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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원단
 원단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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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원단장에 가서 어느 것을 꺼내어 옷을 한 번 만들어볼까 하고 쓱 훑어볼 때가 있다. 마치 수조에서 횟감을 꺼내는 사장님처럼 매의 눈으로 내가 가진 원단들을 스캔한다.

과거의 내가 사 놓은 것 중에서 지금 내가 만들려는 것과 의외로 잘 어울리는 뭔가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럴 때면 '그래 원단산맥이 있으니 이런 우연한 만남으로 인한 시너지가 가능한 거잖아. 딱 만들 것만 사면 만들고 나서 남는 천을 활용할 수가 없어서 효율이 떨어진다니까?'라며 원단산맥의 존재의의를 정당화한다.

끼니 때가 오면 텃밭에서 바로바로 재료를 구해서 만들 수 있는 것과 뭐 하나 만들어 먹을 때마다 시장에 나가서 재료를 사와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쪽이 더 만들기 좋은 환경일지 생각해보면 답은 명확하다.

급속도로 늘어난 원단 처리법

주부가 되어 부엌살림을 꾸려온 과정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한 가구가 독립하면 처음엔 밥솥, 오븐, 믹서 같은 기계를 갖추고, 각종 냄비와 후라이팬, 그릇을 채운다. 그 후에는 주걱, 국자, 가위 같은 소도구들을 하나하나 구비할 것이고 어느 정도 하드웨어가 갖춰지면 쌀, 김치, 채소, 고기 같은 식재료를 채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재료라는 것이 딱 맞게 떨어지지 않는다.

어중간하게 남은 재료를 소진할 수 있는 레시피를 찾아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하면 다른 재료가 필요해진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나면 또 다시 남는 재료가 생기고 이 일이 무한 반복된다. 주방에 하드웨어를 갖춰가는 것은 바느질 장비를 구비하는 것과 비슷하고 옷을 만들어 입는 일은 냉장고 속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주방살림도 그렇고 바느질살림도 그렇고 기계장비에는 큰 욕심이 없는 편이다. 고장나지 않는 한 새 기계를 갈아치우지는 않기 때문에 하드웨어 장비는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번에 목돈이 들어가는 일이다보니 섣불리 기계를 사댈 수 없고 자리도 무한정 많이 차지하지도 않는다.
 
재봉틀
 재봉틀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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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싸다고 야금야금 사는 천들은 집에 들어오는 족족 쌓여서 급속도로 불어났다. 버티다 못해 처분하려고 해도 제값을 받기는커녕 돈으로 교환이 되지 않는다. 무료나눔이 아니면 거의 처분불가능하다. 나는 바느질이라는 취미생활을 하는 내내 옷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늘어나는 원단을 관리하는 문제로 고심하곤 했다. 그 끝에 깨달은 것을 공유해 본다.

냉장고에 음식이 하나도 없어서 매번 끼니 때마다 나가서 식재료를 사와야 한다면 식사 준비가 번거로워질 것이다. 냉장고가 5대 있어서 거기 든 것만 파먹어도 두 세 달은 버틸 수 있을 것처럼 식재료가 많으면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먹을 수 있는 끼니의 수와 양은 한정되어 있는데 식재료는 차례차례 상해 나간다. 방금 TV에서 본 쭈꾸미 요리를 먹고 싶지만 냉장고를 가득 채운 식재료 중에 쭈꾸미는 없다. 이처럼 꼭 내가 만들고 싶어진 트렌치코트를 만들 원단은 내 원단장에 없다.

식재료도 금방 먹어야 하는 신선재료와 오래 보관해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듯 천도 마찬가지다. 블랙 린넨, 화이트 고밀도 코튼 원단 같은 천은 유행을 타지 않고 두루두루 쓸 수 있어서 쟁여두면 쓰임새가 많다. 반면에 해지(샴브레이)나 청지 같은 원단은 쓰임새가 많아서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관리한다. 그렇지만 무작정 오래 보관할 수는 없는 달걀이나 두부 같아서 오래 묵혀두면 원단 장에 접어 넣었던 모양대로 바래져버린다. 상태가 좋을 때 얼른 옷으로 만들어서 옷장으로 보내야 한다.

옷을 만들어 입는 효과는 언제쯤 나타나나

쌓아놓은 원단산이 무너질 정도로 많았던 원단을 줄였다.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 끝에 이제 나는 원단장을 냉장고처럼 혹은 식재료 재고처럼 관리한다. 자꾸 린넨이나 코튼원단이 줄어들면 아쉽고 다시 채워넣고 싶었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집에 쌀이 떨어지면 불안하니까 떨어지기 전에 새로 주문을 해두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우리집 냉장고의 냉장실에는 2~3끼 정도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물론 비상상황이 일어나 냉장고를 파먹어야 한다면 그것보다 조금 더 버티겠지만.

처음 한동안은 만들어 먹거나 만들어 입기 위한 장비와 재료를 구비하는데 목돈이 들어간다. 이 단계에 올 때까지 돈을 투입하다 보면 이게 맞나 싶은 회의가 든다.

'아니, 만들어 입는 게 더 싸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지금 기계값만, 재료비만 얼마가 든 거야?' 많은 사람들이 이즈음에 이미 들어간 목돈 대비 만들어진 결과물의 비대칭을 보고 이건 아니다, 라며 손을 뗀다. 투자만 하고 양산이 되어 경제적 효과를 가져오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다.

이 시기를 지나 마침내 장비와 도구, 재료가 일정수준으로 갖춰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만들어 입는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먼저 들어온 것을 먼저 내보내는(쓰는) 선입선출의 원칙을 가진다. 냉장고에 언제나 2~3끼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원활하게 들고 난다. 이러한 순환이 이루어지면 만들어 먹는 편이 사먹는 것보다 경제적인 순간이 온다.

마찬가지로 이번 계절에 만들어야 할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원단이 두서너대여섯(범위 넓음 주의) 벌 분량 정도 갖춰진 원단장을 관리하면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유지한다. 그러면 다 만들지도 못할 원단을 집에 깔고 있지 않아도 그때그때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들 재료가 적당히 있는 최적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취미 부자를 위한 다섯 가지 팁

취미 부자들 중에 장비만 갖추고 최적의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손을 떼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나 남는 건 매몰비용이 되어버린 장비뿐, 산출을 얻지 못한 사람들. 그런 분들에게 드리는 팁이 있다. 

1. 처음부터 고가의 장비를 사지 않는다. 어떤 영역에나 장비빨의 영역이 있지만 좋은 장비는 비싸다. 처음에는 너무 싸지도 너무 비싸지도 않은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사는 편이 좋다. '이렇게 오래할 줄 알았으면 처음에 좀 더 좋은 거 살 걸'이라고 후회하는 편이 '오래하지도 않을 거 괜히 비싼 거 샀네' 보다 낫다. 장비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인 기계를 갖추고 취미 생활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가기 시작할 때 장비 교체를 위한 적금을 드는 것도 추천한다. 이렇게 말하는 본인은 14년 전에 시작할 때 산 재봉틀을 아직도 쓰고 있다.

2. '와~ 그 돈, 그 시간 들여서 고작 이거? 때려치울래!'라는 결론은 적어도 1년은 부지런히 만들어 본 후에 내린다. 만들어낸 물건의 완성도가 취미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올~ 괜찮은데?' 라는 느낌이 날 때까지 한동안은 앞뒤 재지 말고 많이 만들어 보아야 실력이 늘고 결과물의 수준이 올라간다.

3. 새로운 취미는 하나의 취미를 투입과 산출이 균형있게 이루어질 정도로 궤도에 올려놓은 후에 넘본다. 다시 말하면 바느질쪽 재료 관리가 숨쉬듯 원활하게 안 되는데 비누만들기를 새로 시작하지 않는다.

4. 장비나 재료를 살 때 내가 이 취미를 그만 두게 된다면?이라는 질문을 항상 가슴에 품는다.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이 있다고 다가 아니다. 그 물건이 내 집에 들어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차후에 팔거나 버리게 되는 과정을 사기 전에 시뮬레이션해 본다. 계획이 나오지 않으면 사는 걸 일단 멈춘다.

5. '이것도 같이 사볼까?' 싶을 때 '지금은 사지 말아보자'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작게는 마트에서 장볼 때 계획에 없었던 2+1 상품을 사지 않고 사려고 했던 재료만 사서 돌아오는 것부터 연습해 본다.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영역에서 고수로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현실에서도 어느 경지에 오르려고 갈고 닦는 분야가 하나씩은 있는 삶을 살아보면 세상이 참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 세상으로 각자가 한 발 나아가는데 이 소박한 팁들이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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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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