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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알쓸신잡> 이미지 ⓒ tvN

 
tvN <알쓸신잡> 때부터 물리학자 김상욱 님의 팬이다. <알쓸인잡>에서도 매회 감동을 주는데, 지난 주말 방송된 '우리 미래를 바꿀 인간' 편은 특히 되짚어 생각해 볼거리를 던져주었다. 

과학자에게 미래를 바꿀 인간을 꼽으라면 당연히 과학자겠거니 하겠지만 그는 예상을 깨고 다른 접근을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 일자리를 뺏어가기 시작한 지금, 과연 과학기술의 발달이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이다. 그런 고민을 먼저 한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20세기 초 미술계다. 그리고 남자 소변기 작품으로 유명한 마르셀 뒤샹이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당시는 사진기가 막 발명되던 때였다. 미술계는 화가보다 기계가 더 잘 그릴 수 있게 된다면 화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화풍을 바꾸는 것으로 난제를 헤쳐나가고 이른바 인상파와 입체파가 탄생한다. 그런데 뒤샹은 "예술가가 선택하는 것이 예술이다"라며 기성품에 사인만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혁명적인 방식으로 현대미술의 장을 열어젖힌다.  

뒤샹의 이 전복적 행위는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것,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김상욱은 말한다. 우리는 기계인 자동차가 더 빠른데도 인간들끼리 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들끼리 겨루는 올림픽에 의미를 부여한다. 기성품이 넘쳐나는 세상이 오자 더 정확하고 더 정교하게 만든 것보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수제품이 더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그리스 로마시대에 인간(!)은 인간다운 활동을 하고 일은 노예가 했듯이, 일은 인공지능이 하고 인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점에 우리는 서있다. 인간이 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온 거다.       

김상욱 님은 우리 인류가 바로 그 기로, 즉 유토피아로 갈 것인지 디스토피아로 갈 것인지에 대한 기로에 서있고, 지금 이 담론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을 전하고자 했다. 그런데 당시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고 이후 인간의 범위가 확장되어 노예나 여자도 포함되었으니, 어쩌면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그 범위를 고민할 시기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조금 흐려져 버렸다. 물론 인간의 범위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깊이 있게 김상욱 님의 발언에 주목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유토피아로 가는 길에는 분배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인간이 인공지능으로부터 밀려나지 않고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과학자의 입으로 듣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넘어가버렸지만 논다는 것은 무엇인지, 인간다운 활동이란 무엇인지 이야기를 확장해나가고 빈부격차나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담론을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담론을 형성하고 공론화하는 것은 주로 정치계나 인문사회계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시작되고 풀려나가기도 한다. 분배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구촌 식량이 차고 넘쳐서 모두를 먹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굶고 누군가는 과식을 걱정하는 인류가 과연 이 문제를 유토피아로 선택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여자가 인간이 아니던 시절에 이미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만들어낸 유토피아적 정신을 가진 종족이기도 하다. 조금만 더 인류애를 장착하면, 인간이 만든 과학기술에 인간이 고통당하는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예산 걱정 없이 과학을 연구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껏 영화를 만들고 또 누군가는 편하게 티브이를 즐기는, 진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유토피아로 접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용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oddle222)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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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무언가를 추구한다. 거실에는 모임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와 마을에서 사람들과 온갖 작당질을 꾸몄다.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해서 지금은 갈무리하지 못한 것들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쓰고 그리는 일을 한다. 에세이, 그림책, 소설을 넘나들며 막무가내로 쓴다.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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