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공간 '청와대', 오랜 세월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결정적 순간과 역대 대통령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지난 10일 방송된 SBS 예능 <집사부일체>는 '청와대일체-랜선투어' 2번째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주 청와대 본관을 탐방하고 역대 대통령들의 전속 사진사와 이야기를 나눴던 멤버들은 이번엔 녹지원으로 이동했다. 1968년에 조성된 청와대 정원인 녹지원은 역대 대통령들이 산책을 즐기거나 해외 정상-기업인-유명인들을 만나 중요한 현안을 논했던 장소로 유명하다.
 
기업가 출신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빌 게이츠를 만나 저녁 만찬 전 녹지원을 산책하며 대통령 국제자문위원을 제안했고 투자 유치를 약속받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함께 취미인 조깅을 즐기기도 했다. 이밖에도 많은 정상들이 녹지원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까이 함께 걸으며 '산책 외교'를 했다.
 
청와대는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유물들을 보존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170년 가까이 녹지원을 지켜온 소나무 반송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역대 정권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봤다. 또한 청와대 수궁터에 위치한 주목은 약 1278년 고려시대에 수령된 것으로 추정되며 740년째 수명을 이어오며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썩어서 천년을 간다'는 이야기를 남길만큼 청와대의 또다른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본관 뒤편 산책로를 올라가면 만나게 되면 일명 청와대 미남불의 정식 명칭은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다. 경주 남산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제작은 신라시대로 추정되며 1927년 조선총독부 관저를 지으며 옮겨진 불상이다.
 
녹지원 위쪽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상춘재를 만난다. '항상 봄인 집'이라는 의미의 상춘재는 1983년에 지어진 전통 한옥으로 외빈 접견이나 대통령의 비공식 회의가 열리는 공간으로 쓰였다. 많은 대통령들이 여기서 차담을 나누기도 했다. 

청와대 토박이 장기붕 전 경호부장
 
 SBS 예능 <집사부일체> 한 장면.

SBS 예능 <집사부일체> 한 장면. ⓒ SBS

 
상춘재에서 20년간 역대 대통령들의 곁을 지켜온 장기붕 전 청와대 경호부장을 만났다. 장 전 경호부장은 1980년 충무요원으로 청와대에 들어와 2000년 경호부장으로 퇴임하기까지 5명의 역대 대통령들을 지켜온 청와대 토박이였다.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가 되었지만 탄탄한 체격과 예리한 눈매는 변함이 없었다.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한번 대통령 경호원은 영원한 대통령 경호원"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장 전 경호부장은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방한할 때마다 한국 측 경호 책임자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미국 대통령 경호실장이 감사의 표시로 장기붕 전 경호부장에게 비밀경호국의 인장이 새겨진 반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한국 경호실을 보고 준 것이지 저 개인에게 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호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기붕 전 경호부장이 청와대에 근무하던 시절 겪었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바로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이다. 미얀마 독립운동가 아웅산 묘소에 참배할 예정이었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노리고 북한이 폭탄 테러를 저질러 각계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 언론인까지 약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당시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현장 테러발생 사실을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한 인물이기도 했다. 시 미얀마 외무장관이 10분 지각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약간 늦게 현장으로 출발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장씨로부터 폭탄 테러 소식을 무전으로 보고받고 차를 돌려 목숨을 건졌다. 
 
북한 공작원들은 아웅산 묘소에 인명제거용 클레이모어 폭탄을 설치해놨고, 장기붕전 경호부장도 당시 쇠구슬이 등허리에 박혔으나 방탄복을 입은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당시 북한이 증거인멸용으로 따로 설치했던 소이탄은 다행히 불발됐다. 클레이모어의 쇠구슬 파편이 머리를 향했거나, 소이탄이 폭발하거나 했으면 장기붕 전 경호부장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청와대 경호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로 '상상'이라는 의외의 요소를 꼽았다.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만일 내 앞에 폭발물이 떨어지면 바로 덮친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하여) '나는 죽어도 좋다'라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도 경호원들은 '라인 오브 파이어(사선)'라고 해서 누군가 위험상황에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이겨내고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훈련을 거친다고 한다. 
 
큰 폭발음이 들리거나 위험 상황이 오면, 일반인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호원들은 공격이 발생하면 오히려 그 방향으로 온몸을 펼쳐 경호 대상을 보호해야 한다. 본능과는 반대로 몸을 움직이는 '체위 확장' 훈련을 늘 진행하는 이유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승기가 갑자기 "빵!"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자 출연자들은 물론 제작진까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오히려 소리를 난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군사작전과 경호작전의 차이를 언급하며 "군사작전이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전쟁이라면, 경호작전은 성공과 실패의 게임이다. 경호원이 다 죽어도 대통령만 무사하면 성공한 경호"라고 설명했다.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직접 적어온 메모를 보며 역대 경호실의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절 처음 청와대 안내를 담당했던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대통령이 즐겨찾던 수영장에서 사람의 말을 흉내내도록 훈련된 구관조를 활용한 깜짝 환영인사 이벤트를 맡았다.
 
하지만 연습할때는 인사를 잘 따라하던 구관조가 정작 당일날 말을 듣지 않았다.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한번 실패하면 그냥 넘어갈법도 한데 노태우 대통령은 인내심이 강한 분이었다"라며 "말할 때까지 시켜보라고 하시더라. 구관조는 계속 입을 꾹 닫았다. 알고보니 낯을 가린 것"이라며 진땀나던 순간을 회상했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섰는데 잠시 후 구관조가 뜬금없이 전화벨 소리를 몇번이나 반복해서 흉내내는 개인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다시 시켜보라고 하면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대통령으로부터 졸지에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는 농담섞인 구박을 받아야 했다고.
 
 SBS 예능 <집사부일체> 한 장면.

SBS 예능 <집사부일체> 한 장면. ⓒ SBS

 
섬뜩했던 사건도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UN 연설을 위하여 미국에 방문했다가 묵었던 한 유명한 호텔에서 대통령이 머물던 응접실 창문이 총격으로 깨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발견된 탄피는 놀랍게도 국산 실탄으로 밝혀졌다. 사안의 중대함을 감안하여 미국 대통령 경호실까지 수사에 나섰으나 범인의 정체나 동기는 끝내 밝혀내지 못하고 영구미제로 남았다.
 
장기붕 전 경호부장은 "대통령 경호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서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하며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국민들의 관심, 이해, 제보가 뒷받침되어야 '총력 경호'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전직 대통령들을 겨냥한 사건사고가 잇달아 발생하여 논란이 됐다.심지어 이웃나라 일본에서 전직 총리가 백주대낮에 암살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베테랑 경호원의 말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멤버들은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집' 관저로 자리를 옮겼다. 대통령 관저는 전통적 목조구조로 궁궐 건축양식인 팔작비중의 겹처마를 사용했고, 그 위에 한시 청기와를 얹은 ㄱ자 지붕형태로 우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살렸다.

지금은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없지만 거실에 낡고 소박한 소파만이 남아 세월의 흔적을 보여줬다. 한편에는 비상 상황에서 대통령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대피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넓은 안방을 지나면 건식사우나와 가족식당, 전용 미용실까지 있어서 역대 대통령들의 흔적을 느끼게 했다.
 
멤버들 감동시킨 '고구마맛탕'
 
 SBS 예능 <집사부일체> 한 장면.

SBS 예능 <집사부일체> 한 장면. ⓒ SBS

 
관저 조리실에서 20년간 대통령들의 밥상을 책임진 천상현 전 총괄 셰프를 만났다. 1998년부터 2018년까지 근무한 천상현 전 셰프는 장기붕 전 경호부장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20년을 근속했다. 천상현 셰프는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먹었다는 보양식 '불도장'과 '고구마맛탕'을 그대로 재현해 멤버들을 감동시켰다.

역대 대통령마다 소울푸드가 있었다. 미식가이자 대식가로 유명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홍어삼합, 산낙지, 민어매운탕 등 호남의 음식과 양장피, 게살수프 등 중식도 좋아했지만 일식은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고. 소박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잔치국수에 부추를 겪은 모내기국수를 별미로 즐겼다. 재임 초기에 관저를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갑자기 주방에 들어와서 아내 권양숙 여사로부터 구박을 들었다는 일화도 있다.
 
먹방으로 유명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흰 돌솥밥에 날계란을 넣고 간장과 참기름으로 비벼먹는 돌솥간장계란밥을 최고의 보양식으로 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음식 취향이 비슷했지만 특히 국밥을 즐겼다고 한다.

내향적이고 예민한 성격으로 알려진 박근혜 대통령은 의외로 음식에 있어서는 까칠하지 않고 먹는 폭이 가장 넓었다고. 울릉도에서 공수한 나물로 요리를 했을 때 박 대통령은 "힘들게 구해 요리해 줘서 정말 고맙다"라고 인사하며 항상 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무려 20년 4개월 동안 가장 가까이서 대통령의 곁을 지켜왔던 천상현 셰프는 청와대를 떠날 때 "시원섭섭한 감정이 들었다"라고 고백하며 "그래도 명예롭고 보람된 시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은 저마다 '대한민국의 역사'로, 누군가는 '청춘'이나 '친정으로' 혹은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곳'이라고 청와대를 정의했다. 청와대를 지키고 아끼고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모여서 74년의 역사가 이루어진 게 아닐까.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는 더 이상 권력의 중심지는 아니다.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우리 모두가 함께 보존해야 할 현대의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집사부일체 청와대 총력경호 역대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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