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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고 송은지씨의 아버지는 마지막 유품이 담긴 조그만 손가방을 들고 비오는 가로등 아래를 걸어 집으로 향했다.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고 송은지씨의 아버지는 마지막 유품이 담긴 조그만 손가방을 들고 비오는 가로등 아래를 걸어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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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고 송은지씨의 아버지가 지난 11월 28일 인터뷰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고 송은지씨의 아버지가 지난 11월 28일 인터뷰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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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야. 이건 꿈이야.'

아버지(60)는 오늘도 되뇐다. 한 달 째 집에 돌아오지 못한 딸(25)을 만나기 위해 아버지는 오늘도 꿈에서 깨려고 연신 고개를 흔들어본다. 그날도 그랬다.
 
'설마.'
'아닐 거야.'


아버지의 오감은 오로지 이 말만 되풀이했다. 10월 29일 딸이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도, 10월 30일 딸 휴대전화의 마지막 위치가 이태원임을 확인했을 때도, 같은 날 실종신고를 하고 병원과 한남동 주민센터를 오갔을 때도... 그리고 경찰로부터 '송은지씨'가 장례식장에 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도. 

이태원 참사로 딸을 잃은 아버지는 '유실물'이 돼버린 딸의 핸드백을 조심스레 꺼냈다. 한 번도 써보지 못해 깨끗한 새 운전면허증, 집 근처 길고양이를 만날까 항상 갖고 다닌 간식 그리고 노란리본이 걸려 있는 무선 이어폰. 딸의 삶을 비추는 핸드백 속 물건들이 아버지의 손을 따라 하나, 둘 빠져나왔다.


 
딸이 남기고 떠난 가방안에는 소중하게 생각했던 여러 물건들이 남아 있었다.
 딸이 남기고 떠난 가방안에는 소중하게 생각했던 여러 물건들이 남아 있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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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바다 그리고 생명을 사랑한 25세 청년 송은지. 이태원 참사로 딸을 잃은 아버지는 양손에 떡을 들고 은지씨가 일했던 여행사를 찾았다. 빈소를 찾았던 회사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은지씨 자리에 놓여 있는 국화가 아버지의 눈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아침바람부터 제가 눈물을."

연신 미안해하며 눈물을 훔치는 아버지 옆에서 동료들도 함께 울었다. 집에선 좀처럼 회사 이야기를 하지 않던 은지씨였다. "성실하고 일도 빨리 배우는 막내였습니다." "항상 일찍 출근하던 친구였어요." 아직 만 1년도 일하지 않은 은지씨였지만 회사는 퇴직금으로나마 그에게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은지씨의 꿈은 세계여행이었다. 아버지는 "특히 터키(튀르키예의 옛 명칭)가 좋아 보였나 봐요. 터키를 거쳐 유럽에 꼭 가고 싶어 했어요"라고 떠올렸다. 아버지의 가슴은 은지씨의 통장을 정리하며 또 한 번 아려왔다. 대학 졸업 후 용돈 한 번 타 쓰지 않았던 은지씨는 매월 50만 원씩 적금을 넣고 있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한 푼, 두 푼 아꼈던 딸입니다. 사회 초년생 급여가 얼마나 됐겠어요. 그걸 또 아껴서 적금도 들고... 돈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그렇게 가고 싶었던 유럽여행도 못 가보고 떠난 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아빠와 둘이 떠났던 여행에서 남긴 은지씨의 사진.
 아빠와 둘이 떠났던 여행에서 남긴 은지씨의 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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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은지씨와 정동진 바다에서 찍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단둘이 간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 밝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은지씨를 보면 아버지는 자꾸 딸이 남긴 일기가 떠오른다.

"방을 정리하며 보니 은지가 남긴 일기와 메모가 참 많더라고요. 무슨 영화를 누구와 봤다는 메모부터,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까지요. 특히 이제 막 사회에 나선 딸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었나 봐요. 그런 메모가 많았어요. 단둘이 갔던 정동진 여행에서조차 고민이 뭔지, 꿈은 뭔지 못 물어봤던 게 참 미안하고 아쉬워요."

아버지는 딸의 방에 남아 있던 깨진 휴대전화를 다시 충전했다. 은지씨가 예전에 썼던 이 휴대전화엔 영상 하나가 남아 있었다. 바닷가에 선 은지씨는 맑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안녕~"

의문
 
딸의 물건을 챙기는 아버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한참을 물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딸의 물건을 챙기는 아버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한참을 물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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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씨의 무선이어폰 케이스에는 세월호 추모 리본이 달려 있었다.
 은지씨의 무선이어폰 케이스에는 세월호 추모 리본이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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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후 한 달, 아버지의 가슴엔 의문이 켜켜이 쌓였다. 아버지는 참사 당시 딸이 갖고 있던 휴대전화를 왜 아직 찾지 못했는지, 경찰관이 보여준 사진 속 딸의 피 묻은 상의는 어디로 갔는지, 딸이 어쩌다 이태원에서 60km나 떨어진 평택의 장례식장까지 가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

특히 아버지는 참사 후 왜 다른 유족들과 소통할 기회가 없었는지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장례 중엔 저도 경황이 없어 엄두가 안 났지만 이후엔 정부가 자연스레 장을 마련해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라며 "하지만 전혀 그러한 움직임은 없었고 저의 요청에도 개인정보를 핑계로 유족들의 소통을 차단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아버지는 희생자와 유족을 공격하는 일부의 준동에도 용기를 냈다. 어렵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을 매개로 마음을 모은 다른 유족들과 함께 얼굴을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버지는 카메라 수십 대 앞에 섰던 그때를 떠올리며 "두려웠고 지금도 두렵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두려움보다 이대로 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놀러 간 사람이 문제라고요? 왜 국가 책임이냐고요? 어느 장소라도, 어느 누구라도, 어느 시간에라도 일어날 수 있는 참사였습니다. 그날, 그 현장에 있었던 희생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의 안일한 대처로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인재(人災)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정부는 어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추궁해주세요.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처벌하세요. 그걸 안 해주니까 희생자가 문제라는 2차 가해가 계속 이어지는 것 아닙니까. 국민을 이간질하고 갈라치기 할 생각이 아니라면 단호히 움직여주세요."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고 송은지씨의 아버지는 딸이 마지막으로 입었던 옷을 만지며 딸을 기억해냈다.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고 송은지씨의 아버지는 딸이 마지막으로 입었던 옷을 만지며 딸을 기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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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다른 유족들과의 소통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고 이야기했다. 기자회견 후 변화도 있었다. 그때까지 희생자 34명의 유족이 모여 있었는데 기자회견 후 모임의 규모가 2배 가까이(희생자 65명 유족) 커졌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유족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겁니다. 저는 저만 가슴 아프고, 저만 슬픈 줄 알았어요. 하지만 저보다 더 가슴 아프고 슬픈 분들도 많았습니다. 어떤 분은 여전히 납골함을 집에 가지고 있답니다. 어떤 분은 아직 사망신고도 못했다고 합니다.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들어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실 형제도, 친척도, 친구들도 제게 전화를 못해요.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답니다. 그게 당연하죠. 입장이 바뀌면 저 같아도 그럴 것 같아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유족들은 서로의 이야길 터놓고 할 수 있잖아요. 서로 큰 위로를 얻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과 경찰 윗선,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을 거론하며 이들의 파면 및 구속수사를 요구했다. 특히 이 장관이 참사 후 꾸려진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범정부 태스크포스(TF)'의 단장 자리에 앉아 있는 상황을 두고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 장관은 참사에 대한 책임이 막중한 분입니다. 수사를 받아야 할 피의자라고요. 그런 분이 어떻게 TF의 단장을 맡을 수 있습니까. 아주 실망이 큽니다. 유족을 우롱하는 처사에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처사를 유족들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장관을 파면하고 이 장관은 수사를 받으십시오." (자세한 기사 : "윤 대통령, 이상민 아니라 유가족 어깨 두드렸어야" http://omn.kr/21u2l)

화분

주인을 잃은 은지씨 방에 화분 하나가 생겼다. 장례 후 가족들이 은지씨를 떠올리며 마련한 것이다. 은지씨가 좋아했던 초콜릿도 화분 옆에 놓였다.

아버지는 "은지야, 25년 동안 내 딸로 살아줘 너무너무 고맙다"며 어렵게 입을 뗐다.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마다 아버지의 꾹꾹 누른 고민과 탄식이 담겼다. 

"너의 아버지인 것을 넘어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널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고 아프다. 그 좋은 세상에선 나비처럼 훨훨 날아 네가 바라던 꿈을 꼭 이루길 바란다. 마음껏 네 꿈을 펼치길 바란다. 은지야, 우리가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 엄마, 아빠, 네 언니와 함께 못 다했던 이야기 나누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송은지(25)씨. 송씨의 휴대폰을 찾지 못한 유족은 과거에 쓰던 낡은 휴대폰에서 그가 담긴 영상을 발견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송은지(25)씨. 송씨의 휴대폰을 찾지 못한 유족은 과거에 쓰던 낡은 휴대폰에서 그가 담긴 영상을 발견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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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유족 분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재난 희생자와 유족을 향한 비난은 명백한 2차 가해 행위이며 형사처벌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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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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