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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데 우편함에 몇 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조보가 뭐지?"

그 중 한 권의 제목을 보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금시초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조보에 대하여 아주 소상히 알게 되었다. 무지한 나에게 한 권의 책이 한 일이다.
 
국운을 바꿀 수도 있었던 신문과, 백성의 눈을 뜨게 하고 싶었던 소녀 이야기, 조선을 뒤흔든 세계 최초의 활자 신문에 얽힌 이야기를 최초로 다룬 안오일의 청소년 역사소설
▲ "조보 백성을 깨우다" 표지 국운을 바꿀 수도 있었던 신문과, 백성의 눈을 뜨게 하고 싶었던 소녀 이야기, 조선을 뒤흔든 세계 최초의 활자 신문에 얽힌 이야기를 최초로 다룬 안오일의 청소년 역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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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안오일은 시인이자 작가다. 청소년 시집과 청소년 소설 그리고 동화책까지 여러 권의 책을 낸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책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조선시대를 뒤흔든 세계 최초의 활자신문'이자 '민간 인쇄 조보'의 발행을 처음으로 다룬 청소년 역사소설이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이런 물음이 생긴다.

'민간 인쇄 조보가 폐간되지 않고 계속해서 발행되었다면, 그래서 백성들의 눈과 귀가 되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열네 살 어린 소녀 '결'이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승정원에서 그날그날의 소식을 모으면 기별 서리들이 필사해 '조보'라는 일종의 신문을 만들었고, 이는 전국으로 배송되었다. 이 조보를 만드는 곳이 기별청인데, 결이 아버지 이필선이 바로 거기서 일을 하는 기별 서리다.

결이는 아버지가 퇴청하면서 가끔 가져오는 조보 필사본을 모아 두었다. 사람들이 아버지가 필사한 기사를 읽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곤 했던 것이다. 다음은 그 기사 중 하나다.
 
'말이 끄는 호화로운 수레를 타고 다니는 자들이 많다. 심지어 병마절도사(지역사령관)까지 그러한 수레를 타고 다닌다. 전쟁이 일어나면 안장 얹은 군마를 타고 쌩쌩 달리며 창칼을 휘두를 수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35쪽)
 
결은 생각한다. 만약 조보가 없었다면 이런 자들은 더 많이 생겨났을 것이라고. 조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와야 비리를 마음 놓고 저지를 수 없게 되리라고.

그래서다. 기별 서리들이 조보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언론 조작이 일어날 수 있다. 비리를 마음 놓고 저지르고 싶은 자들의 소행일 것이다. 오늘날의 언론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이필선은 그 세력과의 싸움에서 처참하게 당한다.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 수법도 오늘날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소설의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도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고 우울하다.

관아 이방으로 있는 결의 외숙부 김완용은 사또 비위를 맞춰 가며 자기 실속 챙기기에 혈안이 돼 있다. 그는 이따금씩 누이의 남편인 이필선을 찾아오는데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조보에서 사또의 비리를 빼달라는 것. 청렴하기로는 그의 아버지 못지않은 이필선이 그 청을 들어줄 리가 없다. 하지만 결국은 들어주고 만다. 그 과정이 복잡하고 아프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 결이의 상대역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명의 남성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결이 아버지와 기별청에서 같이 일하는 후배 기별 서리 안승우다. 결이도 아버지의 권유로 기별청에서 잠시 같이 일을 하게 되어 그를 만나게 된다. 열네 살 소녀인 결이는 안승우와 함께 일을 하면서 존경과 연심을 동시에 품게 된다. 두 사람의 풋풋한 '청소년 급 러브스토리'가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또 한 사람은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동무 덕배다. 그는 결이의 이름이 '무명'이었다는 사실도 안다. 언젠가 덕배는 결이에게 '무명'이란 이름을 써달라고 한다. 결이는 그 이름이 자기 이름이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 두 글자를 써준다. 덕배는 글자를 모른다. 글을 배운 적이 없고, 배우는 것도 싫어한다. 자기 머리는 배울 수 있는 머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애당초 안승우와는 상대가 될 만한 감이 아니다.

하지만 덕배에게도 한 가지 잘하는 것이 있다. 꽃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박식하고 식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언젠가 덕배가 결이에게 해준 말이다.

"이 꽃들은 말이야, 어두운 땅속에 있는 뿌리들이 피워 낸 거야. 뿌리는 밖에 있으면 안 돼. 캄캄한 땅속에서 흙을 잡고 있어야 꽃을 피울 수 있는 거지."

이 말을 들은 결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다 같이 한 줄기로 가도 꽃잎과 뿌리처럼 각자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누가 꽃잎이 되고, 누가 뿌리가 될지는 그때그때 쓰임에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닐까?'

결이의 원래 이름은 '무명'이었다. 할아버지가 손녀딸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결이의 할아버지 이상선은 관아의 아전으로 일하다 얼마 전 그만 두었다. 고을 사또의 비리를 보다 못해 스스로 자리를 내놓고 나와 버린다. 그런 할아버지가 손녀딸의 이름을 '무명'으로 지어준 걸 보면 한 개인이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이 아버지 이필선은 달랐다. 언젠가 그가 딸에게 해준 말이다.
 
"변화는 아는 만큼 이루어지는 법이다. 또한 아는 만큼 속지 않게 되지. 그러니 백성들도 알아야 한다. 안 좋은 일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알아야 하고, 좋은 일은 널리 퍼지도록 알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느냐."(36쪽)
 
결국 결이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값을 하게 된다. 열네 살 어린 소녀가 주도한 '민간 인쇄 조보 발행'을 통해서 절망적인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다. 그 과정이 매우 사실적이고 감동적이다. 책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이 책을 청소년을 둔 부모가 먼저 읽고 자녀에게 권해주면 좋겠다. 그런 다음 이 소설을 징검다리 삼아 부모자식 간에 대화를 통한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이보다도 바람직하고 훌륭한 교육도 없을 것 같다.

민간 인쇄 조보가 실제 역사에서는 어땠을까? 이 책의 맨 뒷장에 '작가의 말'이 나오고, 그 바로 앞장 '알아두기'에 조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조보란?
조선시대 조정에서 배포한 일종의 신문이다. 왕의 명령, 새로 정해진 조정의 정책, 관리의 인사이동, 관리나 유생이 올린 상소와 그에 대한 왕의 답변 등을 담았다. 승정원에서 그날 전할 소식을 선별해 내놓으면 '기별 서리'들이 이를 손으로 적어 옮겼는데, 이 필사본이 바로 '조보(朝報)'다. "조보는 예로부터 있는 것'이라는 <중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조보는 조선 시대 이전부터 있어온 것으로 본다. (187쪽)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조선 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언론이 있었고, 오늘날과 같은 언론 탄압 또한 있었음에도 진실 보도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옳지 못한 세상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진실을 드러내고자 노력한 결을 동해 청소년 시기는 단순히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라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청소년 문학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안오일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조보, 백성을 깨우다

안오일 (지은이), 다른(2022)


태그:#조보, #조선시대 세계 최초의 활자신문, #기별 서리 , #청소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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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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