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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학자들은 전 세계에 존재하는 벌의 종류가 20만 종을 넘는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그 벌 중 절반 정도가 다른 생물에 기생한다. 비교적 작은 몸집에 찬란한 색깔을 가진 청벌류도 기생으로 세대를 이어가므로 영어권에서는 뻐꾸기벌(Cuckoo wasp)라고 부른다. 쏘는 시늉을 하지만 쏠 수는 없고 물어 뜯기는 하는데 아프지는 않다.

꽃이 핀 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왕청벌은 청벌 중에서 가장 큰 녀석으로서 몸 길이가 20mm에 달한다. 말벌과에 속한 호리병벌이나 감탕벌 종류의 집에 알을 깐다. 반짝이는 금속성 광택이 눈에 띄며 손으로 잡으면 간혹 가다 침을 쏘기는 하지만 꿀벌이나 말벌과는 달리 별다른 느낌이 없다.
 
배끝으로 호리병벌의 진흙집을 뚫고 알을 낳는다.
▲ 금속성 질감이 현란한 왕청벌. 배끝으로 호리병벌의 진흙집을 뚫고 알을 낳는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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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미벌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고 산란을 하는데, 코발트 색감의 배 끝으로 호리병벌의 진흙집에 구멍을 내고 알을 슬어놓는다. 연재 17화에서 큰호리병벌이 만드는 진흙집을 알아보았다. 벌집이 완성되고 나서 며칠 만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하나만 보였으나 수 삼일 지나면서 여러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청벌류가 먼저 우화하여 탈출한 것이다. 큰호리병벌은 기생의 위험을 감안하여 다수의 방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민호리병벌은 절간의 창문이나 식물 잎 뒷면, 바위 아래에 도토리 만한 크기의 벌집을 하나 만든다. 자벌레를 마취시켜 잡아다 넣고 그 위에 알을 깐다. 부화한 유충은 자벌레를 산채로 파먹고 성충으로 자란다. 약 10일 정도 지나면 어른 벌이 나온다. 민호리병벌이 출타한 사이 청벌류가 몰래 칩입하여 알을 낳는다. 
 
사찰의 창문 사이로 진흙집을 지었다.
▲ 호리병벌 집. 사찰의 창문 사이로 진흙집을 지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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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길이 20mm 전후의 감탕벌도 걸죽한 진흙으로 육아방을 만들기에 붙여진 이름표다. 생활사는 호리병벌과 유사하다. 한자로 감탕(甘湯)을 직역하면 '끓인 단물'이라는 뜻인데 감탕나무의 껍질을 찧어서 달이면 질척질척한 곤죽이 된다. 동의보감의 처방을 현대화시킨 쌍감탕이나 쌍화탕의 유래가 여기에서 나왔다.

배 끝의 이빨로 흙집을 뚫고 알을 낳는다

육니청벌은 꽁무니에 여섯개의 돌기가 나있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으며 노랑쐐기나방에 기생한다. 녀석의 배 끝에 돌기가 나있는 이유는 나방 고치를 뚫고 알을 낳을 때 구멍을 내기 위해서다. 금속 질감의 몸매를 가졌으며 햇볕 아래서 보면 그 느낌이 더욱 도드라진다. 손가락으로 잡으면 '붕붕~' 거리는 날갯짓과 함께 '찌릭찌릭' 경고음을 낸다. 입으로 물어뜯고 배 끝에서 보라색 침을 내어서 쏘려고 하지만 기생벌이므로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금속성 질감에 무지개색 몸매를 가졌다.
▲ 줄육니청벌. 금속성 질감에 무지개색 몸매를 가졌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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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색(Structural coloration)으로 인하여 기이한 금속성 질감을 보여주는 줄육니청벌의 배마디에는 오묘한 무지개색이 배합되어 있다. 풍부한 빛을 받으면 효과가 더욱 증폭되므로 현란한 색상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구조색은 고유의 색소를 갖지 않고 빛의 반사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것을 말하며, 아이들의 장난감을 만들거나 위조지폐를 방지하는 기술로 활용된다.

몸 길이가 최대 10mm를 넘지 않는 사치청벌은 꽁무니에 4개의 치아가 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북아메리카에 광역 분포하는 종이다. 손으로 잡으면 몸을 웅크리고 둥글게 마는 습성이 있다. 숙주의 둥지에 침입할 때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다. 단단한 외골격의 아귀가 딱 들어맞아 빈틈없는 방패역할을 한다.

성충은 꽃이 핀 곳에서 볼 수 있으며 산형과(미나리, 당귀, 당근, 고수 등)와 국화과(금계국, 매리골드, 캐머마일, 개망초, 구절초 등), 대극과(붉은대극, 아주까리, 등대풀, 광대싸리 등)식물의 꿀을 좋아한다. 숙주는 호리병벌과를 비롯하여 가위벌과, 구멍벌과에도 기생한다는 기록이 있다.

기주가 여러종이므로 기생 방식도 두 가지로 진화했다. 첫 번째는 절취기생(Kleptoparasite)인데 숙주의 둥지에 침입하여 알과 애벌레를 잡아먹고 세대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개개비나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에 기생하는 뻐꾸기의 탁란을 생각하면 된다. 

두 번째는 앞번데기(prepupa) 때 알을 낳는 방식이다. 한자로는 전용이라 하며 번데기가 되기 전의 상태를 말한다. 먹이활동을 하지 않으며 꼼짝않고 번데기가 될 준비를 하는 시기다. 무방비 상태이므로 알을 낳기가 수월하며 꽃과 꿀을 모아놓는 숙주에게 사용하는 방법이다. 왜나하면 사치청벌 애벌레는 꽃가루를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화한 청벌 애벌레는 기주의 체액을 빨아먹으며 자라난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왕청벌, #기생, #육니청벌, #사치청벌, #호리병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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