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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경찰 내 "특정그룹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15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 대책 회의에서 KBS와 MBC를 겨냥해 "민주노총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합리적 의심"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요즘 '합리적 의심'이라는 말이 자주 쓰입니다.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은 형사소송법에 나오는 말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2항은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합리적인 의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유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영어 doubt는 '~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할 때 쓰는 말입니다. 

한편 합리적 의혹(reasonable suspicion)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suspicion은 suspect의 명사형으로 '~이 ~일 것'이라 의심할 때 씁니다. I suspect that he is rich라면 '나는 그가 부자일 거라 생각한다(의심한다, 추정한다)'는 뜻이 됩니다. 만일 I doubt that he is rich라면 '나는 그가 부자가 아닐 거라 생각한다(의심한다, 추정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듯 요즘 여러 사람들이 쓰는 합리적 의심이라는 말은 법률용어인 원래의 말과는 다르게 쓰입니다. 주로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매우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때 '합리성'이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수식어를 앞세워 자기 의심을 정당화하는 말로 쓰입니다.

이왕 합리적 의심이란 말을 쓴다면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민 장관이나 권성동 원내대표의 발언에 나온 합리적 의심은 합리적 의혹이라고 해야 맞겠지요.   

김순호 케이스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행정안전부 경찰국에서 열리는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행정안전부 경찰국에서 열리는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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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출범한 경찰국 초대 국장에 김순호 치안감이 임명됐습니다. 김 국장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1989년에 자수한 뒤 경찰에 특별 채용됐는데 이 과정에서 함께 운동했던 동료들을 밀고한 대가로 특채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관련기사: '노동운동→잠적→대공특채'... 김순호 경찰국장 과거 논란 http://omn.kr/205oo).  

김 국장은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당시 시위에 참여했고 1983년 강제징집 대상자가 되어 군에 입대했습니다. 제대 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1989년 4월쯤 잠적했고 그해 8월 경장으로 경찰에 특채됐습니다.

인천 부평구갑의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일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1989년 1월부터 치안본부가 인노회를 이적단체로 지목하고 회원들을 연이어 불법연행했는데 이 무렵 김 국장이 돌연 잠적했고 그 후 회원 15명이 줄줄이 구속됐습니다.

성균관대 민주동문회나 옛 인노회 회원들은 김 국장의 잠적과 경찰 특채 과정에서 김 국장이 '밀정' 노릇을 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혹'(밀정일 것이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반면 김 국장은 '합리적 의심'(밀정이 아니다)으로 맞섰습니다. 그는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자신에 대한 의혹을 "소설 같은 말"이라고 부인하면서 인노회 회원들의 구속에 대해 "나는 관계없다. 왜 나와 연관시키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경찰에 자수하면서도 동료들의 구속에 영향을 끼칠 만한 진술은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성만의원실이 경찰청에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김 국장의 특채 사유는 경찰공무원임용령 제16조 제4항 제4호 '대공 공작 업무와 관련있는 자를 대공 공작 요원으로 근무하게 하기 위하여 경장 이하의 경찰공무원으로 임용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이런 사유로 경찰에 특채되었다는 것은 그런 활동(공작 업무)을 당시 치안본부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했고 현재 국가권력 특히 경찰에 의해 고문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재심을 돕고 있는 변상철 사단법인 평화박물관 사무국장은 "동료들의 구속에 영향을 끼칠 만한 진술은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게 가능한지 의문"이라면서 "조직 사건에서 경찰이 알고 싶은 것은 단 하나 조직원이 누구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변 사무국장은 "경찰 고문 사례를 보면 예외 없이 '아는 사람을 대라'라거나 '이 사람도 같이 활동했지'와 같이 사람을 엮으려고 고문을 했다"라면서 "자수했다고는 하나 당시 경찰이 알고 싶었던 것도 회원들이 누구이며 무슨 일을 했는지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

1. 세계일보, 운동권 학생→대공요원… 김순호 경찰국장 특채 의혹
2. 연합뉴스, 경찰국장 경찰특채 경위 논란…"의혹 밝혀야" vs "소설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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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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