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스포츠인 테니스는 프로 선수들이 자신의 랭킹에 맞는 투어 대회에 출전하며 시즌을 치른다. 출전하는 대회에는 상금이 걸려 있어 선수들은 대회에서 따내는 상금으로 수입을 마련해 생활한다. 물론 인기 있는 선수들은 광고나 스폰서 같은 부수입이 붙기도 한다. 실제로 현역 시절 미녀 스타로 인기가 높았던 마리아 사라포바는 투어상금보다 광고나 스폰서로 얻는 부수입이 훨씬 많았던 선수로 유명했다.

1년에 수십 개가 넘는 투어 대회 중에서 호주 오픈과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을 '4대 그랜드슬램'으로 부른다. 당연히 대회 규모도 크고 총 상금 역시 다른 중소대회에 비해 훨씬 많은 편이다. 따라서 랭킹이 높은 선수들은 그랜드슬램 대회에 맞춰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2018년 호주오픈 4강에 올랐던 정현처럼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 그 선수의 위상이 단숨에 올라가기 때문이다.

4개의 그랜드슬램 대회 중에서도 가장 권위가 높은 대회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윔블던 대회다. 그리고 지난 2004년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에서는 윔블던 대회에 출전한 테니스 선수들의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제작해 개봉했다. 스파이더맨의 연인 메리 제인 왓슨으로 유명한 커스틴 던스트와 MCU에서 비전을 연기했던 폴 베타니가 주연을 맡은 영화 <윔블던>이었다.
 
 테니스 선수들의 러브스토리는 '로코 명가' 워킹타이틀에 의해 신선한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테니스 선수들의 러브스토리는 '로코 명가' 워킹타이틀에 의해 신선한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 UIP코리아

 
자비스와 비전으로 관객들에게 익숙한 배우

런던에서 태어난 베타니는 영국의 로얄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1997년 영화와 TV드라마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2000년 폴 맥기건 감독의 <갱스터 넘버 원>에 출연한 베타니는 질투에 눈이 먼 젊은 갱스터를 연기하면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1년 고 히스 레저 주연의 <기사 윌리엄>에서는 자신을 시인이라 자칭하는 도박꾼 제프리 초서 역으로 출연했다.

<뷰티풀 마인드>와 <도그빌>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등에서 인상적인 서브 주인공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던 베타니는 2004년 워킹타이틀의 로맨틱 코미디 <윔블던>을 통해 드디어 메인 주인공을 맡았다. 베타니가 은퇴를 앞둔 테니스 선수 피터 콜트를 연기한 <윔블던>은 31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4100만 달러의 성적을 올리며 흥행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하지만 베타니는 <윔블던> 이후 <파이어월> <다빈치 코드> 등에 출연했고 2008년에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인피니티 사가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 <아이언맨>에서 자비스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아이언맨 1, 2, 3>와 <어벤저스>까지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린 대작에 목소리로만 출연하던 베타니는 2015년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비전 역을 맡아 '고결한 자'만 들 수 있는 묠니르를 가볍게 들어 올리며 강렬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인피니티 사가에서 비전의 활약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워 머신을 격추시켜 제임스 로드의 하반신을 마비시키는 '팀킬'을 선보인 비전은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에서는 '끝판왕' 타노스에 의해 이마에 있던 마인드 스톤이 뜯기면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비전은 핑거스냅에 의해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에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도 끝까지 부활하지 못했다.

비전의 죽음을 끝으로 인피니티 사가에서 하차한 베타니는 같은 해 개봉한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범죄조직 크림슨 도운의 수장이자 그림자 집단의 고위간부 드라이덴 보스를 연기했다. 그리고 2021년 1월 디즈니플러스 채널의 첫 오리지널 드라마 <완다비전>에 출연했다. 인기 배우 제니퍼 코넬리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베타니는 제니퍼 코넬리와 슬하에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현실보다 먼저 윔블던에서 우승한 영국선수
 
 폴 베타니와 커스틴 던스트는 <윔블던>에서 각각 은퇴를 앞둔 선수와 떠오르는 스타선수를 연기했다.

폴 베타니와 커스틴 던스트는 <윔블던>에서 각각 은퇴를 앞둔 선수와 떠오르는 스타선수를 연기했다. ⓒ UIP코리아

 
젊은 시절엔 영국 전체가 주목하던 유망주였던 프로 테니스 선수 피터 콜트(폴 베타니 분)는 세계랭킹이 119위까지 떨어지며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고국에서 열리는 윔블던 대회를 은퇴무대로 삼으려던 피터는 잘못 들어간 호텔 객실에서 운명처럼 최고의 여성선수 리지 브래드버리(커스틴 던스트 분)를 만났다. 그리고 2라운드에서 리지의 응원을 받은 피터는 프랑스오픈 우승자에게 역전우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피터와 리지는 점점 가까워지지만 리지의 아버지 데니스(샘 닐 분)는 딸의 집중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피터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과거 연습상대를 만난 3라운드에서 승리한 피터는 영국 선수끼리 맞붙은 8강에서도 승리를 거두지만 피터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진 리지는 8강에서 패하고 말았다. 졸지에 전 영국인의 희망이 된 피터는 4강에서도 스페인 선수를 꺾고 영국인 최초로 윔블던 결승에 진출했다.

영국을 떠나기 위해 아버지와 공항에 온 리지는 결승을 앞두고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피터를 보게 된다. 결승에서 세트스코어 0-2로 뒤져 있던 피터는 폭우로 경기가 중단된 사이 대기실에서 리지를 만나고 리지는 피터에게 '전 남친' 하몬드의 버릇을 알려준다. 이를 파악한 피터는 리지의 응원을 받으며 대반격을 시작하고 결국 은퇴무대에서 영국인 최초로 윔블던 챔피언에 오른다(은퇴는 당연히 연기됐을 것이다).

프로 선수들의 출전이 허용된 1969년 이후 영국 국적의 선수가 윔블던 결승에 오른 것은 2012년의 앤디 머리(준우승)가 최초였다(머리는 윔블던 우승 2회, 올림픽 우승 2회로 2017년 영국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따라서 영화 <윔블던>이 개봉했던 2004년에는 영국 선수의 윔블던 우승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테니스 팬들이 영국 선수가 윔블던에서 우승하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커스틴 던스트는 <윔블던>에서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리지 브래드버리를 연기했는데 공교롭게도 2004년 윔블던 대회에서는 실제로 영화 속 리지를 연상케 하는 '테니스 요정' 사라포바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4년은 <스파이더맨>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커스틴 던스트의 최전성기였는데 던스트는 2004년에만 <윔블던>을 비롯해 <스파이더맨2>와 <이터널 선샤인>까지 무려 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선수와 에이전트로 만난 비전과 해피 호건
 
 MCU의 해피 호건으로 유명한 존 파브로 감독은 <윔블던>에서 눈치 빠른 에이전트로 출연했다.

MCU의 해피 호건으로 유명한 존 파브로 감독은 <윔블던>에서 눈치 빠른 에이전트로 출연했다. ⓒ UIP코리아

 
실제 골프나 테니스 같은 개인 스포츠에서는 선수의 아버지가 다소 극성스럽게 딸을 케어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윔블던>에서는 리지의 아버지 데니스가 매니저 겸 멘탈 코치 역할을 담당했다. 피터와 리지가 점점 친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데니스는 피터를 찾아가 딸을 흔들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리지를 영국에 남기고 혼자 출국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예비사위' 피터를 응원한다.

데니스를 연기한 샘 닐은 올해로 만 75세가 된 영국 출신의 베테랑 배우로 1970년대 후반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쥬리가 공원> 1편과 3편에서 고생물학자 앨런 그랜트 박사를 연기한 닐은 20년 넘게 시리즈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올해 개봉한 <쥬리가 월드: 도미니언>을 통해 21년 만에 그랜트 박사 역으로 시리즈에 복귀했다. 2017년에 개봉한 <토르: 라그나로크>에서는 토르가 관람하던 연극 속에서 오딘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MCU에서 토니 스타크의 운전기사 겸 경호원 역할을 했던 해피 호건 역으로 유명한 배우이자 <아이언맨 1, 2> <정글북> <라이온 킹> 실사판 등 대작들을 연출한 감독 존 파브로도 <윔블던>에 출연했다. 파브로는 <윔블던>에서 피터가 선전하자 눈치 빠르게 그를 찾아가 피터의 에이전트가 되는 론 로스를 연기했다. 피터와 그의 결승상대 하몬드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는 한 론은 결승에서 영국국기와 미국국기를 함께 흔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엑스맨> 비기닝 시리즈에서 프로페서 X, 찰스 자비에 역으로 유명한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도 <원티드>로 이름을 알리기 전 <윔블던>에서 피터의 얄미운 동생 칼 콜트 역할로 출연했다. 칼은 형이 경기를 치를 때마다 언제나 형의 상대선수에게 돈을 거는 습관이 있다. "형이 이기면 가족이 잘해서 좋고 형이 지면 내가 돈을 따서 좋다"는 논리인데 장난꾸러기 동생 칼도 결승에서는 진심으로 형을 응원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윔블던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 폴 베타니 커스틴 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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