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6 14:52최종 업데이트 23.08.1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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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구리시에 있는 인창고등학교는 덴마크 류슨스틴 김나지움(한국 교육 편제상 고등학교)과의 국제교류를 교육과정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에는 덴마크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했었고, 올해 1월 10일부터 19일까지는 인창 고교생 29명이 덴마크에 다녀왔습니다. 이 글은 이 과정에 동행했던 우현주 인창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방문기입니다. 지난 1월 16일부터 24일까지 덴마크를 방문한 오마이뉴스 '꿈틀비행기 16호' 역시 류슨스틴 고교를 방문했었습니다.[편집자말]

경기 구리 인창고등학교 학생들이 덴마크 코펜하겐 뉘하운 운하를 거닐고 있다. ⓒ 우현주

 
일반 고교에서 국제교류를 교육과정으로 진행하는 건 쉽지 않다. 우리 학교는 왜 굳이 복잡한 행정 절차와 안전 사고 부담을 안고 국제교류 업무 부서를 운영하고 있나? 그리고 왜 덴마크인가? 왜 류슨스틴 김나지움인가?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어느 지점에서 덴마크 행복 사회의 비결을 찾을 수 있을까? 이 국제교류 활동이 한국의 학교 문화를 새롭게 들여다보고 한국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고 구현하기 위해 적용해 볼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은 어디에서부터 찾으면 좋을까? 

지난 8박 10일의 여정을 함께하면서 교장인 내가 한 일은 매일 저녁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의 학부모들에게 활동 내용과 사진을 전하고,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어떻게 우리 교육에 연계할까 하는 고민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긴장감, 문화충격, 새로운 상상력 등이 궁금했고 거기서 해답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스스로 낯선 경험을 기록해 기억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소감문 작성을 제안했다. 이 기록들은 내게 남겨진 과제를 풀어갈 단서가 돼 주고 있다. 


류슨스틴 김나지움은 세계시민의식 프로그램(Global  Citizenship Program)을 고등학교 3년 교육과정 전체에 적용하면서 14개 국가와 교류하는 학교다. 학생들은 각 국가별로 반이 편성돼 해당 국가의 역사·문화 등을 공부하고 3학년이 되면 해당 국가를 2주간 방문한다. 우리 학교는 류슨스틴의 한국반 학생들과 교류하고 있고, 실제로 이번 방문은 코로나로 2년간 중단됐다가 재개된 두 번째 방문이었다. 

학생들의 교류 활동은 크게는 세 개 범주에서 이뤄졌다. 류슨스틴 김나지움의 교실 수업 참관, 파트너로 정해진 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일상 생활을 하는 홈스테이 활동, 덴마크 문화유적이나 운하·박물관 등의 현장 체험 활동이었다. 특히 홈스테이 활동은 전반기 4일을 한 가정에서 지내고 다시 새로운 가정에서 4일을 지냈다. 이는 공식 일정 외에 현지에서 현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직접 다른 문화를 느끼고 적응하자는 의미였다.

"거리낌 없이 질문하는 학생들, 신기했어요"
 

덴마크 류슨스틴 김나지움(고등학교)와 세계시민의식 프로그램 교류를 하고 있는 경기도 구리 인창고등학교 학생들은 지난 1월 10일부터 19일까지 덴마크에 머물렀다. 한 덴마크 고교생이 수업시간 중 손을 들고 질문하고 있다. ⓒ 우현주

 
먼저 우리 학생들은 '공부량은 훨씬 적으면서도 집중하고 몰입하면서 즐겁게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토의하고 질문하는 덴마크 학생들의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수업 시간이 굉장히 긴 것에 놀랐는데 우리와 다른 점이 덴마크는 한 과목을 오래 수업하지만 3타임 정도 하면 끝난다고 했다. 반면 한국은 짧은 수업이지만 7교시까지 있다. 또한 수업시간에 질문이 굉장히 많았다. 덴마크어로 진행된 수업이라 알아듣진 못했지만 선생님과 소통하면서 자유롭게 질문하는 분위기가 신기했다. 한국에선 학생들이 질문을 잘하지 않고 만약 한다고 해도 보통 수업 후 따로 여쭤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덴마크 교실에서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이 있는지 확인하고, 학생들은 거리낌없이 질문하는 게 신기했다. 선생님의 액션도 크고 계속 이동하면서 수업하는데 공간이 이런 영향을 끼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 교실은 학생 개인의 책상과 교탁으로 선을 이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느낌이다. "

일정 진행 중 1학년 현수아 학생이 작성한 소감문이다. 10여 년간 학생중심 배움중심 수업혁신이 이슈였지만 고등학교 교실 앞에서는 변별과 경쟁, 결과가 가로막고 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덴마크 학교의 수업은 우리나라처럼 선생님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것이 아닌, 선생님은 단지 수업의 경로만 제공해주는 사람이고 배움은 학생들끼리의 소통으로 이루어진다는것을 알게됐다."(2학년 변지민),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였다. 거의 대부분의 수업이 그룹 형태로 진행됐고, 이런 수업 형태에 맞게 책상은 그룹별로 앉을 수 있도록 배치돼 있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의견을 얘기하고 다양한 의견에 존중하면서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의 수업 형식이 신기하면서 부러웠다."(1학년 권슬아) 

"이 학교 학생들은 교과서와 노트, 필통을 가지고 다니기보다 컴퓨터를 기본으로 갖고 다닌다. 수업 내용을 받아적고 그 자리에서 검색도 해보며 수업에 참여했다." (1학년 신혜원) 

"친구와 이야기 하던 도중 내가 친구에게 내 수학 숙제를 보여주고 친구도 내게 자신의 수학 숙제를 보여줬다. 내 숙제는 답만 적는 형식인데, 덴마크 친구의 숙제는 풀이 과정을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답이 맞더라도 과정이 틀리면 틀리다고 채점하고 답이 틀리더라도 과정이 맞으면 맞다고 채점한다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1학년 강지원)

공부를 잘한다는 것
 

덴마크 류슨스틴 김나지움(고등학교)와 세계시민의식 프로그램 교류를 하고 있는 경기도 구리 인창고등학교 학생들은 지난 1월 10일부터 19일까지 덴마크에 머물렀다. ⓒ 우현주

 
두 번째로 '공부를 잘한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성찰해보게 됐다. 국립박물관에서 덴마크 초기 역사, 바이킹 시대와 관련된 유물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우리 학생들은 4명씩 모둠을 만들고 류슨스틴 학생들이 9개 포스트에서 덴마크 역사가 생소한 한국 학생들에게 각자가 맡은 부분을 공부해 설명해주는 방식이었다. 

가장 좋은 공부 방식은 누군가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자료를 읽고 분석해보고 내 언어로 말하기, 서로 배우게 하는 공부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됐다. 가르쳐주기 위해 자료를 찾고,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 자신의 언어로 내용을 분석 종합해보고, 대화하면서 상대방의 표정으로부터 상대의 질문과 호기심으로부터 공부가 더 깊어진다는 것을 체감했다. 

우리 수업에서도 이렇게 해야 한다. 우리 교사들과 부모들은 학생들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주고 기다려주면서 치밀하게 배움을 조직해주는 문화를 만드는 데 아직 익숙하지 않다. 공부란 무엇인지,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부터 이야기해봐야 한다. 

스웨덴과 바다를 앞둔 군사 방어시설이면서 덴마크 왕실 가족들의 대규모 연회장과 화려한 방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크론버그 성 탐방 때도 해설사가 한 자리에서만 30분 이상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주는데, 아이들 모두 이에 집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배움을 만들어야 한다. 

류슨스틴의 세계시민의식 프로그램 총괄 책임자인 안데르스 슐츠 교사가 우리 학생들과 함께한 '문화 이해' 수업은 '다른 것을 만났을 때 낯설지만 마음 열고 다가가기, 그러면서 나와 내가 살고 있는 문화에 대해 자기 성찰, 자기 반성을 해보는 과정에서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구성됐었다. 

현재의 나와 상관 없는 세대와 지역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연대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이 교육 내용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선 이기적인 경쟁과 눈앞에 보이는 효율보다는 동료와 협력하고 이웃을 돌아보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한국 교육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하루를 정리하는 대화... 우리는 하고 있나요?
 

경기 구리 인창고등학교 학생들이 덴마크의 한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구성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우현주

 
또한 우리 학생 대부분은 덴마크 가정의 문화가 행복 사회를 만들었다는 점을 실감한 것으로 보인다. 여느 관광지 투어보다 현지 가정에서의 일상 체험이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실마리다. 한국에선 한때 '저녁이 있는 삶'이 이슈였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휴대전화를 꺼두고 식탁 위에 켜 둔 따뜻한 촛불 조명 아래서 식사를 마친 뒤에도 차를 마시고 대화하는 여유를 갖기 어렵다. 각자 뭔가에 쫓기듯 열심히 살지만 사실은 서로를 소외시키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경험한 홈스테이 가정들에서 공통적으로 본 특징은 가족들이 모여 갖는 식사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는 점과 식사 후 커피 혹은 차와 간단한 간식을 즐기는 것이었다. 대부분 이때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공유하거나 간단한 주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 파트너였던 에스터의 말에 따르면 덴마크인들은 이러한 휘게를 통해 행복감을 얻는다고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고 이른 시간에 하교하고 퇴근하여 일찍 식사준비를 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때문이었다. 학원과 공부 등의 이유로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고 가족들이 한 식탁에 모이기 힘든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에 비해 여유롭게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내가 덴마크에 오기전 읽었던 책, '상상속의 덴마크'에서 본 '휘게는 덴마크인의 행복 출발점'이란 말을 직접 느끼고 동의하게 됐다."(1학년 김가연)
 

우현주 경기 구리 인창고등학교 교장. ⓒ 우현주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우현주씨는 경기 구리 인창고등학교 교장입니다.
- 꿈틀비행기 17호는 오는 8월 출발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http://omn.kr/1mleb'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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