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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조용한 오후 거실에서 선풍기를 해체해 먼지를 닦고 있는데 욕실에서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수도꼭지가 덜 잠겼나 싶어 가보니 이게 웬일인가. 천장의 패널 틈새로 물방울이 줄지어 떨어지고 있었다. 혹시 어제 내린 큰비 때문인지, 아니면 윗집에서 물이 새는 건지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웠다. 부랴부랴 아파트 관리실에 연락을 했다. 
 
   욕실 천장에서 갑자기 물방울이 떨어졌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욕실 천장에서 갑자기 물방울이 떨어졌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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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지 20년이 넘은 아파트다 보니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보일러 고장이 벌써 두어 번이고, 방충망도 낡아 틈이 여러 곳 벌어졌다. 재작년 겨울에는 계속되는 영하 15도 기온에 주방과 욕실의 수도관이 얼어 온수가 안 나와 며칠 동안 애를 먹었다. 여름철에나 집수리 걱정 없이 한시름 놓고 사나 했는데, 욕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다니! 평안하던 일상이 또 갑작스러운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 심정이다.

이제는 감정싸움이 두렵다

아파트 전기기사님이 방문하셨지만, 나처럼 영문을 잘 모르셨다. 우리 윗집엔 사람이 살지 않는데 집주인 연락이 잘 안된다는 말씀만 누차 하시고 물 새는 천장의 사진을 찍고 가셨다.

그런데, 기사님의 말과 태도에서 누수의 원인과 책임 여부의 확인을 회피코자 하는 어떤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은근한 비협조적 태도에 심경이 복잡해지며 답답해진 나는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고 인터넷을 뒤져 누수전문 설비기사님을 직접 찾았다.

일단 전화상담을 먼저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윗집에 방수공사를 하고도 아랫집 누수가 안 잡혀 결국 아파트 측에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실제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집 고치려다 소송이 웬 말인가? 아파트 전기기사님의 미심쩍은 태도가 이런 연유 때문이었나 싶다. 혹여 윗집이나 관리실과 척지고 감정싸움에 빠지는 불쾌한 일로 번질까 봐 심란해졌다.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이웃과 접촉 사고가 났던 지인의 일도 퍼뜩 떠올랐다. 사고 낸 주민은 책임을 회피하고, CCTV 공개에 비협조적인 관리실 태도 때문에, 사고처리에 골머리를 앓다 결국 얼마 안 가 옆 단지 아파트로 이사해버렸다. 나도 천장누수를 고치더라도 당장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졌다. 시시비비를 가려내다 자칫 싸움으로 번져 기운 빼는 일을 전혀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듦의 과정

그런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귀가한 남편에게 대뜸 이사 가야겠다고 선언부터 하니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 왜 벌써 이사 갈 생각부터 하느냐, 필요하면 언성도 높이고 의욕적으로 덤벼들던 예전의 나답지 않다고 한다. 하긴,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정말 그랬다. 부녀회를 하고,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 일을 하며 갈등이 있어도 필요한 일이다 싶으면 물불 안 가리며 나섰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맞서는 일이 좀 버겁다. 어떤 문제에 부딪쳐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사뭇 번잡하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그 과정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기운이 달린다. 이해관계에 엮이지 않고 좀 조용히 묻혀 지내고픈 마음이 더 커졌달까? 왜 변했는지, 언제부터 소극적이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 전반적으로 몸의 열기가 식는 중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며 뜨겁던 피가 식고 있는 징후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에어컨도 아닌 선풍기 바람만 두어 시간 쏘여도 평생 시리지 않던 발끝이 시려 서둘러 덧신을 신는다든지, 어깨가 싸늘해져 카페라도 가면 생전 챙기지 않던 카디건을 입는 걸 봐도 그렇다. 해가 갈수록 여름의 더위는 점점 견딜 만해지는 데 비해 겨울의 추위에는 점점 민감해진 것도 사실이다. 

몸의 열기가 식으니 자연히 내면의 열의도 더불어 사그라드나 보다. 그래서 간만에 뭔가에 열의를 내려면, 식은 열기만큼 한참 더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니 그 과정이 버겁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며 여러 가지 신체 변화를 겪지만, 성품도 이리 바뀌는 때가 오는구나 싶어 신기하다. 

그렇다고 성품이 누구나 똑같이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고집이 세지고 화를 잘 내는 경우도 있고, 과격했던 젊은 시절보다 훨씬 유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마침 유시민 작가가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게 떠오른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덜 진보적 또는 더 보수적으로 변화하는데,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이 더 좋아지는 본인의 경험으로도 점점 보수 성향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유시민 작가처럼 젊어서 그토록 전투적으로 산 사람도 나이 들면서 보수적이 된다고 하니 놀라웠다. 책을 다시 꺼내 읽으며 성품 또는 성향의 변화 역시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나이듦의 과정으로 헤아려져 위로가 되었다.

삶의 2막은 조용히 살고 싶다

천만다행으로 욕실 천장의 누수는 조만간 잡힐 것 같다. 연락이 되어 뵙게 된 위층 주민께서 그간의 피해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도 해주시고, 조만간 업체를 알아봐 방수공사를 진행하겠다고 하신다. 윗집의 그런 열린 태도만으로도 노심초사하던 심정이 편안해지며 안도가 되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누구도 악의를 가지고 발생시킨 문제가 아니라 세월이 흘러 낡고 노후되어 저절로 생긴 일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당사자간에 서로 양해하고 예의 갖춘 태도로 협의한다면, 공연한 데 힘 빼지 않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혹시 나도 아랫집에 피해줄 일이 일어난다면 친절한 위층 분들처럼 열린 마음으로 처신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보수공사 중인 욕실
 보수공사 중인 욕실
ⓒ 이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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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우리 집 욕실도 보수공사를 했다. 벽면 타일 사이의 빠진 틈새가 언제적부터 눈에 거슬렸고, 욕조 가장자리의 들뜬 실리콘 사이로 물이 들어가는 것 같아서 찜찜하던 차였다. 보수를 하고 나서 한결 깔끔해진 욕실을 보니, 당장 이사 가고 싶던 마음이 또 사르르 가라앉는다.

집이나 사람 몸이나 오래되면 여기저기 고장 나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고쳐 가며 산다는 게 참 똑같다. 더불어, 나이 들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성품도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나임을 받아들이고, 또 그런 나를 데리고 남은 시간을 무리 없이 살아가고 싶다. 삶의 1막은 나름 열정적으로 보냈으니 삶의 2막은 차분하면서도 조용히 살아도 볼 일이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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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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