동안 훈련으로 열심히 쌓았던 게 시합 때 나온 것 같다"고 전했다. 특히 "시합 중에는 내가 흔들리면 팀이 흔들리니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는데, 슛오프 때도 특별한 것이 있다기보다 최선을 다해서 막겠다는 생각으로 임했기에 잘 된 것 같다"며, "경기 장면을 다시 집에서 돌려보면서 잘했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웃었다.

지난 시즌 U-18 아이스하키 대표팀으로도 나섰던 서경민 선수는 고려대학교에 진학한다. 서경민 선수는 "어디에 가던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성인 대표에도 올라 U-18 대표팀 때 디비전 우승했던 것처럼 좋은 성적 내고 싶다"고 각오했다.

갑작스러운 위기, 그에 굴하지 않은 명승부
 
 전국동계체육대회 아이스하키 고교부 결승전에서 경기고등학교 이재현 선수(오른쪽)가 슛오프에 나서고 있다. 경복고 오은율(왼쪽) 골리가 막으려 하지만 공은 골대에 빨려들어갔다.

전국동계체육대회 아이스하키 고교부 결승전에서 경기고등학교 이재현 선수(오른쪽)가 슛오프에 나서고 있다. 경복고 오은율(왼쪽) 골리가 막으려 하지만 공은 골대에 빨려들어갔다. ⓒ 박장식

 
동계체전 준우승 직후 갑작스럽게 하이원 아이스하키단의 운영 중단이 공식 발표된 가운데 열린 경기였기 때문이다. 경기장 곳곳에는 하이원 아이스하키단의 해체를 막아달라는 성명문과 지지를 호소하는 QR코드가 나돌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날 승부는 '굴하지 않는 아이스하키'로서의 의미가 깊었다.

학생 선수들이 누구보다도 동요했을 법 했다. 국내에서 프로리그에 참가하는 아이스하키 팀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실업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구단 역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 하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프로 리그 못지 않은 명승부를 펼치며 한국 아이스하키의 미래가 여전히 건재함을 알렸다.

13세 이하, 그리고 주니어 선수들은 크게 늘고 있지만 실업 팀은 물론 대학 팀도 점점 줄어가는 역행하는 상황을 한국 아이스하키는 겪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명승부를 연출한 이날 고교 선수들의 이야기, 하지만 무엇보다도 승부에만 집중한 모습은 어쩌면 '우리를 지켜봐달라'는 시위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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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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