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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상을 꿈꾸는 역사학도', '찬란한 의미를 먹고 사는 댄서', '행복한 왕자로 사는 사회복지사' 아무리 봐도 공통점을 찾기 힘든 조합이다. 이렇듯 살아온 삶은 다르나 각자의 삶에서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2030 청년들의 이야기가 <청년구술생애사>라는 제목을 달고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다양한 청년들의 삶을 담아낸 <청년구술생애사>
 다양한 청년들의 삶을 담아낸 <청년구술생애사>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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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구술생애사>는 (사)우리들의성장이야기 주최로 올해 5월부터 시작된 '2022 청년구술생애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청년구술생애사 프로젝트는 청년들이 각자 자신이 살아온 지난 20~30년의 삶을 되돌아봄으로써 향후 50년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취지로 2020년부터 매년 진행되는 사업이다.

9명의 구술자와 9명의 서술자가 1:1로 짝을 이뤄 인터뷰한 뒤 결과물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시리즈 3권에 해당) 그리고 이 책에 내 이야기도 실렸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직업도 묻지 않았다

초여름에 접어든 지난 5월, 우리는 성북청년공간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본인이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나이도, 이름도, 직업도 묻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불리고 싶은 별명으로 자신을 소개했고, 그 별명으로 지난 6개월 동안 함께 했다(나는 평소 존경하는 태조 이성계의 호 '송헌'이라는 별명을 택했다).
 
2022년 5월 17일, 우리들의 첫 만남
 2022년 5월 17일, 우리들의 첫 만남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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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청년구술생애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는 하나였다. 그동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출판사 마케터, 역사 전공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나는 늘 '듣는 입장'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풀어서 소개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언제부턴가 내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서른두 해를 살아보니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고, 누군가를 통해 그 답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구술자 역할로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말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
 
심리프로그램 당시 발표하는 나의 모습
 심리프로그램 당시 발표하는 나의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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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꿈꾸는 역사학도

무더웠던 7월의 어느 날, 신촌의 한 중국찻집에서 나의 삶을 듣고 정리할 서술자 '이리스'(별명)와 마주 앉았다. 그는 내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인터뷰 장소와 시간을 모두 내 선택에 맡겼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경청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의 감정에 공감하고 호응해줬다. 그 섬세한 배려에 내 마음 속의 빗장도 바로 풀렸다. 흥이 올라 실컷 떠들었다. 어느 순간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들(진로 및 연애 문제)까지도 솔직하게 쏟아냈다.

이순신·안중근과 같은 영웅을 동경하여 사학과에 진학하게 된 사연, 졸업 후 취직한 첫 직장(출판사)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책을 만들다 '현타'가 오는 바람에 퇴사한 일, 뒤늦게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발굴하겠다는 목표를 품고 대학원에 진학한 끝에 마침내 석사 논문을 완성했을 때의 희열, 그러나 졸업 후 마주한 취업시장의 암울한 현실과 등록금 문제로 박사 과정 진학을 망설이는 현실까지. 그렇게 이리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줬다.

가을에 들어선 10월의 어느 날, 이리스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이상을 꿈꾸는 역사학도'라는 제목을 달아 내 이야기를 정리한 뒤 원고를 넘겼다고. 그렇게 내 이야기가 담긴 책이 세상에 나왔다.

"송헌은 역사를 연구하는 삶이 즐겁고, 그 삶에 자부심이 있다. 그러나 그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채용이 되거나 자신의 공부가 '쓰임'이 있어야 한다. 현재 그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취업이다. 취직하려 백방으로 노력해도 여의치가 않다. 매일 채용 공고를 살펴보지만 채용 인원은 기껏해야 한두 명이다. 그럼에도 구인공고의 조회수는 수천 회에 달한다." -78~79쪽

"송헌에게 있어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는 자신을 민족주의적 이상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그가 꿈꾸는 이상은 개인적인 측면을 넘어 민족적 이상이다. 그가 실현하고 싶은 이상의 구체적 내용을 물었더니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이라고 했다." -80쪽
 
책에 실린 나의 스토리 '이상을 꿈꾸는 역사학도'
 책에 실린 나의 스토리 '이상을 꿈꾸는 역사학도'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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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린 나의 이야기 뒤에는 이리스의 인터뷰 후기도 나란히 실렸다. 이리스가 바라본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이리스-인용자 주)는 이상주의는 비현실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는 것과 현실을 책임지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송헌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신만의 삶이 아닌 대의를 생각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상을 강요하지 않고 이상을 선택하는 삶에 감탄했다." -85쪽

이렇게나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2022년도 저물어가는 11월 24일 저녁, 우리는 6개월 만에 성북구의 한 전시회장에서 다시 모였다. 이날부터 <청년구술생애사> 출간을 기념해 '이렇게나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전시가 열리기 때문이다.

책의 출판과 교정교열 등을 지도했던 정윤영 작가의 사회로 구술자와 서술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꼈던 소감을 발표하고, 각자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6개월 만에 한 자리에 다시 모인 청년들
 6개월 만에 한 자리에 다시 모인 청년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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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6개월 간 우리는 각자의 파트너하고만 만났기에, 다른 구술자들의 스토리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책을 받아 펼치니 나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청년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어릴 적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났으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내민 손길 덕분에 사회복지사라는 꿈을 품게 됐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룬 청년, 스무 살 무렵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운동이 벌어진다는 소식에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밀양으로 내려가 활동가로 살았던 청년, 경계선 지능장애를 비관하며 자살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 등...

이 한 권의 작은 책에 너무나도 다양한 삶과 고민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나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우리는 한 공간에 모여 서로의 지나온 삶을 위로하고 앞으로의 삶을 응원하며 6개월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2022 청년구술생애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들
 '2022 청년구술생애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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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 켠에는 책에 실린 구절들 중 일부가 걸려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인터뷰 때 했던 말도 있었다.

"저는 모든 경험은 다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에게 좋든 나쁘든, 어떤 영향이든 끼쳤을 테니까요. 100년밖에 못 사는 삶인데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봐야죠. 후회는 안 해요." -70쪽

오늘도 각자의 삶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전시 정보]

전시명: 2022 청년구술생애사 도서전시 "이렇게나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전시 일정: 2022년 11월 24일(목)~27일(일) 10시~19시(27일 16시까지)
전시 장소: 369예술터 (서울시 성북구 삼선교로4가길 11)
관람료: 무료
문의: 02-911-7817, youthfamily@daum.net (우리들의성장이야기)

* 책은 비매품으로 전시회 방문시 증정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gabeci)에도 게재합니다.


태그:#청년구술생애사, #우리들의성장이야기, #369예술터, #사학과,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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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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