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2 12:16최종 업데이트 22.07.0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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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미나스 제라이스주의 마티포에서 재배 중인 아라비카종 커피 ⓒ 위키미디어 공용


커피나무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현재 소비되는 커피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아라비카종과 나머지 4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로부스타종이다. 국제커피기구(ICO) 통계에 의하면 2022년 1월 커피 수출량 중 38.5퍼센트 정도가 로부스타종이었고 나머지 61.5%가 아라비카종이었다.(ICO 홈페이지)

아라비카종은 복합적인 향미와 좋은 신맛, 단맛, 감칠맛 등을 지닌 품종이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품질을 지닌 원두는 스페셜티 커피로 분류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드립커피와 에스프레소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라비카종이다. 칼 린네에 의해 코페아 아라비카라는 식물 학명이 부여된 것은 1753년이었다.


아라비카종 커피는 향과 맛이 좋은 만큼 나무를 키우기가 까다로운 품종이라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아라비카 커피나무는 자라는 곳이 제한되어 있다. 1년 내내 섭씨 15~25도의 기온이 유지되는, 해발 고도가 1000~2000미터 되는 고산 지대에서 주로 자란다.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해야 좋은 품종의 아라비카 커피가 생산된다. 화산재가 많아 물빠짐이 좋은 토양을 좋아한다. 인류는 커피가 음용되기 시작한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무려 500년 동안 아라비카종 커피나무에서 수확한 커피체리로 만든 커피만을 마셔왔다.

카네포라(Canephora)라고도 불리는 로부스타종 커피는 아라비카종 커피와는 달리 섭씨 20~30도 정도의 더운 기후에서도 잘 자라고, 방충제 역할을 하는 물질인 카페인 함량이 높아 병충해에도 강하다.

아라비카종의 카페인 함량이 1.5%인데 비해 로부스타종은 2.7% 정도로 높다. 토양을 가리지도 않는다. 수확량도 아라비카종에 비해 월등히 많다. 당연히 생산과 가공에 들어가는 비용도 저렴하다. 맛과 향 이외에는 장점이 무수히 많은 커피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로부스타종 커피는 한동안 커피 애호가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였다. 맛과 향이 아라비카종에 비해 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산미는 적고 쓴맛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 1940년대 들어 시작된 로부스타 종을 활용한 인스턴트커피의 대유행, 인스턴트커피를 쉽게 제공하는 커피 자판기의 급속한 보급, 그리고 로부스타종 원두를 적당량 섞음으로써 높은 바디감과 크레마 효과를 내는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의 유행 등에 힘입어 커피 세계에 새로운 스타로 등장한 것이 로부스타종 커피다. 로부스타종 커피가 하나의 종으로 인정받은 지 50년가량 지나서였다. 로부스타종이 별도의 학명을 부여받은 것은 1897년이었다.

아프리카 커피
 

인도 아나쿠람에서 재배 중인 로부스타종 커피 ⓒ 위키미디어 공용


로부스타종이 가진 장점 중 생산과 가공에 들어가는 저렴한 비용 때문에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여러 빈국을 중심으로 점차 재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커피나무의 원산지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19세기 후반까지 커피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세계인이 소비하는 커피는 15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까지는 예멘, 18세기 중반 이후 19세기 중반까지는 실론과 자바, 카리브해, 그리고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지역에서 생산되었을 뿐 아프리카 커피는 존재 가치가 없었다.

예외적인 지역은 에티오피아 동부의 하라였다. 이곳에서는 오래전부터 커피를 생산해 아랍과 유럽에 제공해왔다. 하라는 커피나무 원산지인 에티오피아 서남부 카파로부터는 먼 곳이었다. 홍해로 가는 중간이었고, 이곳에서는 오래전부터 커피가 자연 상태로 자란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재배되고 있었다.

품종과 재배 및 가공법이 에티오피아의 다른 지역과는 상이한 반면 예멘의 모카 주변 커피 산지와는 유사하였다. 게다가 하라에서 생산된 커피는 인근 홍해 건너 예멘의 모카항을 통해 수출되었기 때문에 별도의 이름이 아니라 모카커피로 불렸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1880년부터 예멘의 아덴을 거쳐, 하라에 10년 이상 머물며 커피 무역 관련 일을 할 때도 세계 커피 시장에서 아프리카 커피의 정체성은 거의 없었다. 랭보는 유럽인으로 아프리카에서 커피 사업을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당시 예멘의 모카항을 통해 수출되는 예멘 지역과 하라 지역 커피는 모두 예멘 모카커피로 불렸고 그 자체가 커피의 대명사였다.

아프리카에서 커피 생산이 본격화된 것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이 선도한 커피의 대중화로 커피가 세계 무역에서 주요한 거래 물품이 된 이후였다. 서양 선교사의 유입과 유럽인의 식민지 개발 붐에 따라 아프리카 지역에 커피가 심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중동부 고산 지역으로는 아라비카종 커피를 재배하는 농장이 생겨나고 커피 농가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까지 아프리카 커피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를 넘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였다.

로부스타종 커피의 고향인 중부 아프리카의 프랑스와 벨기에 식민지 국가들을 중심으로 로부스타종 커피의 재배가 서서히 확대된 것은 1960년대 이후였다. 당시 시작된 독립의 열기와 함께 지역 커피 산업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독립을 이룬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커피 재배를 국가 경제의 출발점으로 삼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아이보리코스트(현재의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콩고, 세네갈, 가봉, 우간다, 앙골라 등이 대표적이었다.

평화 가져다주는 화해 음료
 

다양한 커피 생산국들을 보여주는 지도 ⓒ 위키미디어 공용

 
2022년 현재 세계 커피 무역에서 차지하는 아프리카 커피의 비중은 12% 정도이다. 국제커피기구 통계에 따르면 2021년 2월부터 2022년 1월까지 1년간 커피 수출량에 있어서 아프리카 18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1억 2462만 자루(60킬로그램) 중 1445만 자루로서 전체의 11.6퍼센트였다.

아프리카 서부 지역 커피 생산의 리더였던 코트디부아르는 1970년대에 브라질과 컬럼비아에 이어 세계 3위의 커피 생산국 지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커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초대 대통령 펠릭스 우푸에-브아니의 영향이 컸다. 2021년 현재도 코트디부아르는 로부스타 생산량에서 세계 7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간다의 경우에도 1962년 독립과 함께 로부스타 생산의 급증을 가져왔지만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된 이디 아민의 독재 아래서 커피산업은 붕괴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회복되기 시작한 우간다의 커피산업은 성장을 거듭하여 이제 베트남, 브라질, 인도네시아, 인도에 이어 세계 5위의 로부스타종 커피 생산국이 되었다.

19세기 말에 명품 아라비카 커피인 자바커피의 재배를 포기하였던 네덜란드 지배하의 인도네시아에서 50년 만에 다시 커피의 본격 생산이 재개되었다. 이번에는 19세기까지 재배되던 것과 다른 품종이었고, 가격도 매우 낮은 품종이었다. 바로 로부스타종이었다.

1930년대에 이 지역 생산 커피의 90% 이상이 로부스타종으로 대체되었고, 미국에서의 자바커피 명성과 여러 종을 섞는 블렌딩 커피 유행을 타고 일시적으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과 이어진 독립전쟁으로 자바와 수마트라의 커피산업은 다시 붕괴되었다. 인도네시아 커피는 1950년대에 부활하였고, 현재는 세계 4위 생산국이다. 총생산량의 75%는 로부스타종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은 1990년대까지 잦은 내전으로 비극적인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전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촉발되었지만, 가난이 공통적 배경의 하나였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 등장한 것이 커피 산업이었다. 특히 로부스타 커피 재배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커피 소비의 확대에 따라 아프리카의 많은 빈국들이 커피 생산과 수출을 국가 주력 산업으로 선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커피 산업의 성장에 따른 일자리의 증가, 이로 인한 생계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은 내적 분열과 갈등을 점차 해소하는 데 기여하였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내전을 경험하고 있는 국가 수와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최근 수년간 급격하게 감소하여 왔다. 커피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커피로 인한 일자리 증가가 평화를 향한 작은 계기를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커피는 이렇듯 개인에게 위안을 주는 기호 음료이면서 동시에 어떤 민족이나 국가에는 최소한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화해 음료이기도 하다. 최근 북한에서도 커피가 유행이라고 한다. 한반도에도 평화가 찾아올까?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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