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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아이를 가평에 데려다줄 일이 있어 주말에 집을 나섰다. 토요일이라 분명히 차가 막힐 텐데 아이만 데려다주고 왔다 갔다 하면 족히 4시간은 걸릴 것이다. 시간을 길에다 버리긴 싫어 고민하던 찰나,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가평 빠지에 가는 거야!' (빠지: 스상스키, 바나나 보트 등 수상레저를 하는 장소. 바지선-화물을 운반하기 위한 평평한 배-과 비슷해 '바지'라고 하다 좀 더 강한 발음인 '빠지'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남편에게 말하자 어떻게 그런 좋은 생각을 했냐는 표정이다. 가는 목적이 바뀌니 급설레기 시작했다. 빠지는 만삭 때 남편과 가본 이후 처음이다. 그때 난 수상스키 타는 남편을 구경만 했다.

20대들이 이렇게나 많아? 
 
20대 청년들과 함께 호기롭게 놀이기구에 오른 남편(너덜너덜해져서 돌아옴).
▲ 빠지의 놀이기구(헥사곤) 20대 청년들과 함께 호기롭게 놀이기구에 오른 남편(너덜너덜해져서 돌아옴).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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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지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2시다. 블로그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아침 일찍 간 사람들은 이때쯤 나온다고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주차할 곳을 찾을 수가 없다. 네 번째 간 빠지에 겨우 주차를 하고 들어갔다.

젊은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모두 여기에 온 것인가. 20, 30대 청년들이 바글바글하다. 40대인 우리 부부는 조금 움츠러들었으나 전혀 티 내지 않고 테이블에 짐을 놓고 자리를 잡았다. 여러 패키지가 있었는데, 우린 놀이기구 3개에 제트보트를 타는 패키지를 구매했다.

옷을 갈아입고 구명조끼를 입은 후 에어 미끄럼틀과 징검다리, 트렘펄린 등이 있는 곳으로 갔다. 물이 차가울 것 같아 준비운동을 하고 몸 곳곳에 물도 묻혔다. 출발드림팀에서 본 것 같은 징검다리를 후다닥 뛰어 건너려 했으나 역시나 물에 빠졌다. 예상보다 물이 더 차다.

호흡을 깊게 몇 번 한 후, 이번엔 엉금엉금 경사가 진 언덕을 올라 미끄럼틀을 탔다. 남편과 서로 먼저 내려가라고 밀었는데 별 이변 없이 내가 먼저 아래로 떨어졌다. 쉭, 풍덩! 콧속으로 강물이 쑥 들어오니 정신이 없다. 어푸어푸. 아, 늙은 건가. 나도 모르게 나이를 탓한다.

"이젠 놀이기구를 타자." 안내데스크에 메뉴판처럼 놀이기구의 사진이 쭉 붙어있다. 직원분께 처음에 타기 무난한 걸로 추천해 달라고 하니 '물썰매'란 이름의 기구를 추천해 주셨다. 앞에 3명은 앉아서, 뒤의 3명은 서서 타는 놀이기구다. 남편은 시시할 것 같은지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다. 다음번엔 남편이 원하는 기구를 타기로 했다(빠지마다 같은 놀이기구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20대로 추청되는 여자 둘, 남자 한 명과 함께 탔다. 막상 타려니 조금 무섭다. 내 옆에 탄 여자분이 자신도 겁이 많다고 말해 조금 안심이 됐다. 여자 세 명이 앉고 뒤에 남자 두 명이 서서 탔다. 부웅~ 소리와 함께 보트가 출발했다. 으으아악! 에잇! 엉덩이가 하늘로 튀고 몸이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린다. 내가 믿을 건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내 팔과 손아귀의 힘뿐이다. 내 힘을 믿어야하다니 최악이다. 다행히 강 한가운데에서 보트가 멈췄다.

"살려주세요! 죽을 거 같아요!", "천천히 가주세요!", "진짜 빠질 것 같아요."

여자 3명이 소리쳤다. 운전해 주시는 분께서는 지금 조류가 세서 천천히 가면 기구가 더 튈 수도 있다며 정 무서우면 보트를 타라고 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 분은 냉큼 보트로 올라탔다. 무섭기는 했지만 포기하기는 싫어 난 아무 말 없이 손잡이를 더 꽉 잡았다. 다시 출발. 으으아아아악! 도착하니 목이 쉰 것 같다. 같이 탄 여자분과 서로 수고했다며 인사를 했다.

"이게 쉬운 거라고? 이게? 내가 겁이 많아 무서운 건가?"

남편도 별 이견 없이 이번엔 더 쉬운 걸 타자고 했다. 이번에 탈 기구 이름은 '와플'. 앉는 자리가 안으로 쏙 들어가 있어서 조금 더 안정감이 있을 것 같다. 공교롭게도 아까 같이 탔던 청년들과 또 함께 타게 됐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같이 탄 남자분이 "무섭게 해주세요!"라고 소리친다. 내가 "으악, 그러지 마세요!"라고 해도 소용없다. 나와 남편은 뒤에, 청년 둘은 앞에 탔는데 처음부터 내 엉덩이는 공중으로 마구 튀었다. 앞의 둘은 내 상황도 모르고 "더 세게!"를 외친다. 결국 내 몸은 허공으로 떠올랐고 양손은 손잡이를 잡고 있으나 발은 강물에 빠진 이상한 포즈가 됐다.

보트가 멈췄다. 보트를 운전하시던 분은 나에게 앞의 남자와 자리를 바꾸라고 했다. 그러고 나니 아까보단 괜찮다. 그래도 엉덩이는 계속 통통통. "더 빨리요! 안 무서워요!"라고 소리를 지르는 청년들을 저지할 수 없다. 젊음이 좋구나. 그나저나 아까 같이 탔던 여자분은 단 몇 분만에 강철 심장으로 바뀐 건가.

빠지로 돌아오니 팔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아직 놀이기구 한 번과 제트보트가 남았다. 제트보트는 12명이 함께 타고 의자도 있어 안정감이 있을 것 같다. 그래, 제트보트를 타자. 잠수도 하고 360도 회전도 한다는 제트보트. 괜찮아, 난 이미 단련됐어.

남편과 함께 맨 앞줄에 탔다. 경험상 바깥 부분이 회전할 때 더 많이 돌아 무서우니 가운데에 앉는다. 출발 전, 왠지 싸한 느낌이 들어 뒤를 봤다. 이런. 나만 빼고 모두 남자다. 그것도 혈기왕성한 20대!

"무섭게 해주세요!" "엄청 빨리 가주세요!"

난 고개를 숙이고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망했다, 망했어." 간단한 규칙과 신호를 배운 후, 제트보트가 출발했다. 휘잉이이잉.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저절로 비명이 나오는데 뒤에 앉은 청년들은 "아, 이게 뭐냐! 유람선이냐!" "저 옆집 보트가 훨씬 재밌겠다, 시시하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보트가 회전할 때마다 날아가는 내 몸뚱아리, 보트가 잠수할 때마다 덮쳐오는 엄청난 물보라. 어푸어푸 세수를 하고 다시 손잡이를 꽉 잡고 다리에도 발에도 힘을 준다. 난 나만의 전략을 편다. 운전하시는 분 바로 뒤에 내가 앉았으니 내 비명이 누구보다 잘 들릴 터. 그분 귀에 내 비명을 꽂는다. 꺄악, 꺄악, 꺄아아아아악! '청년들의 말만 듣지 말고 제 비명도 들어주세요. 까아아악!'

보트를 운전하셨던 분은 내 비명을 듣고 더 무섭게 할 수 있는걸 조금은 자제해 주신 것 같다. 운전이 끝나자마자 뒤를 돌아 나에게 "괜찮아요?"라고 물어봐 주셨으니. 제트보트에서 내린 나는 더이상 아쉬울 것이 없다. 놀이기구 한 번이 남았지만 이미 충분하다. 다 불살랐다.

지금이 우리 인생의 가장 젊은 날! 

남편은 남는 건 힘뿐인 20대 청년들과 함께 이름도 무시무시한 '헥사곤'이라는 놀이기구를 한 번 더 탔다. 놀이기구에서 내리는 남편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우리 부부는 씻고 짐을 챙겨 차에 탔다. 오는 길에 계속 삐걱거리는 목을 돌리고 근육이 뭉친 팔을 주물렀다. 운전하던 남편이 말했다.

"역시 젊을 때 놀았어야 했어."

난 볼멘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젊을 땐 빠지가 많이 없었잖아. 남은 인생 중에 오늘이 제일 젊을 때라고."

신기한 일이다. 분명히 무서운데 왜 재밌는 걸까. 남편은 여름 휴가로 다녀온 제주도보다 빠지에서의 3시간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빠지는 야생의 느낌이 강하다. 중년이라고 짜릿한 빠지의 놀이기구를 포기할 순 없다.

다행히 빠지의 놀이기구는 보트를 운전하시는 분이 타는 사람의 요청에 따라 난이도를 조정해 주신다. 혈기 왕성한 20대 청년들과 같이 타지만 않으면 문제없다. 이번에 놀이기구의 앞보다 뒤가 더 무섭고 안보다 바깥쪽이 더 무섭다는 걸 알았다.

다음 번엔 놀이기구를 타는 수준이 비슷한 다른 가족을 섭외해 같이 와야겠다. 그리고 냉큼 덜 무서운 위치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야지(내가 빠지에 다녀온 후, 가평에도 비가 많이 내렸는데 북한강변의 많은 빠지들이 괜찮은지 모르겠다. 몇 년간 코로나로 계속 어려웠을텐데 비 피해가 크지 않기를 많이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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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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