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동안의 '침입 연습'...
도어록 소리·지문으로 찾아낸 비밀번호

[주거침입 잔혹사 ④] '성적목적' 앞에 뚫린, 안전하지 않은 여자의 집

가장 안온해야 할 곳, '집'. 그러나 여자의 집은 자주 예외가 된다. 여성이 사는 집 담을, 문을, 창문을 넘어 침입했다는 뉴스는 끊임없이 새로고침 된다. 오마이뉴스는 그 실체를 들여다보기 위해 2021~2022년 '주거침입' 사건 판결문 200건을 분석했다. 거기엔 '성적목적'을 위해 타인의 주거에 침입한 가해자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8편의 주거침입 잔혹사를 공개한다.[편집자말]

열쇠, 도어록, 담벼락 또는 방범창. 외부로부터 집을 보호해줄 최소한의 장치다. 이 장치가 어떤 경우 굉장히 쉽게 무너지고, 사라진다. 2021~2022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주거침입 사건 판결문 200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들은 잠금 장치가 있건 없건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여성의 사적 공간을 침범했다.

알아내거나, 뜯어버리거나
▲ '성적목적' 앞에 투명하게 뚫린, 어디도 안전하지 않은 여자의 집 ⓒ DALL·E

성적목적 주거침입의 수단은 직관적이었다. 방식은 집요했다. 도어록 비밀번호나 열쇠 등 잠금장치도 손쉽게 뚫렸다. 복도식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경우, 집 앞에 놓인 설치물도 위험 요소가 됐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불법 카메라를 설치하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21년 9월, 인천 부평구의 오피스텔에선 28세 여성이 주거침입 감금치상을 당했다. 블랙박스 카메라가 침입의 열쇠가 됐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오피스텔 앞에 주차된 자전거에 블랙박스 카메라를 달아 피해자 집 비밀번호를 손에 넣었다.

피해는 침입에서 끝나지 않았다. 가해자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피해자의 집 안 옷장 속에 숨어 있다가 다음날 오전 7시 잠에서 깬 피해자를 흉기로 겁박, 2시간가량 감금했다. 인천지법은 지난해 2월 11일 가해자에게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심지어 잠금 장치를 아예 뜯어 교체해 들어가거나,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와 지문 흔적 등을 대조해 침입하기도 한다.

2022년 5월, 전북 남원의 한 아파트. 가해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이웃의 우편물과 택배 송장을 노렸다. 이를 통해 각 호수별로 여성이 거주하는지, 동거 가족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도어락에 있는 지문을 관찰하고, 현관문 인근에 동영상 기능을 켜둔 휴대전화를 숨겨 현관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때를 노렸다. 피해자가 외출하자, 비밀번호를 누르고 피해자 집에 침입했다. 안방, 옷방, 화장실을 돌아다녔다. 가해자는 '호기심'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전주지법은 가해자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일부 성적목적을 위한 주거침입 범죄 사건의 경우 같은 장소에서 수차례 범행이 반복되기도 했다. 2020년 10월부터 2021년 5월까지 7개월간 반복된 주거침입 사건이 대표적이다. 범행은 피해자가 여성임을 인지한 순간부터 시작됐다. 서울 금천구의 한 빌라, 옆집 이웃이었던 가해자는 "피해자의 전화 소리를 듣고 여성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피해자가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의 시간과 간격, 지문을 토대로 3주간 '침입 연습'을 했고, 결국 문을 열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피해자가 한 차례 비밀번호를 바꿨지만, 침입은 피해자와 교제 중인 연인이 가해자와 맞닥뜨릴 때까지 여섯 번이나 반복됐다. 서울남부지법은 주거침입 혐의로 가해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전 연인의 집 도어록을 뜯어내고 임의로 새 도어록을 달며 침입한 사건도 있었다. 2021년 1월 충남 서산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헤어진 연인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해자는 시가 25만 원 상당의 도어록을 임의로 교체, 빈집에 들어가 속옷 세트와 원피스 등 총 1126만 원어치의 여성복을 훔쳤다. 그렇게 들어간 피해자의 집에서 "널 꼭 찾아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등의 협박 문자를 새벽 내내 보내기도 했다. 가해자에게 집행유예형이 선고됐다.

현관앞 자전거에 블랙박스를 달아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침입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내거나, 마스터키를 이용해 침입한 사례가 28건입니다.

주거침입 범죄의 가장 많은 유형은 여성이 집으로 들어올 때 따라 들어오는 것으로 49건입니다. 처음부터 여성을 노린 계획범죄입니다.

집까지 들어오지는 못했더라도, 문 앞에서 소란을 피워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한 경우가 58건입니다.

목욕탕 창문으로 침입하거나, 불법촬영을 시도한 사례가 24건입니다.

베란다나 창문으로 침입하는 경우가 35건입니다.

침입자가 면식범인 경우는 67건으로 이웃이 25건, 건물주, 관리인 등이 8건 등입니다.

주거침입 범죄 200건중 속옷을 훔친 사례가 36건으로 여성을 노린 주거침입은 재산상 침해 이상의 공포와 위협입니다.

일반 주택에 비해 아파트나 오피스텔이 안전하다고 여기지만, 주된 침입경로가 현관문이기 때문에 더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

여성에게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들어간다
▲ 가장 안온해야 할 곳, '집'. 여자의 집은 그럴 수 없다 ⓒ DALL·E

침입 창구는 출입구인 문에 국한되지 않았다. 사실상 사방이 뚫려 있었다. 가스배관이나 베란다 난간을 잡고 올라가 거실 창문을 열어 침입하는 사례부터 방충망을 손으로 잡아 뜯거나, 삽으로 창문을 깨 무작정 들어가기도 했다.

2021년 8월 5회에 걸쳐 성적목적 주거침입을 저지른 가해자는 피해자의 집 대문을 열고, 마당을 건너 화장실 창문에 자신의 휴대전화 카메라를 걸었다. 피해자는 21세 여성. "길을 가다가 우연히 피해자를 보고 마음에 들어 뒤따라 간" 시점이 1년 전인 2020년 7월이었다. 가해자는 1년에 걸쳐 피해자 집 화장실 창문을 통해 나체 상태의 피해자를 14회 불법 촬영했다.

피해자는 또 있었다. 가해자는 범행이 발각된 당일 도주하던 중에도 다른 여성의 주거지를 침입, 방안에 하의를 입지 않고 누워있는 피해자를 불법 촬영했다. 인천지법은 2022년 2월 "피해자는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호소하며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가해자에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어디로든 들어간다

한편, 판결문 분석 결과 드러난 숫자는 여자의 집은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명제를 입증했다. 전체 판결문 200건 중 침입 주거 형태가 드러난 사건은 총 148건이었다. 이 중 주거 형태가 주택인 경우가 36건으로 제일 많았다. 그러나 비교적 안전할 것이라 예상하는 아파트에서도 35건의 범죄가 발생했다. 그 뒤로 원룸과 오피스텔이 16건, 기숙사 및 고시텔 등이 5건으로 집계됐다.

침입 장소는 대체로 '문'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대문이 77건(이 중 도어락 이용 침입 28건), 현관문 앞이 36건, 빌라 등의 공동현관문 침입도 12건 있었다. 창문으로 침입한 30건(이 중 가스배관을 타고 창문으로 침입 4건), 담벼락에 올라탄 7건, 마당에 들어온 15건, 베란다로 침입한 4건, 공용 계단에 들어온 10건 등도 있었다.

여자의 집은 사방이 뚫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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