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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깨끗한 걸 좋아하기는 했지만, 코로나19 이후 광기에 가까운 결벽증이 때때로 나타나곤 했다. 회사에서도 수술을 앞둔 의사의 심정으로 손을 닦아댔으며, 손 씻으러 가는 게 귀찮을 때는 손소독제를 책상에 비치해두고 수시로 손을 닦았다. 외출 후 집에 도착하면 일단 손이 닿는 곳은 소독 티슈로 한 번씩 닦아줘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이런 유별난 노력에도 코로나에 확진되었지만. 나 홀로 방역 생활이 코로나를 차단하는데 진정 도움이 되는 건지 회의가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결벽증에 대한 철저함은 다소 느슨해졌다. 그래도 2년이 넘게 배어버린 습관은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초창기만 해도 식당에 가는 것도 꺼려졌지만 마냥 피하고 살 수만은 없었다. 혼자 살며 요리도 하지 않는지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얼마전 소중한 점심시간, 매일 가던 구내식당이 질릴 때면 가끔씩 회사 사람들과 외식을 하곤 한다. 맛집이 즐비하다는 핫플에 직장이 자리 잡고 있지만, 매번 가는 곳만 뺑뺑이 돌 듯 다니는 우리는 평소 눈여겨둔 새로운 식당으로 향했다. 쌀국수를 파는 작고 아담한 식당이었는데, 사람들로 이미 꽤 붐비고 있었다. 
 
식당직원의 손가락이 육수에 닿아있었지만, 위생장갑을 끼고있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식당직원의 손가락이 육수에 닿아있었지만, 위생장갑을 끼고있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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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수를 주문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쌀국수가 우리 테이블에 도착했다. 방금 익혀낸 쌀국수에 육수를 가득 담아 찰랑거리는 모습은 더욱 나의 입맛을 돋우었다. 그런데, 육수로 가득 찬 그릇을 옮기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는지 직원의 손가락이 쌀국수 육수에 살짝 담가 있는 것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다행이라면, 직원은 위생장갑을 끼고 있었고, 나는 별 생각 없이 음식을 받고 먹기에 열중했다. 주린 배를 채우는 직장인이 그러하듯, 온 정신을 집중하여 쌀국수를 먹고 나니 그때서야 제정신이 돌아오는 것만 같다. 배가 고플 땐 쌀국수만 보였는데 배가 차니 식당도, 식당 안의 사람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또 보고야 말았다. 우리 자리에 음식을 서빙해주었던 그 직원이, 내 쌀국수 국물에 잠시 담갔던 위생장갑을 그대로 낀 채 카드로 계산을 하고, 현금을 받아 돈도 거슬러주고, 식당으로 걸려오는 전화도 받고, 다시 음식을 나르고 있다는 것을. 

'응? 뭐지? 저 위생장갑은 본인의 손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건가?'

자고로 위생장갑이라 함은, 요리할 때 내 손에 묻는 오만가지 더러운 것으로부터 음식을 지키기 위해 착용하는 것 아니었던가? 위생장갑을 끼고 저렇게 오만가지 행동을 할 거면 도대체 왜 위생장갑을 끼고 있는 거지?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하자 나의 쌀국수를 스쳐지나간 그녀의 손가락이, 정확히는 그 위생장갑이 몹시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육수가 뜨거웠으니까 소독은 됐겠지? 정신 승리의 자세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찝찝함은 떨치지 못한 채 식당을 나섰다.

바쁘게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위생장갑이었던 것인가?'라는 의문은, 그 후로 '재방문 의사 없음'을 확고히 한 연유로 지금껏 풀지 못하고 있다.

기본을 지키는 크레페 할아버지

머리가 복잡할 때 가끔 보는 영상이 하나 있는데, 푸드트럭에서 크레페를 파는 할아버지 영상이다. 특별한 멘트도 배경음악도 없이 노년의 사장님이 크레페를 만들어 파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영상임에도 보고 있으면 꽤나 힐링이 된다. 특별히 내가 그 영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할아버지만의 장사 철학 때문이다.

푸드트럭이라면 청결함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접고 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할아버지의 청결함과 위생관념은 결벽증이 '만렙'을 찍던 때의 나를 데려와도 무사통과 수준이다.

광이 반질반질 나는 철판에, 크레페 반죽을 떠서 철판에 올릴 때도 국자 밑으로 반죽이 떨어지지 않게 접시를 받쳐 옮기고, 재료들이 요리 중 튈 만한 곳에는 비닐로 덮어둔다. 더욱이 목장갑 위에 덧대어 낀 위생장갑을 수시로 새 것으로 바꿔 끼워가며 크레페를 만드신다.

그중에 백미는 푸드트럭 특성상 계산은 현금으로 이뤄지는데, 현금을 받으실 때마다 음식을 만들 때 끼고 계셨던 목장갑을 벗고 현금을 받고, 거스름돈을 돌려주고 다시 목장갑을 끼고 음식을 만드신다는 거였다.

하루에도 몇 백 번에 달하는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계산을 하실 때마다 목장갑을 벗고 끼고를 반복하셨다. 처음 그 영상을 봤을 때는 카메라 앞이라 저러시는 건가 싶었지만, 할아버지의 청결함을 인증해주는 수천 개의 댓글은 할아버지의 본래 모습을 짐작케 했다.

'그래, 요리할 때 위생장갑은 저렇게 사용하는 거지!'

기본을 지키지 않는 세상에서, 기본을 지키며 장사를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는 '크레페의 장인'이셨다. 장갑을 벗고 돈을 받는 푸드트럭 사장님이라니, 나도 백 번 뛰어가 사먹고 싶다. 당신의 편의보다는 깨끗한 푸드트럭에서 청결한 음식을 팔겠다는 사장님의 굳건한 소신이 크레페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저런 사장님도 계시는구나. 하는 일이 무엇이든, 나이가 어떠하든 본인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할아버지의 삶의 궤적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도 했다.

물론 지금 뛰어가도 난 크레페를 먹을 수 없다. 워낙 소문이 자자한 맛집인 데다, 깨끗한 걸로 이미 유명한 사장님이다 보니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뤄, 하루에 4시간만 장사를 하고 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으신단다. 장사 잘 되는 집엔 다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위생장갑의 쓸모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신 할아버지 사장님의 크레페를 언젠가는 꼭 먹어보고 싶다.

태그:#위생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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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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