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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부산)강서노인종합복지관에서 펴낸 강서그림책 '예쁜 할매할배 이야기'에 실린 총 네 편의 이야기 중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출판 등록 되지 않은 비매품으로 소량 발간된 책자입니다. 저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20년 넘게 일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치매에 들더라도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다함께 살아가는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야기를 공유합니다.[기자말]
[이전 기사] 요양원서 난동 부린 치매 노인의 극적인 변화 http://omn.kr/20eo2

저는 치매노인입니다. 여기서는 그냥 여러 치매노인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침대에서, 같은 시간 안에 밥을 먹어야 하고 같은 시간에 기저귀를 갈아 입습니다. 좀 느려서 그렇지 밥 정도는 혼자 먹을 수 있는데 옆에서 간병인이 기다리질 못하더라고요.

떠먹여주는 밥을 삼키지 못하고 우물거리고 있으면 이내 국에 밥, 반찬을 다 말아서 먹여줘요. 먹는 낙마저도 사라지는 것 같아 슬퍼요.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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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적응 안 되는 건 기저귀예요. 제가 오늘 기저귀 때문에 대형 사고를 하나 쳤어요. 사고 친 이야기 한번 들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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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 생활이 어언 1년을 넘어가지만 아직 적응이 안돼요. 이것저것 하도 약을 많이 먹은 탓인지 늘 물똥이 비실비실 새어나오는데, 처음에는 엉덩이에서 시작해 아랫도리 전체로 뜨듯한 질감이 번져갑니다. 이내 싸늘하게 식으면 아랫도리가 축축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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묽은 똥이 통제되지 않고 슬금슬금 어찌나 자주 나오는지 차라리 영원히 변비에 걸렸으면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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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정해진 시간에만 기저귀를 갈아주기 때문에 간병사는 이 말을 달고 살아요. "아이고 어르신 10분만 기다려 주세요." 참는 건 잘한다 생각했는데, 누워만 있으니 십 분이 천 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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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일을 기다려 얻은 엉덩이의 뽀송뽀송한 쾌감도 잠시... 속절없이 또 똥이 물 같이 흘러나오는데 미칠 지경이지요. 야이, 똥아! 똥아! 너까지 왜 이러냐... 이제 막 기저귀 새로 갈았는데.

요양병원 짬밥 일 년이 되니 기저귀에 똥, 오줌을 누는 건 그나마 좀 익숙해졌어요. 처음엔 변기도 아닌데 누워서 그냥 똥을 누라고 하니, 옷에다 변을 보는 느낌이었거든요. 누워서 그냥 옷에다 변보는 기분 참 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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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직 적응이 안 되는 불편함이 남아 있어요. 원래 좀 예민한 편입니다만, 나이 먹고 피부가 더 약해졌는지 기저귀 비닐의 까실까실한 것이 계속 신경을 건드려요. 닿는 부위에 발진이 생기니 더 그렇구요.

그런데 말이에요. 변이 새고 침대보를 적시는 일이 자꾸 생기니 간병사들이 독이 올랐나 봐요. 최근 들어 어찌나 힘주어 기저귀를 휘감고 단단하게 고정시키는지 몰라요.

남들보다 절반도 안 되는 허리통이라 곱절이나 많이 휘감는 것 같아요. 숨 쉬기도 버겁고 톡 불거진 비닐부분이 계속 피부를 찌르는데,  아주 신경날이 빠짝 빠짝 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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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와서는 말을 하지 않아 산입에 거미줄 치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싶었던 입을 몇 번이나 웅얼거리고 나서야 간신히 토하듯 고함쳤어요. "너... 너무... 쪼이고... 따가워! 조금만 풀어줘!"

간병사는 이리저리 내 옷과 기저귀를 만지작대더니 이렇게 이야기해요. "아이고, 어르신. 이렇게 해야 변이 새지 않아요. 변이 새면 추운데 다시 목욕해야 돼요. 조금만 참아보세요. 금세 적응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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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간병사 말이 일리가 있다 싶어 여러 날을 꾹 참아냈어요. 근데 침대에 누워만 있으니 온통 신경은 까칠한 기저귀란 놈에게 죄다 쏠릴 수밖에 없었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이번엔 다른 간병사에게 부탁해야지 싶어 눈을 희번덕거리며 간병사 유니폼 끝자락만이라도 보이길 기다리다 외쳤습니다. "선생님~ 기저귀 좀 풀어줘요~"

저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랐는지, 방을 스치던 간병사가 쪼르르 달려왔어요. 손을 넣는 시늉을 하며 뗐다 붙였다 만지작거리더니 큰 선심 쓰듯 내뱉더라구요. "조금 느슨하게 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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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집중해 느껴보는데 아무런 차이가 없었어요. 사람 놀리나 싶었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 들더라구요. 짜증이 북받치니 앙상하게 마른 가지처럼 오그라진 손이었지만 갑자기 없던 힘이 붙더라구요. 기저귀를 마구 헤집고 쥐어 뜯어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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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가 해체되고 나니 나도 모르게 똥으로 손이 가는 거예요. 오늘따라 변이 너무 많이 나왔거든요. 축축함을 견딜 수가 없었죠. 기저귀에서 해방된 김에 똥에서도 해방되어보자 싶었나 봐요. 아랫도리를 장악한 똥을 마구 훔쳐내기 시작했어요.

주위에 휴지도 없는데 손에 황칠된 똥을 보자 아차! 싶었어요. 너무 당황하니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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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간호사를 부르고 난리가 났죠. 정신을 차려 보니 손에 묻은 똥을, 침대며 난간이며 온 벽지에도 닦았더라고요. 벽에 똥칠할 정도로 치매가 심해지면 이제 다 된 거라던데... 나도 다 된 걸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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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대형사고를 친 뒤에 대가를 톡톡히 치렀어요. 기저귀에 닿지 못하게 손이 묶였거든요. 희한하게도 말이지요. 손이 자유로울 땐 기저귀의 비닐이 그토록 거슬렸는데 손발 묶이고 나니 오히려 편해졌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싶으니 절로 모든 걸 내려놓고 포기하게 되는가 봐요. 이렇게 또 신비한 경험을 하면서 배워간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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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생각해봅시다

치매 증상 중에 배회가 있습니다. 치매노인이 집을 나가 배회하는 바람에 길을 잃고 온 가족이 찾아 헤맨 이야기는 아주 익숙합니다. 우리는 치매노인이 이유 없이 괜히 밖에 나가려고 고집 피운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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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할배, 요양원 잘못가면 치매가 더 심해져요>라는 다소 길고 특이한 제목의 책이 있는데요. 이 책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배회하는 치매노인에게 진지하게 묻고 경청을 해보면 여자노인의 경우, 대개 가정에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꼭 집에 가야한다고 답합니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해야 하는데 여기 이 불안하고 낯선 곳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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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노인의 경우, 대개 일터에 가야 된다 하시죠. 가족 먹여 살려야 하는데 여기 이 불안하고 낯선 곳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짠해집니다. 치매라는 병을 떠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 한 인간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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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들었어도 이 관계를 지키려고 몸부림 치고 있을 뿐이고 이것이 배회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그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도 된다는 것을 순간순간 반복해서 잊어버리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낯설고 불안한 환경이라면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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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노인은 바보가 아닙니다. 내가 존중받는지 무시받는지 느낍니다. 무시당하면 무의식적으로 직감합니다. 감정, 정서 영역을 관장하는 뇌 변연계는 가장 오랫동안 정상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계 속에서 느끼는 정서적인 고통은 다양한 주변증상을 만들어 냅니다.

가장 유명한 치매의 주변증상이 뭘까요? 바닥과 벽에 변을 칠하는 '농변 행위'가 아닐까요? 흔히 이를 인격붕괴의 극치라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저귀 안에 변이 있으니까 불쾌한 감정이 들었을 뿐이고 그것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서 변을 손으로 만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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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와 편리를 위해 바로 기저귀부터 채우고 손을 결박하고 약물 사용 이외에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하는 병원이나 시설이 있다면 재고해 봐야 합니다. 치매노인 역시 불안, 불쾌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편안하고 행복한 관계를 원하는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전혀 인정하지 않는 지독한 편견을 갖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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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인사이트>에서 소개된 '조용한 혁명'이라는 다큐가 있습니다. '휴머니튜드'라는 새로운 돌봄 방식으로 치매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이 가능함을 보여주면서, 제목처럼 혁명 또는 기적으로 느껴지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야기 속 기적의 비밀은 사실 돌아보면 비밀도 아닌 것 같습니다. 치매 노인도 우리처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평생 분투해온 똑같은 사람이었음을 알고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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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 간병의 특별한 비법이나 간병 공식은 없죠. 뇌의 어느 부분이 먼저 무너지느냐에 따라 치매증상은 다양합니다만 그냥 같은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사회적으로 평안하고 안정된 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알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입니다. 새로운 돌봄 기법을 이야기하는 휴머니튜드 역시, 이러한 반석 같은 철학 위에서만 유효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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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노인 역시 환자이기 이전에 존중받기를 원하고 행복한 관계를 누리고 싶어 하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치매노인은 과연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저는 우리와 똑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매노인은 원래 저러하니 결박과 약물을 통한 통제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은 지독한 편견이었음을 알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치매의 주변증상... 통제의 대상이 아닌 이제 해석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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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할배, 요양원 잘못가면 치매가 더 심해져요 - 방복하는 요양, 닭장에 가두는 요양

나가오 가즈히로, 마루오 타에코 (지은이), 위경, 한창완 (옮긴이), 북스타(Bookstar)(2016)


태그:#휴머니튜드, #예쁜치매, #순수치매, #치매주변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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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동물, 식물 모두의 하나의 건강을 구합니다. 글과 그림으로 미력 이나마 지구에 세 들어 사는 모든 식구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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