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4 11:10최종 업데이트 22.08.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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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지구영상제' 개막식. 진재운 영화집행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이렇게 전했다. "사람들은 지금이 괜찮으면 다 괜찮을 것이라고 안도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이런 낙관이 틀렸다는 것에서 '제1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는 출발합니다." (행사 안내자료 참고) ⓒ 자연의권리찾기

 
"세상일이 그래요. 물웅덩이가 있으면 누구는 물에 비친 하늘을 보고, 누구는 자신을 보고, 누구는 아무것도 못 봐요." 
- '제1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 상영작 <체르노빌의 할머니들> 중
 
지난 8월 8일 서울과 수도권 지역 폭우로 5천 명이 넘는 이재민과 일시대피자가 발생했다. 일일 강수량은 2020년 기록적인 폭우 때(361mm)을 넘어선 380mm에 달했다. "극단적 이상기후는 이제 '뉴노멀'이 됐다"는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의 말이 피부로 와 닿는다.

그러나 여전히 기후재난 소식은 일회적 사례처럼 소비되는 면이 있다. 우리는 각 상황이 얼마나 놀라운지에 집중하는 만큼, 원인과 해결책에도 충분한 관심을 쏟고 행동으로 이어가고 있을까.


이 시점에 지역 언론인들이 제대로 알리고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상제,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다룬 세계 최초의 영화제가 부산에서 열렸다. '다시 지구, Our Only Home'이라는 표어를 걸고 이달 11일부터 15일까지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개최된 '제1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다.

언론인이 만든 알림과 실천의 장
     
<초록빛으로 숨죽인 강>, <물은 생명입니다> 등 환경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뉴스멘터리(Newsmentary)의 영역을 개척해 온 진재운 KNN 대기자는 사람들의 인식이 현실의 심각성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영상제를 구상했다.

"사람들은 지금이 괜찮으면 다 괜찮을 것이라고 안도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이런 낙관이 틀렸다는 것에서 '제1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는 출발합니다." - 영상제 개회사

국제신문, 부산일보, MBC, CBS, KNN 기자가 홍보위원회를 구성해 행사를 알렸다. 20개국에서 출품한 환경영화와 방송 다큐멘터리 40여 편을 상영했고, 크리에이터 영상 토크쇼, 지구환경 포스터 공모전,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약자. 기업의 재무적 성과를 제외한 친환경, 사회적 기여, 투명한 지배구조 등의 기업성과지표) 국제컨퍼런스, 전시‧체험 행사를 함께 열었다. 5일간 1만4700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했다.

특히 관람객들이 바로 친환경적 생활 방식을 시도할 수 있도록 쇼핑·체험을 연계한 구성이 눈에 띈다. 영화집행위원장을 맡은 진재운 기자가 개막식에서 힘주어 말한 것처럼, 보고, 느끼고, 실천해 주기를 바라는 취지가 드러난다.
 

영화의전당 야외광장 시민들이 제1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의 전시, 관람, 체험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 김나라

 

다회용컵 체험 무료 증정되는 음료를 마실 때 텀블러가 없는 경우 보증금을 내고 다회용컵을 대여하도록 기획했다. ⓒ 김나라

 

체험 행사 국립공원공단에서 진행한 탄소흡수식물 심기 체험에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 김나라


'지구사랑 실천 운동'으로 텀블러, 장바구니, 손수건을 지참한 관람객은 무료로 영상을 관람할 수 있었다. 주죄 측에선 야외광장에 음료 부스와 다회용컵 부스를 설치하고 개막식 참여를 신청한 사람들에게 음료 교환권을 나눠줬다. 텀블러가 없는 경우 보증금을 내고 다회용컵을 빌리도록 했다.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컵보증금제를 거부감 없이 경험하게 한 것이다.

아이와 함께 온 관람객들은 자전거 발전기 체험, 재활용품 장난감 공모전, 국립공원 탐방 체험, 물놀이 등을 즐겼다. 화분에 바위솔을 심는 '탄소흡수식물 심기 체험'에는 아이들이 줄을 서 기다리기도 했다. 2017년부터 매년 야외광장에서 열어온 '그린라이프 쇼'(친환경 브랜드 박람회)를 함께 열었다. 70개사 100여 개 부스가 참여해 친환경 패션, 생필품, 새활용 제품, 유기농산물, 천연 간식 등을 판매했다.

탄소중립적 행사의 본보기가 되도록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영상제에서는 <우리의 식생활, 멸종을 부르다>, <육식의 반란-마블링의 음모> 등 공장식 사육과 무분별한 육식 문화를 지적하는 영화가 6편 상영됐다. 그런데 푸드트럭 5대 모두 육류 위주의 음식을 팔았다. 비건(완전채식) 메뉴를 따로 갖추고 있지 않았다. 행사 취지와 이어지지 않다 보니 위화감이 들었다.

내년 행사에서 한두 곳이라도 비건 도넛, 비건 팟타이 등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비건식을 판매한다면 어떨까. 영상을 보며 육식의 문제점을 느낀 참여자들이 한 끼라도 채식을 시도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밖에 그린라이프 쇼에 참가한 브랜드 중 제로웨이스트 상점 외에는 비닐 포장이 된 제품을 담아주기 위해 또 한 번 비닐봉투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포장재는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의 절반 가량(46.5%)을 차지한다. 구매자가 장바구니나 보자기를 준비해 가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런 습관이 없는 관람객들에게는 행사 취지를 알리는 수단의 하나로서 대안을 마련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예를 들어 안 쓰는 종이봉투나 에코백 등을 미리 기증받아 가게별로 배분해 둘 수 있고, 재사용 가능한 종이봉투를 유상 판매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 문화를 만들기 위한 행사인 만큼 엄격한 기준을 보여줘도 좋지 않을까.
     
첫 회부터 좋은 기획으로 많은 시민의 참여를 끌어냈지만 오히려 환경오염을 촉진하는 소비성 행사가 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개선의 노력을 더한다면 큰 행사도 탄소중립에 가깝게 치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로 자리잡을 것이다. 

지역마다 환경 정보를 '문화'로 이어주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각 개인으로부터 더 많은 실천이 퍼져 나가야 할, 그리고 어떤 주제의 행사이든 되도록 환경에 무해한 방식을 찾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할 때다.

영상제가 던진 질문
 

하나뿐인 지구 영상제 공식 포스터 ⓒ BPFF


상영작 중 <플라스틱 대한민국-불타는 쓰레기산>의 GV에서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강신호 소장은 말했다.

"결코 이 문제는 기술로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거부하거나 지금과 같은 생산과 소비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생산자는 계속 팔리니 계속 만들 거고 소비자는 계속 쓸 것이다."

'지금 당장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번 영상제가 던진 질문이다. 개인적 차원의 실천뿐 아니라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확대, 재활용률을 높이는 '플라스틱 재질 단일화', 폐기물 관리 인프라 개선 등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체재가 적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플라스틱 이용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언론이 적극적으로 알리고, 시민들이 꾸준히 제안하며 지켜본다면 제도의 변화를 보다 빨리 이끌어낼 수 있다.

최근 수도권 등의 물난리 사태를 보며 영상제가 열린 곳이자 부산의 상징인 영화의전당이 침수되는 것도 더이상 SF적 상상만은 아니라는 스산함을 느꼈다. 영화의전당은 범람이 잦고 바다와 바로 닿은 수영강변 근처에 있다. 지구는 어느 때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사람이 할 일은 그 목소리에 충실히 '반응'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물웅덩이'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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