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에서 마약왕으로 활약한 조봉행을 모티브로 하는 넷플릭스 <수리남>은 중남미 마약 문제뿐 아니라 미국의 마약정책까지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극중의 마약업자 전요환(황정민 분)은 브라질 북쪽 대서양 연안의 수리남에서 활동한 조봉행을 연상시킨다. 한국인인 조봉행은 어떻게 1990년대에 중남미로 이주해 마약왕까지 될 수 있었던 걸까. 
 
가짜 목사 전요환은 코카인 밀매업을 발판으로 수리남에 자기 나름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는 마약과 무관한 한국 기업인 겸 교회 신자인 강인구(하정우 분)를 거리낌없이 희생시킨다. 현지에서 홍어를 헐값에 수입해 한국에 내다파는 강인구의 화물 속에 자기 마약을 몰래 넣어 한국에 유통시키려 한다. 이것이 발각나서 강인구는 머나먼 객지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지난 9일 첫 공개된 <수리남>에서 언급됐듯이, 전요환은 콜롬비아에서 밀수한 코카인을 수리남 현지에 유통시킨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한국뿐 아니라 미국으로도 유통망을 확장시키고 싶어 한다. 이 같은 전요환의 욕망은 본능적으로 미국을 향하는 중남미산 마약의 유통 구조를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은 태평양 건너 동아시아나 대서양 건너 동유럽뿐 아니라 미국의 앞마당인 중남미에서도 안보 위협을 찾아낸다. 미국은 쿠바 공산주의는 물론이고 남미 좌파가 자국의 안보나 권위를 손상시킬 가능성을 항상 우려한다.
 
미국이 마약을 경계하는 이유
 
영화 <수리남> 스틸컷 영화 <수리남> 스틸컷

▲ 영화 <수리남> 스틸컷 영화 <수리남> 스틸컷 ⓒ 영화 <수리남> 스틸컷

 
그런 차원에서 미국은 중남미로부터 공산주의나 좌파 이념이 유입되는 것뿐 아니라 마약이 흘러들어오는 것도 경계한다. 미국 체제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마약은 대중의 보건을 해치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는 물건이다.
 
그런 미국의 눈에 위협적인 현상이 1960년대에 두드러졌다. 이 시기에 미국 지배층은 청년 대중 사이에서 마약이 확산되는 광경뿐 아니라 그것이 체제 안보를 위협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미국 지배층에게 그런 두려움을 준 집단이 흔히 말하는 히피족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마약 흡입이 미국 내에서 급속히 확산됐다.
 
1967년 5월 28일자 <조선일보> 기사 '미국의 새 반항세대 히피족'은 "워싱턴을 비롯하여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뉴올리안즈 등 대도시에 비 온 뒤의 버섯처럼 돋아나는 이들 히피족은 줄잡아 30여 만이 넘는다"고 한 뒤 "이들은 예외없이 엘에스디(환각제)의 힘을 빌어 '길고 행복한 여행'을 즐긴다"라며 "당국이 엘에스디를 불법화하자 마리후아나(삼 종류의 마약)와 바나나 껍질을 가공하여 마약 파티를 벌이곤 한다"(괄호는 원문 그대로)고 보도했다.
 
마약을 흡입하며 나름의 자유를 추구하는 히피족을 보면서 미국 지배층이 우려한 것은 이들의 건강이 아니라 이들의 생활방식이었다. 이들은 돈이 생기면 함께 쓰고 함께 먹으며 사유재산을 축적하지 않았다. 또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번다'는 명언을 읊조리고 다녔다.
 
미국 경제와 기업을 이끄는 지배층은 사유재산제도에 역행하는 이들의 생활방식은 물론이고 노동 관념을 약화시키는 이들의 신조에도 우려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위 기사는 "그들의 '사는 방법'에 사회는 크게 동요하고 있다"라며 미국 지도층 인사들이 이들을 얼마나 경계하는지 설명한다.
 
마약이 국민보건을 악화시켜 산업생산성을 떨어트리는 수준을 뛰어넘어 반체제·반사회적 이념 전파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각각 1973년과 1982년에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배경이 됐다. 전쟁 수준의 대응을 한 것은 마약 확산이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체제 안보에 미치는 영향 역시 간단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약의 주요 공급지가 중남미였기 때문에, 미국의 중남미 정책에서는 마약 문제 역시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중남미 지도자들을 마약 혐의로 사법처리하는 일이 종종 보도되는 것은 중남미 마약에 대한 미국의 예민함을 반영한다.

미국 마약정책의 허점
 
영화 <수리남> 스틸컷 영화 <수리남> 스틸컷

▲ 영화 <수리남> 스틸컷 영화 <수리남> 스틸컷 ⓒ 영화 <수리남> 스틸컷

 
그런 일이 최근에도 있었다. 작년 3월 9일(현지 시각), 미국 검찰이 법정에서 '온두라스 대통령인 후안 오를란드 에르난데스가 마약의 미국 밀반입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더니 에르난데스가 퇴임한 뒤인 금년 4월 21일(현지 시각), 그가 마약범죄 피의자 신분으로 미국에 인도됐다.
 
미국이 외국의 국가 위신까지 무시하면서 중남미 마약을 단속한다는 점은 미국이 중남미 마약의 유입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중남미 마약을 그처럼 경계하고 단속하는데도 미국의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산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자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정책 자체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책에서 나타나는 이중성이 정책 효과의 산출을 저해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조봉행의 상부 조직이었던 콜롬비아의 칼리 카르텔을 분석한 조성권 한성대 마약학과 교수의 논문 '마약조직 지속성의 원인에 대해'라는 논문에 그 같은 이중성이 설명돼 있다. 2007년에 <이베로아메리카> 제9권 제1호에 실린 이 논문은 미국의 마약 단속이 벌어지는 속에서도 칼리 카르텔이 3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한 배경 중 하나를 그 같은 이중성에서 찾는다.
 
미국은 중남미 마약조직들을 적대시하지만, 그들이 반공 이념을 표방할 때는 얼굴색을 바꿔왔다. 마약 조직이 반공을 표방할 때는 이들을 묵인하는 정도를 벗어나 아예 후원하기까지 했다. 1986년에 발생한 레이건 행정부의 콘트라 반군 스캔들이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미국은 콘트라 반군이 마약 사업을 하는데도 이들이 반공 이념을 표방한다는 이유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위 논문은 "레이건 행정부가 대내적으로 각종 반(反)마약 캠페인을 전개하고 각종 반마약법을 제정했지만 대외적으로는 CIA를 통해 반공 게릴라를 지원한다는 미명하에 반공게릴라의 마약 밀매를 묵인 내지는 후원하는 이중적 정책을 취한 것이 역설적으로 콜롬비아 카르텔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레이건 행정부의 이중성이 콜롬비아 마약산업을 부추기고 이것이 훗날 조봉행의 활동에도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미국이 우파 반군이 아니라 우파 정권을 지원할 때도 문제가 있었다. 미국은 중남미 우파 정권들이 미국 지원금을 마약 퇴치가 아닌 정치투쟁에 전용하는 것을 방관했을 뿐 아니라 우파 정권들이 마약 퇴치를 빌미로 국민 인권을 침해하는 것도 방관했다. 이로 인해 미국에 대한 평판이 떨어지게 됐으니, 미국의 중남미 마약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의 중남미 마약정책이 커다란 성과를 냈다면, 중남미 현지 세력가도 아닌 일반 한국인이 낯선 수리남에까지 가서 마약왕으로 등극하는 일이 그처럼 쉽게 일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봉행 사례는 미국 마약정책의 모순과 한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수리남 조봉행 중남미 마약 미국 마약정책 콜롬비아 마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