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1 05:13최종 업데이트 22.11.21 05:13
  • 본문듣기
정치 관련 뉴스를 볼 때 지키려는 원칙이 있다. 가능한 정치인의 행보를 선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단순히 관대한 태도를 취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정치인인가에 따라 인물에 대한 감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 사소한 잘못을 부풀려서 보고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러면 건강한 문제제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드는 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가능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보려는 뉴스들이 있다. 가령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함께했던 김건희 여사의 소식도 그랬다. 물론 영부인을 정치인으로 볼 수 있을지는 여전히 토론의 영역에 남을 주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좋든 싫든 영부인의 모든 일정과 행보는 정치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12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14세 환아의 집을 찾아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다. 김 여사는 지난 11일 헤브론 의료원을 방문했을 때 심장병 수술을 받은 아동들을 만나는 자리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던 이 환아의 집을 이날 방문했다. ⓒ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함께했던 김건희 여사의 행보가 논쟁의 중심에 섰다. 특히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열렸던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진행한 일정이 그랬다. 여러 뉴스에 따르면 김 여사는 주최국인 캄보디아가 영부인들에게 요청한 앙코르와트 사원 방문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한 소년의 집을 방문했다. 이보다 하루 전인 11일에는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의료진들과 환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후 김건희 여사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여러 비판이 쏟아졌다. 우선 주최 측이 요청한 공식 일정에 불참하고 개인 일정에 나선 것이 외교 결례라는 비판이다.

영부인 행보에 쏟아진 비판

이에 대해 지난 15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에 참석한 조현동 외교부 제1차관은 김 여사가 개인 일정을 간 것이 외교 결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앙코르와트 방문은 권고 정도였고 실제로 각국 정상 및 국제기구 배우자 11명 중 6명은 참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 차관의 설명대로 공식일정 참여가 의무는 아니고 김건희 여사가 평소에 의료 취약 계층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개인 일정을 진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동아시아 정상회의 개최는 대외 이미지 제고를 위해 공을 들인 차원의 일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빈곤 가정을 방문해 마치 구호활동을 하는 듯한 일정을 진행한 것이다. 김건희 여사의 행보가 엄청난 결례는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주최국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김건희 여사가 심장질환을 앓는 소년과 찍은 사진도 논란이 되었다. 여러 비판을 종합하면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을 이용하여 김 여사 개인을 돋보이게 하는 마치 화보와 같은 사진을 찍었다는 게 문제제기의 핵심인 듯하다. 거의 인물사진 수준으로 김건희 여사에게 과도하게 초점이 맞춰진 결과물을 보면 이런 비판을 피할 수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해당 사진은 언론사가 아니라 대통령실에 의해 촬영되고 배포되었다. 이러면 단순히 '사진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선에서 문제를 끝맺음 지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것과 동일한 이유로 해당 사진들은 캄보디아와의 외교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왜 어떤 의도로 이런 사진을 찍고 배포했는지 묻는 단계까지 나가야만 한다. 진상을 파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과연 김건희 여사만의 문제인가

김건희 여사의 이 같은 행보들이 의아하거나 불쾌할 수는 있어도 문제가 아닐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김건희 여사가 영부인이 아니면 된다. 김건희 개인이 캄보디아를 찾아 평소의 관심대로 아프거나 빈곤한 이들을 방문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찍힌 사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그건 실패한 캠페인 정도로 회자될 수 있다.

하지만 외교 행사에 초청 받은 영부인은 다르다. 아무리 영부인의 정치적 지위가 애매하긴 해도 입지와 영향력까지 그렇지는 않다. 특히나 외교 행사에서 김 여사의 행보 하나하나는 국가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실 김건희 여사가 이번 순방에서 보인 문제는 윤석열 정부 전반의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포함하여 참모 대부분이 공직자이거나 공적 책임을 짐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와 무관한 개인처럼 구는 일이 반복된다. 그래서인지 위임된 권력을 마치 개인의 것처럼 사용하는 일도 허다하다.

이번 순방 때 대통령 전용기에서 MBC 기자들을 내쫓은 게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의 공무 수행은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언제든 감시와 견제를 받을 의무가 있다. 이건 외교 일정을 위해 전용기에 오르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국익을 명목으로 유독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했던 언론사를 콕 짚어 내쫓았다. 마치 내가 원하는 대로 보도하지 않을 거면 전용기에 타지 말라는 것과 같은 태도였다. 공무 수행을 위한 대통령 전용기를 '개인 비행기'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태도다.

반복되는 공직자로서의 책임 회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15일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배우자 프로그램에 참석,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부터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의 부인 베고냐 고메스 여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부인 이리아나 위도도 여사, 김건희 여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부인 에미네 에르도안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가족에 불과하다는 발언을 했다. 이후 대통령 영부인을 지원하는 제2부속실은 사라졌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는 현재 단순한 가족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영부인으로서 전용기에 타고 외교 순방에 함께해 관련 행사에도 참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부인의 행보도 투명하게 공개되고 공적인 관리를 받아야 한다. 위임 받은 권력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순방에서 김 여사의 행보는 어땠나. 문제가 된 일정들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사후에야 대통령실이 제공한 영상과 사진을 통해 당일의 현장이 공개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김건희 개인이 그런 행동을 한다면 문제될 게 전혀 없다. 하지만 김 여사가 그런 자격으로 캄보디아에 간 게 아니지 않나.

앞서 언급했듯 이는 김건희 여사 개인의 일탈만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순방에서 관심을 모았던 주요 정상회담들이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모두발언이 취재진에게 공개된 회담은 태국, 필리핀과 진행된 것에 그쳤다. 심지어 한·미, 한·일,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린 이후에 브리핑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의 행보가 계속해서 잡음을 만드니 아예 취재 자체를 통제하겠다는 심산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이것도 좋게 말한 수준이지 이번 순방에서 대통령과 영부인이 보인 행태는 '우리가 보여주는 것만 보고 들려주는 것만 들어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는 언론을 포함하여 자신들을 신뢰하고 권력을 위임한 국민들을 존중하는 행동이 아니다. 매우 모욕적인 처사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