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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며 약을 먹기 시작한지 한 달이 넘었다. 처음 코로나에 걸리고, 무기력의 늪에 빠진 시기로부터는 두 달이 지났다. 약물 치료와 상담, 여러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원래의 활력 있는 일상을 되찾았다.

다시 예전처럼 아기를 돌보고 있다. 아니, 예전보다 나아졌다. 육아에만 너무 올인하지 않고 내 시간과 마음의 여유도 챙겨가며 완급 조절을 하고 있다.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됐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갓 300일이 넘었던 아기가 이제는 돌이 지났다. 걸음마 연습을 일부러 시키지는 않았는데 혼자 앉고 서고 뒤뚱뒤뚱 하더니 이제는 곧잘 걸어 다닌다. 양가 식구들이 모여 작은 돌잔치를 치렀다. 세 식구가 한복을 맞춰 입고 스냅사진도 예쁘게 찍었다.

고생스러워도 끝났다
 
아기의 돌을 기념해 남편, 아이와 함께 한복 스냅사진을 찍었다.
 아기의 돌을 기념해 남편, 아이와 함께 한복 스냅사진을 찍었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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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돌끝맘'이 됐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는 별 희한한 말이 다 있다며 웃었다. 막상 돌잔치를 끝내고 나니 이해가 됐다. 아기가 태어나고 첫 1년은 이벤트의 연속이다. 탄생, 첫 옹알이, 뒤집기, 배밀이, 기기, 앉기, 서기, 걷기 등 새로운 기술들을 계속해서 배우고 몸집도 빠르게 커진다.

첫 돌을 지나고 나면 큰 행사가 없다. 아기의 성장 속도도 눈에 띄게 늦춰진다. '돌끝맘'이라는 신조어에는 변화무쌍한 첫 1년을 무사히 보냈다는 후련함이 담겨 있다.

돌을 전후하여 많은 아기들이 돌 치레를 한다. 정식 명칭은 '돌발 발진'인데, 돌 전후에 많이 겪기 때문에 '돌 발진'이라고들 부른다. 갑자기 며칠 동안 열이 펄펄 나는 증상이다. 특정 질병에 감염된 것도 아니고, 별다른 원인 없이 열만 끓어서 아이도 부모도 밤잠을 못 자고 고생한다. 열꽃이 피고 열이 내리면 끝난다. 으레 한 번씩들 겪고 지나간다고 한다.

엄마 1년차, 엄마가 된 첫 돌을 앞두고 독한 돌 치레를 한 느낌이다. 지나친 '육아중독'으로 인한 번아웃과 무기력, 우울증. 고생스러웠지만 끝났다. 열꽃 대신 글이 남았다.

'자기만의 방'이 생기자 글이 써졌다

처음부터 육아우울증 극복기를 쓰려고 작정한 건 아니었다. 안방 한 켠에 다시 책상을 갖다놓으면서 원했던 건 그저 '내 자리'였다. 젖병을 닦고 나서 잠시 앉아 이유식 레시피북을 뒤적이는 식탁 말고, 항상 아기 장난감과 로션 따위가 굴러다니고 있는 소파 말고, 오롯한 나만의 공간. 자기만의 방.

내 책상, 내 자리에 앉는다. 임신 이후 거의 열어본 적도 없는 서랍을 정리하고, 읽으려고 사뒀지만 육아 책과 이유식 책에 밀려 펴보지도 못한 책들 몇 권을 가져다놓고서 흐뭇해하고, 아이가 태어난 뒤 한 번도 태워보지 못한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여 향기를 맡고...

가계부를 정리하고, 달력을 확인하고 필라테스 스케줄을 잡고, 온라인 장보기로 이런저런 생필품과 식재료를 주문하고, 공과금을 납부하는 등의 사무를 보는 틈틈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우울증에서 헤어 나오는 과정의 증상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매일의 일과와 기분 변화, 신체 컨디션을 중심으로 간단히 기록하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것이 발전해 이 글이 되었다.

써야 사는 사람
 
내 자리가 생기자 자연스레 다시 글을 쓰게 됐다.
 내 자리가 생기자 자연스레 다시 글을 쓰게 됐다.
ⓒ Glenn Carstens-Pe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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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나는 정리정돈 이상으로 자기효용감과 유능감, 활력을 되찾았다. 글이 술술 풀렸다! 그만큼 내 안에 쌓인 이야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살짝 보여주기도 했고, 낯모르는 이들에게 응원의 하트나 댓글도 많이 받았다. 기운이 났다. 그 덕에 열 편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십대 초에 처음 매체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 십 년 가까이 글밥을 먹으며 살았다. 직장에 다니며 글 쓰는 직무를 수행한 적도 있지만 주로 프리랜서로 글을 썼다. 그런데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일이 팍 줄었다. 뭔가 커리어 전환을 시도해 보고 싶기도 했다. 마침 남편이 사업을 확장하는 국면이었고, 이에 동참해 같이 일하고 임신·출산을 겪으며, 2년 가까이 글다운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쓰지 않았다.

쓰는 일은 때로 괴롭고 글값은 예나 지금이나 박하기 때문에, 글 같은 거 안 써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그래 보자 싶었다. 다행히 장사가 잘 되었고 돈 벌고 돈 쓰고 살림하고 애 키우는 재미에 쓰는 일을 잊고 살았다.

그 때 계속 글을 썼으면 어땠을까? 일기든 뭐든 꾸준히 쓰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복잡한 머릿속을 그때그때 풀어내면서. 그랬으면 우울증까지는 겪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제는 뭐가 됐든 꾸준히 써보려 한다. 나는 써야 사는가보다.

먼 훗날 아이가 내 글을 읽는다면

최근 출간된 <빅토리 노트>를 읽고 있다. 카피라이터로 유명한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 이옥선 여사가 딸이 태어났을 때부터 5년간 쓴 육아일기다. 공책에 손글씨로 꾹꾹 눌러 쓴 기록. 그걸 십여 년 간 꽁꽁 숨겨두었다가 딸이 수능시험을 망치고 낙심해 있을 때 건네주었다고 한다. 김하나 작가는 자기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읽은 책이자 자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이 육아일기를 꼽는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일상과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잠겨 있다.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을 먼 훗날 아이가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가 나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엄마가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하던 중에 스텝이 꼬여서 제발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었다고. 너만큼이나 엄마도 많이 성장해 왔다고. 엄마가 너를 키운 게 아니라, 때로는 네가 엄마를 키우기도 했다고. 그리고, 너를 아주아주 많이많이 사랑한다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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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책을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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