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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인권단체들이 연 제2신안염전노예사건 경찰청 직접 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해 당사자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인권단체들이 연 제2신안염전노예사건 경찰청 직접 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해 당사자가 발언하고 있다.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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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악질적인 사건입니다. 사건 자체는 2014년에 일어났지만, 5년 뒤인 2019년에서야 염전에서 노예처럼 살아야했던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이길 수 있었는데요. 이 사건은 장애가 있는 피해자들을 염전에서 노예처럼 부린 가해자 뿐만 아니라 공권력까지 연루되어 있어 양상이 매우 복잡합니다.

63명이나 되는 피해자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20년 동안 염전의 노예였습니다. 피해자들은 도망치려고 했지만 선착장에서 배를 탈 수 없었습니다. 경찰에 염전 업자를 신고해도 되려 경찰이 피해자들을 염전 업자에게 다시 넘겨주었지요. 신안의 관할구역인 목포 고용노동청에 염전에서의 임금 체불을 신고해도 제대로 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 시민단체들이 신의도에서 도망친 피해자 8명과 합심하여 신안군, 완도군,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합니다. 

신안염전노예 사건, 1심에서는 패소했다? 

당연히 피해 국민을 보호하고 염전 업자를 조사하고 처벌할 책임을 방기한 지방자치단체들과 국가가 패소하는 것으로 일단락날 것 같던 1심 결과는 염전 노예 피해자들의 패소였습니다. 피해자 8명 중 7명에 대해서,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패소 이유였습니다. 

패소한 것도 억울한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심 재판에서 이긴 신안군이 염전 노예 피해자들에게 700여 만원의 소송비용을 청구했거든요. 어떻게 이런 게 법으로 가능할까요? 바로 한국의 패소자 부담주의 제도 때문입니다. 

실제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은 가해자 징역 2년 선고, 국가가 피해자 김동식 씨에게 3000만원 손해배상 등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입은 실제 피해 및 정부기관의 과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가벼운 처벌과 배상만 이뤄졌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입니다.  

재판비용도 다 내라는 패소자 부담주의, 다른 나라들은
 
2019년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공익소송 패소자부담, 공평한가?" 토론회 (사진=참여연대)
 2019년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공익소송 패소자부담, 공평한가?" 토론회 (사진=참여연대)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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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의 과오로 노예 상태로 살았던 신안 염전 노예 피해자들에게 소송비용까지 내라니 정말 가혹하게 여겨집니다. 과연 다른 나라도 이런 제도를 갖고 있을지 궁금하고요. 사실 패소자 부담주의제도는, 전지구적으로 채택되고 있는 제도는 아닙니다. 

패소자 부담주의의 불합리함을 지적한 뉴스토마토 기사 '한국만 고집하는 패소자부담주의'에 따르면(2021년 11월 18일자), 미국과 일본 등 다수 국가들은 소송비용 각자부담주의를 취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법원에서 공익적인 목적을 인정한 소송의 경우 패소자의 비용을 면제해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지요. 

미국은 공익소송을 낸 원고들이 승소한 경우, 원고가 패소한 측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케 할 수 있는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원고가 패소하더라도 상대방 변호사비용 등을 부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패소자 부담주의를 택하고 있기는 하지만, '보호적 비용명령' 제도라는 나름의 보호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이 제도 덕분에 공익소송을 낸 원고가 패소해도, 법원이 재량껏 1) 원고가 부담할 피고 측 소송비용 지불의무를 면제하거나, 2) 원고가 지불할 상대방 소송비용의 상한선이 설정합니다.  

그외 캐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도 패소자 부담주의를 택하고는 있지만, '공익성'을 기준으로 비용부담 원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즉, 공익성이 인정된 소송이라면 패소자여도 재판비용을 부담하지 않게 보호해주는 것이죠.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 
 
국가별 공익소송 특례 인정 여부
 국가별 공익소송 특례 인정 여부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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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많은 시민단체들이 우리나라의 패소자 부담주의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천주교인권위원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2021년 2월 패소자 소송비용 부담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민사소송법 제98조 및 제109조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소는 2021년 3월 각하 결정을 내렸지요. 각하라는 것은, 형식적 요건이 충족되지 못해서 본안 심리 시작 전에 소송을 법원이 물리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 헌법재판소가 심판을 거부하여 각하)

국회에서도 패소자 부담주의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021년 5월 양정숙 의원(무소속)이 '민사소송법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것이지요. 양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공익소송에서 승소한 경우 그 이익은 대다수 국민에게 돌아가는 반면, 공익소송에서 패소한 경우에는 개인, 단체 등 패소당사자가 막대한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됨으로써 적극적으로 장려되어야 할 공익소송이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현실을 꼬집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98조(소송비용부담의 원칙)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
제109조(변호사의 보수와 소송비용) ① 소송을 대리한 변호사에게 당사자가 지급하였거나 지급할 보수는 대법원규칙이 정하는 금액의 범위안에서 소송비용으로 인정한다.
② 제1항의 소송비용을 계산할 때에는 여러 변호사가 소송을 대리하였더라도 한 변호사가 대리한 것으로 본다.

이에 양 의원은 소송비용 부담의 원칙을 규정한 민사소송법 98조에 단서 조항을 추가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양 의원이 제안한 98조의 단서규정 내용은 "다만, 사건의 공익성, 소송의 경위 와 패소 사유, 패소한 당사자의 사 정 등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입니다. 소송의 공익성을 따지고, 소송 경위, 패소 사유 등을 폭넓게 살펴서 소송비용 부담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이 제안의 골자였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에서 계류되고 있습니다. 

이제 시민들이 나서야 할 때

2022년 6월 9일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익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패소한 경우 당사자가 부담하여야 할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의 민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의안번호 15832),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의안번호 15830)을 대표발의하였습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박주민 의원의 개정안 발의에 "사회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소송으로 표출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정안 발의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참여연대는 법안 심사를 담당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에게 시민들의 뜻을 전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시작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이 서명운동에 참여 가능합니다. 혹시라도 패소할까봐, 패소해서 소송비용을 물게 될까봐, 사회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소송제기를 주저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보태주세요. 

이 입법청원 서명 프로젝트는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에서 올해 11월 27일까지 진행됩니다(직접 가기 링크: 공익소송제도 개선 입법청원하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난사람들 포스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angrypeople.co.kr/post/214


태그:#제도개선, #공익소송, #패소자부담주의, #입법청원,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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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을 지키는 화난사람들, 에디터 현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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