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화 '브로커' 속 베이비박스 장면
 영화 "브로커" 속 베이비박스 장면
ⓒ 영화사 집

관련사진보기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 베이비박스 앞에 아기를 내려 두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한 미혼모가 있다. 그녀가 사라지고 얼마 후, 아기 주변으로 각자의 목적을 가진 이들이 모여든다.

버려진 아기의 과거를 지운 후 새 부모에게 팔아 넘기려는 브로커,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교회에서 일하며 브로커 역할을 돕는 보육원 출신 청년, 돈을 지불하서라도 아기를 입양하려는 부부, 불법 입양 브로커를 현행범으로 검거하고 싶은 경찰까지 모두 아기를 돕겠다는 마음이다.

몇 해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베이비박스'와 관련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기대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영화를 기다렸다. 그간 여러 대안가족의 삶을 담아내며 '가족의 의미'를 질문했던 감독이라 기대가 됐다. 동시에 미혼모가 아기 양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현실을 잘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개봉을 기다렸다 홀로 한 번, 동료와 또 한 번 영화를 보는데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명확히 다가오지 않았다. 감독이 그간의 영화를 통해 던졌던 '가족을 가족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연장이라고 받아들기엔 지나치게 '선의'를 부각시키는 듯했다. 타인들을 가족처럼 보이도록 묶는 감독의 의도가 내심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베이비박스, 보육원, 입양 등은 나의 삶과 긴밀히 맞닿은 영역이 많아 유난히 관심있게 보았던 영화 <브로커>, 그 속에 다 담지 못한 현실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베이비박스 통해 입양한 가정의 실제 고민

나는 세 아이를 입양한 엄마이자, 입양가정의 어려움을 지원하는 실천가이다. 가족의 역사가 이렇다 보니 영화 속에 나오는 미혼모, 베이비박스, 보육원 등은 내게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입양되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미혼모의 아이'라는 거창한 사실을 꺼내지 않더라도, 그들은 실제 우리 아이를 낳은 엄마이자 언젠가 재회해야 할 확대 가족 같은 이들이다.

베이비박스와 보육원은 또 어떤가. 이웃 입양가정의 아이가 발견된 공간이자 내 아이가 5년간 살았던 곳이라 우리 가족의 역사를 훑어가다 보면 그곳에서의 추억도 함께 따라온다. 나에게 영화 속 인물은 뉴스 사회면에서 만나는 김아무개씨가 아닌 이래저래 소식을 전해 듣는, 그들의 안녕이 나의 안녕처럼 느껴지는 가까운 이웃인 셈이다.  

얼마 전, 한 가정이 상담을 요청했다.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를 입양해서 잘 키워온 가정이었다. 아이가 어느새 여섯 살이 되어 입양말하기(공개입양가정에서 아이에게 입양사실을 말해주는 것)를 하려는데 아이에게 전해 줄 아무런 정보가 없어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두렵다고 말했다.

처음 입양을 결심할 당시만 해도 '내가 아이의 진짜 엄마가 되어줄 것이므로 생부모의 정보와 아이 관련 기록이 없는 것 쯤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입양 사실을 전달하려니 아이의 역사에 대해 아는게 아무것도 없어 아이가 자신의 입양과 관련한 이런 저런 질문을 해온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가 하얘진다'는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를 입양한 가정은 비슷한 고민을 토로한다. 베이비박스가 아이의 생명은 건졌을지 모르지만, 정작 아이가 알고 싶어 하는 중요한 정보는 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때는 아이가 꽤 자란 후이다.

입양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지금의 부모가 나를 낳은 게 아니라면 나는 누구에게서 태어난 것인지, 나를 낳은 부모는 왜 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나를 포기할 때 그 마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 모든 게 내가 무언가 부족하고 나쁜 아이라서 벌어진 일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아이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남기지 않고도 아이만 맡길 수 있도록 한 이 편리한 시스템(베이비박스) 덕에 아이는 자신의 탄생과 관련한 퍼즐을 맞출 수 없다. 생명을 건진 대신 평생 이 혼란과 공허를 마주하고 살아야 한다면, 베이비박스가 과연 아기의 생명을 온전히 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시작에 대해 알 수 없는 삶이란 가혹한 것이 아닐까.

입양 전에는 몰랐던 일
 
8년간 입양가정을 지원하는 실천가로 살면서, 애초 '선의'를 가지고 입양을 했지만 결과가 선하지 못했던 가정도 많이 만났다. 부모의 자리를 흔들림 없이 지키는 것은 누구라도 힘든 일이다(자료사진).
 8년간 입양가정을 지원하는 실천가로 살면서, 애초 "선의"를 가지고 입양을 했지만 결과가 선하지 못했던 가정도 많이 만났다. 부모의 자리를 흔들림 없이 지키는 것은 누구라도 힘든 일이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보육원에서 5년을 살다 가족이 된 나의 큰 딸은 어느새 17살이 되었다. 자신의 입양사실을 이해하고 생부모에 대한 여러 감정을 통과하느라 힘겨워했던 아이는 십 수 년이 지나면서 꽤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가진, 기특하면서도 못 말리는 K-여고생이 되었다.

아이는 사망자 통계 보고가 일상이 된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자신을 낳아준 생모의 생사가 궁금해졌던지 더 늦기 전에 뿌리찾기를 해보고 싶다는 말을 얼마 전 전해왔다. 최근 2~3년간 생부모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면 아직은 만나보고 싶지 않다고 주저하던 아이였다.

불확실한 팬데믹 시대를 통과하며 새로운 내면의 욕구를 발견한 것이다. 기회가 없어지기 전에 시도해 보기로 용기를 낸 아이의 마음이 놀라웠다. 자신의 삶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싶은 그 기특한 마음이 전해져 왔다.

아이의 뜻대로 이번 여름방학에는 함께 보육원(지금은 아니지만, 아이가 있을 당시 국내입양 지정기관)을 방문하려 한다. 아마 그 이후 아이는 생모와의 재회를 신청하는 단계를 밟지 않을까. 진실을 향한 자신의 내면을 존중하는 아이의 발걸음을 엄마인 나도 함께 할 것이다.

영화를 보나 현실을 보나 입양은 여전히 보호가 필요한 아이를 향한 최고의 '선의'로 인식되는 것 같다. 지난 8년간 입양 가정을 지원하는 실천가로 살면서 '선의'를 가지고 입양을 했지만, 결과가 선하지 못했던 가정도 많이 만났다. 내가 낳지 않았어도 사랑으로 키울 수 있을 거라 믿어 입양했지만 낯설고 다른 기질의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가족이 위기를 맞게 된 경우도 있었다.

나 역시 지금의 큰 딸을 입양한 후 초기 몇 년간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이에 대한 모성도 생기지 않고, 엄마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아이에게 사랑을 건네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저 입양으로 만난 부모 자녀가 애착을 맺고 유대를 형성하며 잘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부모가 필요한 아이가 새로운 가정을 만나고, 상처받은 아이라도 부모의 사랑만 있으면 금세 꽃 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우리와 전혀 다른 체계에서 들어온 낯선 아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에게 자신의 입양 사실을 이해하도록 돕는 과정 또한 녹록지 않았다.

좋은 부모 찾기보다 필요한 것
 
영화 <브로커> 중 한 장면.
 영화 <브로커> 중 한 장면.
ⓒ 영화사 집

관련사진보기

 
아이가 자신의 '다른 삶'을 이해하며 상실감과 슬픔을 느낄 때, 함께 무너지지 않고 곁을 담담히 내어주는 일도 많은 훈련이 필요했다. 입양을 경험하기 전에는 입양을 많은 문제의 해결로 보아온 시각이 강했다면, 입양 이후의 삶을 통해 '새로운 문제(어려움)의 시작'이라는 걸 깨달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좋은 부모를 찾아주겠다고 긴 여정을 함께 하는 그들의 '선의'가 마음에 걸린 이유다. 그 선의가 처음부터 아기 엄마인 소영(아이유)과 우성(아기) 모두를 향해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일었다.

그간 수많은 양육 미혼모와 입양 생모(아이를 입양보낸 엄마)들을 만나며 위기 임신으로 아이를 출산한 여성은 그가 초기에 어떤 도움을 받고, 어떻게 이후의 삶을 가이드 받느냐에 따라 양육과 입양 선택은 물론, 이후의 삶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성'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그를 아이의 엄마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선의'가 우리 사회에는 절실하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찾아줄까 고민하기보다, 아이가 속한 이 최초의 가정(모자라든 열악하든 무능하든)이 어떻게 하면 해체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들은 이미 가족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들 앞에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설아씨는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입니다.


태그:#브로커, #입양부모, #미혼모, #입양아동, #입양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가족의 연결을 돕는 실천가, 입양가족의 성장을 지지하는 언니, 세 아이의 엄마,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저자, 가끔 예술가

이 기자의 최신기사큰딸의 생모가 살아있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