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김민재-황희찬-황의조 등 유럽에서도 맹활약 중인 최정예멤버들로 완전체 전력을 구성했다. 힘든 원정 경기 대신 편안한 안방에서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코스타리카라는 비교적 해볼 만한 상대를 불러들였다. 한 명의 감독 체제에서 하루이틀도 아니고 4년이나 비슷한 멤버들끼리 비슷한 전술로 꾸준히 호흡을 맞췄다.
 
이 정도 됐으면 지금쯤은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도 내용도 영 시원치가 않다. 대부분 쓰는 선수들만 또 썼는데도, 조직력과 수비는 여전히 불안하다. 안방에서 역전패를 당할 뻔하다가 상대 퇴장으로 인한 수적우위를 등에 업고서 간신히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고질적인 취약점으로 꼽히는 오른쪽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는 개선되지 않았고, 경기가 안 풀릴 때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전술적 다양성이나 히든 카드도 보이지 않는다. 벤투호의 씁쓸한 현실이다.

벤투호의 마지막 모의고사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3일 오후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 친선경기에서 접전 끝에 2-2로 비겼다.
 
코스타리카-카메룬(27일)을 상대하는 이번 9월 A매치 2연전은 벤투호가 카타르 월드컵 최종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치른 마지막 모의고사였다. 역대 월드컵 대표팀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최정예 멤버들을 소집하여 팀전력이 완성단계에 접어든 상태에서 해외 강팀들과 정면대결을 펼쳤다.
 
여기서 보여준 결과와 내용이 사실상 월드컵 본선까지 그대로 이어진 경우가 상당히 많았기에, 사실상 '미리보는 월드컵'으로 꼽혔다. 대표적인 경우가 4강신화를 이룬 2002 한일월드컵의 히딩크호와, 원정 16강을 이뤄낸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허정무호다. 월드컵을 두 달 앞두고 치러진 A매치에서 핀란드-코트디부아르 등을 원정에서 완파하며 상승세를 탄 바 있다 .
 
하지만 벤투호는 월드컵을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서도 여전히 불안한 경기력을 노출했다. 코스타리카전은 변화나 실험보다는 어디까지나 '완성도'에 초점이 맞춰진 경기였다. 김민재-이재성 등이 주전급들이 부상으로 빠진 6월 남미 4연전이나,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 치러진 7월 동아시안컵과 달리, 최정예 선수들이 모두 정상적으로 합류했고, 심지어 홈경기였다. 보수적인 벤투 감독의 성향대로, 선발명단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핵심 선수들이 그대로 나섰다. 사실상 이 멤버가 월드컵에서도 벤투호의 베스트 라인업이 될 것이 유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투호는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황희찬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코스타리카 쥬이슨 베네테에게 연달아 실점하여 역전패 위기에 몰렸지만 후반 막판 손흥민의 프리킥 득점으로 겨우 패배는 면했다.

물론 피파랭킹 34위의 코스타리카가 결코 약한 팀은 아니지만, 한국축구가 본선에서 만날 포르투갈(9위), 우루과이(13위)보다는 확실히 한 수아래다. 한국이 '1승 제물'로 지목했던 가나(60위) 역시 최근 귀화선수 카드로 전력이 향상된 점을 고려하면 코스타리카가 더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벤투호는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역시 특유의 빌드업을 기반으로 한 점유율 축구를 펼쳤다. 전체적으로 경기를 주도한 것은 좋았지만 역시 마무리 능력이 부족했다. 또한 힘들게 골을 넣은 것과 달리, 수비에서는 역습 상황에서 실수와 집중력 부족으로 쉬운 실점 위기를 허용하는 장면이 잦았다. 최근 유럽에서 절정의 폼을 보이고 있는 김민재가 복귀했음에도 2골이나 내줄만큼 수비불안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것이 뼈아프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코스타리카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나게 될 월드컵에서 과연 이런 수비 조직력으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뚜껑을 연 코스타리카의 전력은 역시 남미 4연전이나 동아시안컵에서 만난 일본보다 더 강한 팀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벤투호가 고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상대의 강한 '전방압박'으로 빌드업 자체가 봉쇄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코스타리카의 경우는 브라질이나 일본처럼 적극적인 전방압박보다는 라인을 내리고 선수비 후역습에 무게를 둔 경기운영을 펼쳤다.

그 덕분에 벤투호는 이전 경기보다 수월하게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지만, 정작 월드컵에서도 이런 식으로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의 경기를 펼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빌드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졌음에도 공수전환이 빠른 상대에게 역습 한방에 흔들리는 약점은 여전했다.
 
골키퍼와 포백 라인은 오른쪽 풀백 윤종규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수년간 벤투호에서 꾸준히 중용된 베스트멤버들이었다. 그런데 4년간 한 팀에서 호흡을 맞춘 선수들이 맞나 싶을만큼 조직력이 매끄럽지 않았다. 특히 김민재-김영권의 센터백 라인보다는 김진수-윤종규의 좌우풀백간 공수 밸런스가 맞 지않아 공격 가담시에 수비 뒷공간을 내주는 문제점이 자주 반복됐다.
 
이번 코스타리카전 라인업에서 사실상 유일한 변화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윤종규 뿐이었다. 벤투호 부동의 오른쪽 풀백 이용이 노쇠화 조짐을 보이고, 김문환-김태환 등도 확실한 입지를 다지지 못하면서 윤종규가 대안으로 부상하여 기회를 잡았다. 윤종규는 공격적인 면에서는 도움을 기록하는 등 어느 정도 활약했지만, 정작 본업인 수비에는 A매치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국제 경기의 템포 적응이나 기존 선수들과의 호흡에서 아쉬운 모습을 연거푸 노출했다.
 
또한 불안정한 포백을 보호하고 상대의 역습을 1차적으로 차단해주는 역할을 해야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정우영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벤투호는 기성용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이후, 사실상 정우영이 부동의 주전으로 낙점되었지만 강팀들과의 평가전에서 여러 번 아쉬운 모습을 노출한 바 있다.
 
이번 대표팀에 새롭게 가세한 손준호가 후반 교체출장했지만 뭔가 확실한 안정감을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현재 대표팀에서 2002년의 김남일이나 2010년의 김정우만큼 중원 장악력이 뛰어난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는 데다, 월드컵에서 전력상 열세인 한국이 '원 볼란치' 전술로 나서는 것은 위험부담이 커보인다.
 
그나마 공격전에서는 유럽파인 손흥민과 황희찬이 득점을 기록하며 경쟁력을 확인했다. 특히 손흥민은 지난 소속팀에서의 해트트릭에 이어 대표팀에서도 골맛을 보며 최근의 부진에서 확실히 벗어난 모습이다.

손흥민은 A매치 통산 4번째 프리킥 득점을 성공시키며 하석주와 A매치 공동 1위에 올라섰다. 그의 프리킥이 월드컵에서도 확실한 득점루트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역전을 허용하는 2번째 실점의 빌미가 된 장면이 손흥민이 아군 진영에서 공을 빼앗기는 실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옥에 티였다.
 
1년 7개월만에 A대표팀에 복귀하여 미디어의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모았던 이강인을 끝내 활용하지 않은 선택도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벤투 감독은 코스타리카와의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는 가운데, 창의적인 패스와 플레이메이킹으로 경기흐름을 바꾸는 '조커'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이강인을 투입하지 않았다.
 
벤투 감독은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 "모든 선수들이 다 경기에 나설 수 없다"면서 출전하지 못한 다른 선수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답을 회피했다. 최소한 이강인이 벤투 감독의 플랜에서 교체멤버로도 우선순위 옵션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된 셈이다. 남은 카메룬과의 경기에서도 이강인이 출전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인상적인 모습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월드컵 출전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벤투 감독은 4년간 자신의 입맛대로 대표팀을 운영해왔다. 선수들의 개성을 살리는 축구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축구스타일에 한국축구를 끼워맞추는 방식이었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소통을 하거나 변화를 주기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월드컵에서 한국을 기다리고 있을 포르투갈과 우루과이, 가나는 과연 지금의 벤투호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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