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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당한 일본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앞 교차로 근처에 마련된 헌화대에서 10일 오후 시민들이 합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당한 일본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앞 교차로 근처에 마련된 헌화대에서 10일 오후 시민들이 합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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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로 예정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국장에 대한 일본인들의 거부감이 더 강해졌다. 피격 엿새 뒤인 7월 14일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국장 실시 방침을 발표했을 당시만 해도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었다.

<마이니치신문>이 '아베 신조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가 70%'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날이 7월 18일이다. 이때만 해도 국장을 반대하는 국민들이 다수가 아니었다.

7월 19일자 <도쿄신문>에 실린 '아베 신조 전 수상의 국장, 예산 금지 가처분 신청(安倍晋三元首相の国葬 予算差し止めの仮処分を申し立てへ)'이라는 기사에 시민단체가 법원을 상대로 가처분신청을 낸 사실이 보도됐다.

그렇지만 이런 움직임이 주류가 되진 못했다. <산케이신문>과 후지뉴스네트워크(FNN)가 7월 25일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찬성과 반대가 각각 50.1% 및 46.9%였다. 이 시점에는 찬반 양론이 팽팽했다.

반대론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는 양상이 두드러진 것은 7월 말이다. 7월 31일자 <도쿄신문> 기사 '아베 전 수상 국장 반대 53%(安倍元首相国葬に反対53%)'는 반대 여론이 과반이라는 교도통신 조사 결과를 전하면서 찬성론은 45.1%라고 보도했다. 국내 언론에 보도된 <니혼게이자이신문>과 텔레비전도쿄의 7월 31일자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반대 47%, 찬성 43%로 나타났다. 백중세를 지나 반대론이 다소 우세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8월 초순에서 중순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반대론이 확실히 많아진 모양새다. 보수 성향 월간지인 <분게이슌주(文藝春秋)>가 발행하는 <분슌 온라인> 8월 13일자 기사 '아베 전 수상 국장, 앙케이트 결과 발표(安倍元首相の国葬アンケート結果発表)'는 응답자 2981명 중에 79.7%가 반대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80% 가까이 국장을 반대했던 것이다.

8월 21일 보도된 <마이니치신문> '아베씨 국장에 찬성 30%, 반대 53%(安倍氏国葬に賛成30%、反対53%)' 기사를 보면 반대 입장이 찬성 입장의 2배에 가깝다. 여론의 추이는 반대론의 우위라고 할 수 있다. 

야후재팬 뉴스에 실린 <FLASH> 8월 22일자 기사는 위 조사 결과를 소개하면서 '아베 전 수상 국장,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압도적(安倍元首相の国葬、世論調査で反対が圧倒的)'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출판사인 고분사(光文社)가 운영하는 이 사이트는 '처음엔 찬성했지만 지금은 반대한다', '그만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등의 국민 의견도 함께 소개했다.

국장을 반대하는 일본인들은 '법적 근거가 없다', '국비 투입은 부당하다. 예산 낭비다', '아베의 부패 의혹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아베에 대한 평가가 갈리고 있다', '통일교 유착 의혹이 남아 있다' 등의 사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아베에 대한 호불호 감정도 이런 여론지형에 영향을 끼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겉으로 표시하지는 않았아도 아베를 부정적으로 봤던 사람들이 국장을 반대할 명분을 스스로 찾아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죽은 자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우호적이 될 수도 있지만 객관적이 되기도 쉽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베 국장 반대론 속에는 평소의 '불호' 감정도 어느 정도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극우정치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반감 
 
아베 국장과 관련한 여론조사 소식을 전하는 일본 언론 보도.
 아베 국장과 관련한 여론조사 소식을 전하는 일본 언론 보도.
ⓒ 야후 재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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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국장에 대한 찬반 양론이 '백중세'에서 '반대론 우세'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 나타났다. 국장 반대론 혹은 아베 신조 반대론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구호들이 아베 신조는 물론이고 자민당과 극우세력의 존립 기반과 관련 도 돼 있다는 점이다. '법적 근거가 없다' 등의 사유 외에, 일본 정치의 향후 구도에 영향을 미칠 만한 구호들이 지금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도쿄변호사회(www.toben.or.jp)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8월 2일자 회장 성명에 따르면, 도쿄 변호사들이 국장을 반대하는 1차적 사유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 전 내각총리대신의 국장을 반대하며 철회를 요구하는 회장 성명(安倍晋三元内閣総理大臣の国葬に反対し、撤回を求める会長声明)'이라는 제목이 달린 이 문건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또 국민의 사상·신조(信條)의 자유라는 관점에서도 중대한 우려가 있기에 이것(국장)에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지난 8일자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아베 장례식 때 초·중·고교들이 조기를 게양하게 한 지방 교육위원회 조치에 대해서도 일본 사회의 저항이 있었다. 이때 나타난 저항의 사유는 양심의 자유 침해, 평등권 위반 등이다. '조기에 대한 묵념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 '아베 신조만 특별대우하는 것은 평등권 위배' 등의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주의나 사상·신념의 자유, 양심의 자유, 평등 같은 이념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아베 신조 국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현저히 높아졌다. 이번 국장 논쟁을 계기로 이런 이념들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베 신조가 추구했던 극우정치는 민주주의나 사상·신념·양심의 자유 등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겉으로는 이런 것들을 옹호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억눌러왔다. 민주주의, 사상의 자유 등의 중요성이 확산하면서 국장 반대론이 주류를 이뤘다는 점은 자민당의 극우 정치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반감이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코로나 팬데믹과 인플레이션 위기로 세계 대중의 권리 의식이 더 첨예해지고 있다. 민중의 관점에 입각한 시위가 세계 각지에서 빈발하고 이로 인해 정권 교체나 정권 몰락까지 일어나고 있다.

쿠바나 이란처럼 민중시위가 드물던 곳에서도 반미시위가 아닌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민중의 동향을 우려하는 것은 북한 정권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기층 당원들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나, 코로나 방역 위반을 이유로 이웃을 신고하도록 하는 군중신고법을 제정해 대중 상호간 감시체계를 만든 것에도 그런 우려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이를 억누르기 위한 정치활동도 함께 활성화되기 쉽지만, 지금 일본에서 아베 국장을 계기로 사상·양심의 자유나 평등을 강조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이런 흐름이 자민당과 일본회의 등이 이끄는 극우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을 갖게 된다.

일본의 진보세력, 결집할 수 있을까 

1990년대 탈냉전 시기에 일본에서는 진보세력이 오히려 약해졌다. 미국의 세계 패권이 곳곳에서 약화되는 속에서도 서태평양 북부에 대해서는 미국의 에너지가 더 많이 집중됐다. 이런 가운데 냉전구도의 연장판인 제1차 북핵 위기가 일어났다. 그러면서 한국은 남북화해의 기회를 잡지 못했고 일본은 새로운 시대로 나갈 기회를 놓쳤다.

그 와중에 진보세력인 일본사회당도 1996년에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사회당 역사의 막을 사실상 내렸다. 그 뒤 지금까지 일본 진보세력은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올바른 사회적 역량을 조직화해낼 진보세력의 처지가 이와 같기 때문에, 아베 국장을 계기로 확산되는 진보적 흐름을 당장에 정치적으로 조직할 세력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본 국민 상당수가 아베식의 극우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은 어느 정도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 국민들이 아베 국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꽤 신선하다고 할 수 있다. 한일관계뿐 아니라 일본 사회까지도 긍정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이런 흐름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태그:#아베 신조 국장, #아베 신조 피격, #일본 정치, #일본 극우세력, #일본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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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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