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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황정은 | 2010
 백의 그림자 | 황정은 | 2010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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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를 앞둔 상가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가동부터 마동까지 여러 개 동이 복잡하게 개축된 이 상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주민들이 있다. 십수 년, 혹은 수십 년 그곳을 지켜온 상가 주민들은 상가를 그저 '생계'로만 보지 않는다. 작은 점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가게에 들르는 객(客)들과 대화하며 서로의 삶을 섞는다. 그래서 상가 주민에게 상가는 '세계'다.

주인공인 은교는 상가에서 일한다. 그의 최근 관심사는 그림자와 상가 살이 동지인 무재씨다. 그림자는 무너져가는 사람의 틈새를 비집고 나와 형체를 갖추고, 결국에는 무기력한 주인을 삼켜버린다. 그림자에 삼켜진 사람은 다시는 생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림자를 따라가려던 은교의 위태한 순간에 무재가 은교를 붙잡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그림자에 삼켜지려는 무재의 손을 잡고 그림자를 멀리 몰아내는 은교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작가가 '그림자'로 은유한 것이 무엇인지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그림자를 각자가 짊어진 삶의 불안이라고 생각했다. '철거' 앞에 놓인 삶이지만 모두의 그림자가 철거의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 모양은 제각기 다르고, 사람을 삼키는 과정도 다르다. 소설에 나온 무재의 말처럼, 누군가의 삶을 한 단어로 정리하는 것은 편리하다. 쉽게 쓰인 '철거', '슬럼' 혹은 '재개발'이라는 단어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삶의 불안을 납작하게 지워버렸나.

이 책은 용산 참사 1년 후인 2010년에 출간됐다(2022년 2월 출판사 창비에서 동명의 제목으로 복간되었다 - 편집자말). 용산 참사라는 단어가 세상에 나온 지 13년이 지났고, 용산은 이제 대통령집무실의 대명사가 되었다.

용산이라는 이름이 변하는 동안 도시 빈가의 또 다른 얼굴도 늘었다. 장위동, 동자동, 양동, 미아3구역, 노량진 수산시장… 십수 년이 지나도 여전히 어딘가는 철거되고, 누군가는 철거 직전의 상가와 주택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세계에서 떠밀리는 사람들, 이 '백의 그림자'를 정치는 어떻게 들을 것인가.

제도 개선 운동을 하다 보면 사람을 지우기 쉽다. 서민, 시민이라는 단어가 난무하지만, 그래서 나는 시민 중 '누구'의 편에서 활동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길을 잃고 만다. 그럴 때 이 책을 떠올린다. 내가 쓰는 언어가 누군가의 삶을 지우지 않기를, 나의 활동이 '백의 그림자'를 몰아내는 은교의 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 조희원 조세재정개혁센터 활동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2년 7-8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백의 그림자

황정은 (지은이), 창비(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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