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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배웠다. 호국보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에 보답한다."

6월은 의병의 날(1일), 현충일(6일), 민주항쟁 기념일(10일), 6∙25전쟁일(25일) 등 국가적인 아픔이 가득한 달이다. 순국선열, 호국영령, 숭고한 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지금에서야 아주 조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내 나라의 근대사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 알게 되는 게 많을수록 마음이 아프고 감사하다.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 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 상자고문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 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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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를 가족과 같이 보았다. 그때 아이들은 초등 5학년이었다. 아이들도 나도 독립운동을 '글'로만 배웠다. 경험하지 못한 역사 담은 영화는 결말을 알면서도 초조하고 마음이 아프고 보는 내내 화가 났다. 영화 마지막에 나왔던 엔딩 크레디트에서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울분이 가라앉지 않은 우리는 봄이 되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가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전 세계를 잠식한 코로나19로 그 방문은 불가능했다.

2022년 6월 드디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갔다. 여느 여행처럼 즐겁지가 않았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모습이 드러내는 순간부터 발걸음이 무거웠다. 서대문형무소는 1907년 일제가 '한국의 애국지사'들을 투옥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감옥이다. 명칭은 경성감옥,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로 바뀌다가 1967년 서울 구치소가 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조선이 어떻게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그 후 우리 민족이 자유와 평화를 찾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러냈는지를 알 수 있도록 전시물마다 자세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근대사를 공부한 사춘기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시키지 않았는데도 모든 설명을 자세히 읽으면서 관람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서대문형무소는 여러 번 등장해 어느 정도 익숙했지만 실제 그 공간에 들어가자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마음이 아프고 수많은 독립열사들의 희생이 숭고하다는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항상 옆에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들마저 이곳에서는 말을 아꼈다. 아마도 그들의 마음도 나와 같지 않았을까.

영화 '항거'의 엔딩에 나왔던 독립운동가의 실제 수형기록표를 보고 많이 마음이 아팠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독립운동가의 기록 중 현재 남아 있는 5천여 장의 수형기록표가 가득한 방이 있다. 나는 이 방에 선뜻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한장 한장 들여다볼수록 미안하고 안타깝고 감사했다. 그들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그 어떤 부귀영화를 바라고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을 터였다. 유독 한 소녀의 수형기록표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그녀는 어른들의 그늘에서 밝게 자라야 할 소녀였다.

지하전시관으로 내려가자 영화에서 보던 고문실이 있었다. 영상으로 보던 그것을 실제로 보니 너무 참담했다. 각종 고문의 흔적과 실제 고문당했던 독립운동가의 육성 증언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 눈길을 사로잡던 그 앳된 소녀를 보았다. 할머니가 되어 육성 증언을 하던 그녀를 보며 나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그때 옆에서 마이산(작은 아이)가 눈물이 쏙 들어갈 질문을 했다.

"엄마, 지금 이 분들은 잘 살고 계신 거지? 나라에서도 충분히 보상해주고 여유롭게 편하게 살고 계시겠지?"

나는 그 어떤 대답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이름 붙여진 고문 도구, 문이 열려있었지만 겁이 나서 잠시라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 벽관고문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이름 붙여진 고문 도구, 문이 열려있었지만 겁이 나서 잠시라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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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그날 저녁 TV에서 <유퀴즈 온 더 블럭> 에 출연했던 라미(RAMI)작가를 보았다. 그는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던 중 미 해병대 출신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를 만났다. 그는 한 원로 용사의 사진을 찍어주다가 그분의 눈빛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고 한다. '남의 나라에 와서 싸웠는데 왜 저런 자부심이 생겼을까'라는 궁금함을 시작으로 그는 < Project Soldier, kwv >를 시작했고 2021년 3월 13일부터 4월 25일에는 그동안의 사진들을 전시했었다. 그는 1379명의 참전용사를 만났고 36개의 도시를 방문했으며, 1276개의 사진을 담은 액자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가 찍어준 사진의 액자를 받은 콜 윌리엄 참전 용사는 액자 값이 얼마냐고 물었고 라미작가는 '이미 69년 전에 지불하셨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윌리엄이 이렇게 말했다.

"자유를 가진 사람에게는 의무가 있어. 그 의무는 자유를 잃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전하고 지키게 하는 거야.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그 자유를 지키고 전달하기 위함이었으며 내 의무였어... 너희들도 그 의무를 다했으면 한다."
 

해가 갈수록 근대역사와 관련된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된다. 나는 올해 '장사리 전투'에 대해 알게 되었다. 15세부터 19세까지의 소년 학도병들. 그들은 북한군의 계속된 남하에 자원입대했다. 나는 처음부터 충격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보았던 그 앳된 소녀와 마찬가지로 어린 소년들은 누가 시키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전쟁통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마음과 그 가족들의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극비작전이라서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그들의 희생은 그들을 지휘했던 한 지휘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옆에 있던 강물이(큰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서 그들을 인정해주고 보살펴줘야지. 보통일도 아니고 전쟁인데. 저 할아버지들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거야."
 

10대의 학도병이었던 소년들은 현재 90대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희생을 억울해 하지도 않고 같이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에 대한 미안함만을 가득 안고 있었다.

윌리엄의 말과 아이들의 말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던 항일독립운동가들,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 저항했던 민주화운동가들, 그리고 6∙25한국전쟁에서 싸웠던 우리나라 군인들과 학생들, 해외의 참전용사까지. 그들이 2022년의 나와 내 가족에게 전해준 자유를 숨 쉴 때 필요한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느끼며 살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당연하다고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 왔다는 게 더 정확하다. 윌리엄의 말처럼 이 자유를 지키고 전달하는 건 내 의무이다. 나는 이 의무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저 근대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 다음 세대에 전해줘야 한다는 것 말고는.

라미작가를 후원하기 위해 구입한 모자에 그 답이 있었다.
 
'Freedom Is Not Free' 모자를 착용할 때마다 마음에 새겨야 한다
▲ 프로젝트 솔저(Project Solider KWV) 후원 "Freedom Is Not Free" 모자를 착용할 때마다 마음에 새겨야 한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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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 is not free."

식민지 시대나 독재정권을 경험하지 못한 나에게 자유란 물과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내가 지금 누리는 자유는 이전의 누군가의 희생이 이뤄낸 것이고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아직 뾰족한 방법은 없지만 자유를 지키고 전달해야 하다는 건 안다. 이 의무를 지키기 위한 방법은 아직 숙제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 (brunch.co.kr/@sesilia11)에도 실립니다.


태그:#라미작가, #프로젝트솔저, #한국전쟁, #FREEDOM IS NOT FREE, #호국보훈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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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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