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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차 공판이 열린 서울 서부지방법원 현관
 17차 공판이 열린 서울 서부지방법원 현관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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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중증치매환자로 인지·의사결정 능력이 없다는 검찰의 주장과 배치되는 증언이 나왔다. 검찰은 윤미향 무소속 국회의원이 치매를 앓고 있는 길 할머니를 속여 단체에 기부를 유도했다고 주장해왔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문병찬)는 2일 윤 의원 등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 유용사건 17차 공판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신경과 전문의인 A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1998년 이후 신경과를 전담해온 A씨는 일주일에 200~250명의 치매 환자를 만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길 할머니가 레비소체 치매라는 주치의의 진단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길 할머니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뒤 레비소체 치매 여부를 진단받기 위해서는 1년의 경과를 지켜봐야 했지만, 주치의는 그런 과정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레비소체 치매 환자는 '오각형겹쳐그리기'를 수행할 수 없는데, 이날 제출된 증거에서 길원옥 할머니는 오각형겹쳐그리기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그는 "('오각형겹쳐그리기'는) 시공간 능력을 알 수 있는 척도다. 치매 환자들이 시각적 자극에 대해서 인식을 잘 못 한다. 그런데 길 할머니는 그걸 정확하게 끝까지 했다"며 "보통 치매 초기에서는 이 능력부터 망가진다. 레비소체 치매에서도 저걸 못하는 것으로 논문에 중요하게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길 할머니를 진료한 주치의의 진단을 존중한다면서도, 레비소체 치매 상태라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레비소체 치매 상태에서 인지기복이 있어 조금 좋아 보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검찰의 질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조리 있게 말하다가도 확 나빠지는 것이 레비소체 치매이다. 정상은 지극히 정상이다. 저도 그런 환자를 봤다"며 "약을 쓰면 레비소체 치매는 정상처럼 지낼 수 있다"고 반박했다.

A씨는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경우에도 자살하기 전까지 정상적으로 영화를 찍고 성우 녹음도 했었는데, 사후 부검 결과 레비소체 치매였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검찰 측 전문의가 혈관성 치매라고 내린 의견에 대해서는 "절대 아니다. 혈관성은 운동기능과 연관된다. 대표적인 것이 뇌경색이 여러 번 와서 회로 연결이 안 돼 생기는 것이다. 아니면 기억력과 판단력을 담당하는 해마 등에 정통으로 치매가 오면 치매가 된다. 하지만 둘 다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는 길 할머니가 지은 자작시와 직접 만든 압화 작품 등이 증거로 제출됐다. 이를 본 A씨는 "창작이 쉽지도 않은데, 감정도 들어가고 생각도 조리 있게 말씀하신 것 같다. 상당한 능력이 있던 것으로 생각된다. 중증은 대화가 안 돼서 당연히 글쓰기가 안 된다"며 길 할머니의 인지능력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길 할머니가 치매 상태에서 유언장을 작성한 행위가 준사기 혐의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A씨는 치매 환자도 유언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준용하고 있는 영국 알츠하이머 소사이어티가 ▲유언장의 작성 의미 및 유언의 효력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 ▲향후 채권 또는 채무를 가지는 것을 포함해 본인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자산이 변동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본인의 유언장에 누구를 지명하고 싶은지, 그리고 왜 본인이 지명된 사람에게 상속하거나 상속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등을 이해할 경우 치매 환자의 유언능력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병인 "길 할머니 건강한 편이었다"

이날 공판에는 2013년부터 2020년 초까지 정의연이 운영하는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간병인으로 일한 B씨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길 할머니가 스스로 화장실을 이용할 정도로 건강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치매였던 친정어머니를 10개월 동안 돌봤는데, 어머니와 비교해서 길 할머니의 치매는 10점 만점에 1점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실수한 적은 있지만, 화장실을 99% 혼자서 처리했다"며 "할머니가 씻을 때 저희가 샴푸를 드리면 혼자서 하셨고 샤워기 드리면 혼자서 다 하셨다. 갑자기 혼자서 씻으셨던 적이 한두 번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들 생일, 며느리 생일이 언제다 말해서 대단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환청, 환시 이상행동 거의 없었다", "2018년까지 인슐린 주사를 직접 배에 놓으셨다"는 등 길 할머니가 정상생활을 했다고 증언했다.

오는 18차 공판은 9월 23일 열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닷컴에도 실립니다.


태그:#윤미향, #길원옥, #정의연, #서부지원, #17차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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