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4 12:06최종 업데이트 22.06.1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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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탄소중립시대, 우리나라는 투자하기 좋은 나라일까? 지난 5월 20일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가장 먼저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찾았다. 바이든은 연설에서 "우리의 경제, 국가 안보, 공급망은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 언론들은 이번 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이 안정화됐고, 우리나라가 반도체로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지난 6월 3일 언론에 기고한 칼럼 <'불가결' 국가 대한민국>(매경)에서 "평택에서 한국을 향한 러브콜이 뜨거웠다. 우리는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가진, 없어서는 안 되는 나라(불가결국가)가 되었다"고 표현했다. 이 정도라면 가슴 뛰는 성과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는 무엇일까? 우리나라가 받은 러브콜의 실체는 무엇일까?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30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간한 보고서 '한미 정상회담 주요 논의 내용과 시사점'은 분야별 한미 투자 계획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미국에 직접 투자를 약속한 규모는 약 450억 달러(56조 원)다. 반면, 미국이 한국에 약속한 규모는 겨우 2억 2800만 달러(2800억 원)다. 우리나라의 투자가 미국보다 200배나 많은 것이다.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대규모 투자 기업만이 아니라 우리 중소기업들도 동반 진출할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까지 미국에 가는 모양새다. 한국은 대규모로, 미국은 미미하게 투자한다는 것이 이번 성과이고 러브콜의 실체다.

전기차 배터리 회사들 이미 해외로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성적표를 보면 투자 자본들은 한국을 투자하기 위험한 나라로 보는 것 같다. BMW,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 사실상 공급망을 움직이는 대규모 글로벌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100%로 만든 제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RE100 캠페인) 그런데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사정은 어떨까?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가 펴낸 <글로벌 전력리뷰 2022>에서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생산량은 삼성전자가 2021년 한 해 동안 소비한 27테라와트(TWh)보다 20%나 부족한 21.5TWh다. 재생에너지와 탈탄소에 투자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이미 우리 기업에 대한 탈탄소의 공세는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이자 삼성전자 3대 주주인 블랙록은 지난 3월 16일 삼성전자 주주총회 직후 홈페이지를 통해 투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를 공개했다. 블랙록은 삼성전자가 장기, 중기, 단기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부족하고, 기후 전략, 탄소 중립의 긴급성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를 먼저 감지한 것은 전기자동차 배터리 회사들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부족으로 글로벌 공세를 피해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들은 벌써 해외로 나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헝가리에 지었다. LG에너지 솔루션도 폴란드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조차 대한민국에 매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전체 생산량은 삼성전자 한 해 전기 소비량보다 20%나 부족하다. ⓒ 픽사베이

 
지난 5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는 윤 대통령 특사 단장(나경원 전 의원)과 두 차례 면담을 하며 "국제사회의 기후대응과 청정기술을 선도하는 선구자동맹(the First Movers Coalition)에 한국도 합류할 것"을 요청했다.

선구자동맹은 미국, 인도, 일본 등 정부들과 자산가치 8.5조 달러(1경 원) 이상인 거대기업 50개 이상이 참여한다. 막강한 구매력으로 공급업체들의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탈탄소 시대에 청정기술시장, 녹색금융을 주도하는 것도 목표다. 윤석열 정부도 조만간 이 동맹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탄소사회에 익숙한 관료들

그런데 현재 탈탄소에 대해 준비가 안 된 우리나라가 선구자동맹에 참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대상이 되는 제조업들은 더 빨리 우리나라를 떠날 것이다. 우리나라 수출의 90%를 제조업이 차지하는데, 수출에 의존해온 대한민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우리 정부는 그린뉴딜, 녹색기술을 말하면서도 사실상 이를 해결할 리더십은 만들지 않고 있다. 20세기 탄소사회에 익숙한 관료가 정책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이제 21세기의 탈탄소사회로 나아가려면 새로운 기후 리더십이 필요하다. 기후 리더를 양성하여 정부, 공기업, 공동체들에 파견하고 일사불란하게 탈탄소사회를 촉진해야 길이 열린다.

우리가 바이든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지난해 1월 27일 대통령 취임 첫날 국가기후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25개 이상의 정부가 기후대응 목표를 중심으로 하나의 정부(a whole of government)처럼 일할 수 있었다. 바이든은 연방정부 기후예산의 40%를 시민공동체에게 할당하기도 했다.

탈탄소시대는 지금껏 우리가 겪지 못한 새로운 시대다. 이 질서에서 살 길은 바이든도 그랬듯이 새로운 기후 리더십과 녹색공동체 활성화에 있다. 이것이 불가결(不可缺) 국가로 가는 슬기로운 길이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 10위의 경제대국도 무너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후 리더십과 녹색공동체가 답이다.
 

오기출 /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오기출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겸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은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7년부터 기후위기 현장에서 기후난민들의 자립을 지원해온 기후운동가입니다.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ICE)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유엔사막화방지협약 CSO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관심영역은 △무역에 온실가스가 포함되면서 구성되는 세계질서 변화 △기후위기와 인권, 식량, 전쟁, 테러의 상호 관계 △기후위기로 땅, 공동체가 붕괴된 마을 공동체의 자립과 생태복원입니다. 주요 저서로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url.kr/jikh9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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