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박지수

여자농구 박지수 ⓒ 연합뉴스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15세 때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이후 총 5차례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 2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등 통산 28개 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 수영의 역사를 바꾼 신화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올림픽 사상 개인 최다 메달 획득 기록을 세운 영웅임에도, 음주운전 혐의, 마리화나 흡연 등으로 많은 구설수에 시달렸고,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왔던 사실을 뒤늦게 고백하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펠프스는 2018년 미국에서 열린 한 정신건강의학 포럼에 연설자로 참석해 "선수 시절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때 우울증 때문에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하기도 했다. 펠프스는 "자신을 늘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높은 큰 기대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나 자신에게서 달아나 숨고 싶었다. 그래서 술과 마약에 의존하기도 했다"고 밝히며 "그래도 그때의 경험이 내 삶을 바꿨고 나를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주변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고 전한 바 있다.

'한국 여자농구의 기둥' 박지수(KB스타즈)가 최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여자 농구대표팀에서 하차한 것이 알려지며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대한민국 농구 협회는 1일 "박지수가 공황장애 초기 진단을 받아 2022년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 농구 월드컵을 대비해 소집되는 여자 농구대표팀 훈련 대상자에서 제외됐다"고 전했다. 협회에 따르면 박지수는 최근 과호흡 증세 발현으로 정밀 검사를 진행한 결과 공황장애 초기 진단을 받았고, 현재 모든 훈련을 중단하고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공황발작은 갑자기 이유 없이 극도로 불안해하며, 숨이 막히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고, 죽을 것만 같은 공포를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공황발작을 경험하고 난 후 만성적으로 발작에 대해서 두려움이 생기거나, 발작과 관련된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 바로 공황장애다. 최근 유명인들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공황장애를 겪었거나 치료중이라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통하여 이 질환의 무서움이 많이 알려지게 됐다.
 
최근에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2020년까지 공황장애로 병원을 방문한 환자가 69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박지수는 현재 한국 여자 농구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지난 시즌 KB스타즈의 통합 우승과 함께 평균 득점-리바운드 타이틀,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 MVP 등을 모두 휩쓸었다. 세계 최고의 무대인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도 세 시즌을 활약했고, 국가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에이스다. 이러한 박지수의 이탈은 여자 농구대표팀에게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박지수가 겪고 있는 공황장애 증상의 원인이 펠프스와 마찬가지로 '성적 압박'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지수는 어린 나이부터 소속팀과 대표팀의 주축이자 여자농구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면서 항상 성과를 보여줘야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박지수는 약관의 나이에 이미 한국 여자농구에서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이룬 상태다. 농구 팬들 사이에서는 벌써 박지수의 위상이 김연경(배구)이나 김연아(피겨스케이팅)처럼 자신의 종목에서 독보적인 '역대 최고 선수(GOAT, Greatest Of All Time)'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박지수가 이뤄낸 놀라운 업적에 비례하여 자연히 대중의 관심과 기대감도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꼭 박지수만이 아니라 모든 슈퍼스타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부분은, 프로 운동선수로서가 아닌 단지 한 인간으로서 놓고봤을 때 박지수는 아직 24세의 청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그 나이에는 아직 실수도 할 수도 있고 미숙한 부분도 있고, 사소한 일로 상처도 받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폐셔널'이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선수들에게 성적과 기량은 물론이고 완벽한 멘탈까지 높은 눈높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운동선수들이라면 마냥 성격이 강하고 대범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펠프스나 박지수의 사례에서 보듯이, 많은 선수들은 오히려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을 지닌 경우가 많다. 특히 일류 선수일수록 승부욕이 강하고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기질이 있다. 박지수 역시 어릴 때부터 지기싫어하는 성격으로 유명하고 상대의 집중 견제와 부상 속에서도 매 경기 투혼을 불사를 만큼 책임감이 강했다.
 
그리고 주목받는 유명 선수들에게 대중의 관심은 양날의 검과 같다. 박지수는 2020년 초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비방하는 이들 때문에 우울증 초기 증세를 겪었다고 고백한 일이 있었다. 박지수는 데뷔 초기부터 일부 누리꾼들로부터 악의적으로 반복된 악플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참다 폭발한 박지수는 "표정이 왜 저러냐, 무슨 일 있냐는 이야기는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건가. 전쟁에서 웃으면서 총 쏘는 사람이 있나"라고 항변하며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진짜 그만하고 싶다. 그냥 농구가 좋아서 하는 거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데 이제 그 이유마저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싶을 것 같아서"라고 무분별한 악플에 대한 정신적 고통을 호송했다. 많은 팬들은 박지수의 호소에 공감했으며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도 악플 문화 자체는 크게 바뀐 것이 없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미디어와 SNS가 대거 발달하면서 언론을 거치지 않아도 유명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쉽게 대중에게 노출된다. 대중의 반응도 유명인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최근의 악플러들은 일상화된 SNS를 이용하여 악플을 당사자에게 직접 전송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이런 관심과 비난과 선수라면 참고 견뎌야할 통과의례이거나, 그저 무시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추세다.
 
오늘날 스포츠에서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단순히 경기장에서 상대와의 경쟁을 넘어, 그 과정에서 나오는 다양한 '압박감'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달렸다. 여기에는 대중과 언론, 팬들의 반응, 선수 본인의 높은 목표의식과 그에 따라붙는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능력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때로 지나친 압박감은 선수 개인의 인내심과 프로의식만으로 감당하라고 요구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것이 현실이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오히려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우울증에 빠질 확률이 더 높다는 역설을 지적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진다.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때의 좌절감과 스트레스가 우울증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차라리 육체적인 부상은 치료 방법과 기간이라도 정해져있지만, '마음의 부상'이란 치료 방법을 찾기도 어렵고, 극복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는 누구도 알수 없다. 펠프스와 박지수만이 아니라 오늘날 많은 선수들이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화려한 성공으로 인하여 부와 명예를 가졌다고 해서 삶에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며, 불특정 다수에게 무분별한 비난까지 일방적으로 감수해야할 이유는 없다.

최근들어 스포츠 심리 상담을 통하여 선수들의 멘탈 관리의 중요성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데뷔 이래 끝없는 무한 경쟁속을 달려온 박지수에게는 잠시 재충전과 회복의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박지수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또한 당장의 성적보다도 선수보호를 선택한 대표팀의 결정은 옳았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팬들 역시도 박지수만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수많은 압박을 딛고 활약중인 모든 선수들이 '누군가에는 가장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라는 사실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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