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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화장실을 소독하는 모습. 자료사진.
 공중 화장실을 소독하는 모습.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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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캐나다에 사는 성우재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은 코로나19로 못 오다가 3년 만에 한국을 찾았습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변화상에 놀란다는 그는 3년 만에 또다시 바뀐 한국에 경탄했는데 그가 우선 꼽은 좋은 점은 화장실이었습니다.

어디서든 화장실을 갈 수 있고 어디에 있는 화장실이든 깨끗하고 물비누와 종이 수건이 갖춰져 있는데 그가 경험한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이런 화장실은 없다고 합니다. 서울만이 아니라 그가 들른 목포와 강진, 공주, 대전, 군산, 창원, 대구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¹.

이렇게 세계적으로 깨끗한 화장실의 비결은 청소 노동자의 노동입니다. 이들의 노동이 없다면 화장실은 금세 오물 범벅에 악취가 나는 곳으로 변할 겁니다. 깨끗한 화장실에 익숙하다 보니 우리는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길 뿐입니다. 만일 회사 건물이나 학교의 화장실이 가는 곳마다 오물에 악취가 나고 이 상태가 일주일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직원이나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일하거나 수업하지 못하게 되겠지요.

2030 세대 일부 남자들의 공정 감각을 다뤄보겠다는 수업 계획서가 지난주 화제였습니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나윤경 교수는 올 2학기에 강의할 교과목명 '사회 문제와 공정' 수업계획서를 지난달 27일에 올렸습니다. 그는 수업계획서에서 최근 이 대학 학생 3명이 학내에서 시위한 비정규직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수업권 침해로 형사고소하고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행위를 들며 "불공정을 감내해 온 사람들을 향해 불공정이라고 외치는" 2030 세대 일부 남성들의 공정 감각을 다뤄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나윤경 교수는 "청소노동자들이 일주일만 파업하면 어떻게 될까? 학교 못 다닌다"라며 "단언컨대 교수 없어도 된다. 근데 청소하는 노동자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코로나의 교훈으로 "무엇이 '필수 노동'이고 무엇이 '필수 노동'이 아닌지가 완전히 드러났"다고 했습니다(관련기사: "학생들 청소노동자 고발, 부끄럽다"...수업계획서로 일침 놓은 연대 교수 http://omn.kr/1zm5c).

"사회에 이로울수록 보수는 낮다"
  
지난 6월 22일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1주기를 앞둔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기숙사)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1주기를 앞둔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기숙사)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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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사회에 꼭 필요한 육체노동이 있는데 이 노동자들이 일주일만 일을 안 해도 세상은 엉망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무의미한 일자리도 많은데 별다른 기여도 없이 보수가 높은 화이트칼라 직종이 주를 이룬다고 했습니다².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필수 노동'이고 무엇이 '필수 노동'이 아닌지" 따지기에 앞서 확실한 것은 필수 노동을 푸대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사, 제조, 청소, 돌봄, 배달과 같이 우리가 먹고사는 데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은 대체로 비정규직에 저임금에 복지 혜택도 열악합니다.

비단 한국 사회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지은 책 <불쉿잡>에서 "우리 사회에는 어떤 직업이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확실할수록 정당한 보수를 받을 확률은 더 낮아진다는 일반 원칙이 있는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필수 노동은 대개 육체노동입니다. 입으로만 노동자를 옹호하는 자기 모습에 회의를 느끼고 노동 현장에 뛰어든 철학자 시몬 베유는 "가장 인간적인 문명은 육체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문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시몬 베유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가르고, 육체노동에 비해 정신노동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를 비판했습니다.

만일 필수 육체노동에 대해 안정적인 일자리에 높은 임금과 다양한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이 필수 육체노동을 하며 자긍심을 갖게 될지 모릅니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 논리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요.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윤석열 정부에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청소 노동자 고소 논란 관련해 연세대 측은 "학교와 노조의 문제가 아니라 용역 업체와 노조의 임금 협상 문제다. 원청인 학교가 아예 책임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학내 집회를 중앙도서관 앞에서 열다 보니 학교와 학생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³. 나윤경 교수는 학교 측에 대해 "학생들에게 수업권을 보장해야 하는 주체는 학생들에게 비싼 등록금을 받는 학교 아닌가"라고 묻습니다.

연세대가 계약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필수 노동을 제대로 대우하는 의미 있는 사례를 남긴 대학으로 우리 사회에 기억되기를 바라는 건 지나칠까요?

덧붙이는 글 | 출처

1. 경향신문, 3년 만에 찾은 한국…기분좋은 낯섦을 만나는 즐거움
2. 한겨레, 필수 노동자와 제대로 된 대우
3. 한겨레, 청소노동자에 쏟아진 연대… 정작 연세대는 “대학도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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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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