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3 11:53최종 업데이트 22.09.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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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재수생, 대학교 졸업반, 취업준비생.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명절마다 고통받는 존재라는 게 아닐까. 예전만큼 대규모로 친척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식사를 나누는 일은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 적은 수일지라도 평소에 보지 않던 친척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게 명절이다.

물론 이 시기마다 반복되던 소위 '어르신'들의 오지랖이 비판을 받은 지 꽤 시간이 흘렀고 아마 이 일에 앞장서던 사람들 중 몇몇은 그들이 비판했던 어른들의 자리 근처 정도에 가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노골적으로 외모·소득·학교·결혼 그 외 기타 민감한 사생활을 캐묻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런 사람이 여전히 적다는 게 문제이지만.

그런데 여기에 애매한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 가령 오지랖이라 보기 어려운 사생활에 대한 질문은 어떠한가. 명절 친척 모임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모인 사람의 세대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이들이 즐기는 문화나 가지고 있는 관심사는 제각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 자리에서 가령 아이브의 신곡인 'After Like'가 얼마나 엄청난 곡인지 이야기 한다고 해도 일단 그게 뭔지 알아듣는 사람 자체가 적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세대를 아우르는 다른 주제는 없냐고? 물론 있다. 도저히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 없는 국가적 사건이나 정치적 이슈가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이 주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남은 주제는 결국 서로의 근황뿐인데 이러니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취업을 준비 중인 상황, 지원했던 회사에서 떨어진 일, 목표로 하던 대학을 바꾼 이유 등등.

'준비생'으로 사는 건 소진되는 일

명절이 지나고 자존감이 하락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사실은 본인도 자기가 마뜩잖은 것이다. 물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너무나 대견하고 만족스러운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이 있거나 자기 일이 있는 사람들은 바빠서 자괴감에 빠질 틈이 없거나 그 속에서 얻는 최소한의 효능감 덕분에 비교적 상처를 덜 받고 일상을 버텨내게 된다. 그러나 준비 단계에 있는 사람은 이게 어렵다. 하루하루 노력은 하는데 보상이 즉각적이지 않다. 시험이든 면접이든 주어진 순간에 원하는 결과를 성취하지 못하면 그 기회는 그냥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대학 입학이나 취업 준비는 결국 집중을 요구 받는 자기와의 싸움이라 일상이 알아서 바빠지는 것도 아니다.

한 번의 보상을 위해 뭔가를 계속 준비한다는 건 사람이 천천히 소진되어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적당한 휴식과 취미 생활을 통한 재충전은 가능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수험생과 취업 준비생들에게 그럴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목표한 것을 이루기 전까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갈증도 분명히 있다. 휴식으로도 오락으로도 해소할 수 없는 답답함. 사람이 소진되고 있다는 건 취약한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작은 말과 일도 오래 곱씹게 되거나 상처로 남는다. 설령 비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도 상대적으로 일이 잘 풀린 친척의 근황을 알게 되면 괜히 마음이 쓸쓸해진다. 혹은 분명히 독려하려는 의도로 상대방이 조언을 한 걸 알아도 그 말에 심사가 뒤틀리기도 한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오전 서울역에서 역귀성객이 열차에 올라 가족의 배웅을 받고 있다. 2022.9.12 ⓒ 연합뉴스

 
어쩌면 당연한 불안, 절대로 자책하지 말자

설날이든 추석이든 명절이 돌아올 때면, 그와 관련한 글을 적곤 했다. 가령 명절 때 서로 지켜줬으면 하는 에티켓이나 성평등 명절이 모두에게 좋은 이유 등등. 하지만 돌이켜 곰곰이 생각해보면 명절에 생긴 일의 여파는 이후로도 이어지는데(명절 이후에 이혼이 급증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여기에 대한 글을 적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친척들 틈바구니에서 심란함과 의도치 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준비생'들에게도 글을 남겨본 적이 없다. 밀린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조언을 남긴다.

대학 입시부터 취업 혹은 재취업을 앞둔 모든 준비생들에게. 명절이 끝나고 친척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에 괜히 미운 마음이 들거나 싱숭생숭한 감정이 생겨도 절대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결코 당신이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소심해서 그런 게 아니다.

앞서 하나의 성과를 위해 장기간 보상 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세세하게 묘사한 건 단순히 그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당신이 자신의 마음에 대한 글을 읽고 왜 그런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여 노여움과 우울함에 자책까지 얹지 않기를 바라며 쓴 것이다. '투정'하지 말라고 쓴 것도 아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는 충분히 표현하고 해소할 필요가 있다. 여기저기 당신의 감정을 이야기해도 좋다.

하지만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렇게 여기저기 자신의 마음을 터놓는다고 해서 불안감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당신의 불안감은 장시간 노력을 한다 해도 보상이 정말로 돌아올지 불확실하다는 데서 온다. 원하는 결과를 얻거나 포기하기 전까지 이건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감을 완전히 없애려 하지 말고 이를 가지고도 목표를 향해 잘 나아가는 요령을 얻는 게 필요하다.

물론 나도 다 잘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명확히 아는 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된다. 그리고 불안이 아예 없다는 건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다는 뜻인데, 이러면 될 일도 망하는 경우가 많다. 적당한 불안은 오히려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생각보다 진심의 힘은 세다

그런데 조언을 들어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신나게 모여서 먹고 놀고 수다를 떨다 돌아왔는데, 한창 입시나 취업을 준비 중인 사촌이나 조카에게 의도치 않게 말실수를 한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그 실수를 만회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켜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가급적 전화로 해명하려고 하지 말자. 물론 문자보다 통화가 감정을 전달하기 용이한 면이 분명히 있다. 문자로 하면 생길 오해도 말로 하면 안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상대방은 전화 통화는커녕 잠깐의 대화조차 부담스러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전화 통화는 생각보다 기력이 꽤 소진되는 일이다. 굳이 말로 풀고 싶다면 먼저 전화 통화가 괜찮겠냐고 물어보자. 상대방이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두 번째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하려고 하지 말자. 그냥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마음이 어땠을지 이해하려 하자. 그리고 그 사람을 얼마나 아끼는지 표현하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어차피 상대방도 당신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이미 가늠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데도 그 말이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지지 않는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혹시나 그냥 지나가면 될 걸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면 그 마음은 잠시 내려놓자. 그리고 솔직하게 미안함과 후회를 전달해보는 건 어떨까. 진심은 생각보다 더욱 강하게 상대방의 마음을 감싸고 움직인다. 그리고 마음을 짓누르던 노여움과 씁쓸함이 해소될 때의 상쾌함은 상대방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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