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 채널A

 
자신의 범죄를 사랑으로 포장했던 한 악마가 있다. 우연히 만난 여성의 순수한 호의를 자의적으로 왜곡하여 스토킹을 저지르고, 끝내는 단란했던 한 가정을 파멸로까지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는 과거에도 다른 여성에게 스토킹을 저지른 이력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만일 그가 처음 스토킹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다면 더 큰 비극은 피할수 있지 않았을까.
 
3일 방송된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지난해 3월 끈질긴 스토킹 끝에 결국 상대 여성과 그 어머니, 여동생까지 일가족 세 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 김태현의 이야기가 다뤄졌다.
 
불과 1년 전에 벌어진 사건이었고, 황당한 사유로 벌어진 잔혹한 범행은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김태현은 1996년생으로 사건 당시 25세, 현재는 26세였다. 김태현은 변변한 직장없이 스무살때부터 PC방, 편의점, 식당 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현은 역시 스토킹 끝에 여성의 가족에게까지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대구 중년부부 피살사건의 범인 장재진과 비교되기도 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비슷해보이지만 두 사건은 전혀 다른 사건"이라고 설명하며 "김태현은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고 범행의 전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인 세 모녀는 20년 전 아버지를 잃은 후 서로를 의지하며 삶을 이어왔다. 첫째 딸과 김태현은 SNS를 통하여 처음으로 알게됐다. 김태현의 진술에 따르면 2020년 11월 온라인 게임파트너를 구한다는 피해자의 글을 보고 댓글로 연락하며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후로 피해자와 자주 게임을 하며 친분을 쌓았다고. 김태현은 피해자와 성격도 잘맞고 게임 호흡도 좋았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시 일부 언론에서 김태현과 피해자가 연인 관계였다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지만, 실제 두 사람은 그저 친구 정도의 사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김태현은 경찰조사에서 피해자와의 관계를 설명하며 '잠재적인 연인'이었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피해자가 보인 가벼운 친절이나 호의를 자신에 대한 호감의 증거라고 일방적인 해석을 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피해자는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남녀를 가리지않고 친절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당시 경찰이 이를 지적하자 김태현은 그저 "죄송하다"는 말로 답변을 회피했다고. 처음 두 번의 만남에서 피해자와 단둘이 만났던 김태현은 세 번째 만남에서는 처음으로 총 네 사람이 사람이 함께하는 모임을 갔다. 여기서 김태현은 다른 남자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피해자의 모습에 질투심에 드러내며 말다툼을 하다가 관계가 틀어졌다.
 
비로소 김태현의 본색을 깨달은 피해자는 여러 차례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현 했지만, 김태현은 포기하지않고 집요하게 피해자를 스토킹하기 시작했다. 김태현은 피해자의 SNS를 뒤져서 그녀의 집주소를 알아냈다.
 
김태현은 피해자의 집앞을 찾아가 7시간 가까이 무작정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사용해서 연락하기도 하고 온갖 핑계를 대며 피해자와의 만남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지인에게 스토킹으로 인한 피해를 토로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이전에도 스토킹을 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김태현에게 고소할수 있다고 경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태현은 오히려 욕설과 협박이 담긴 문자를 보내며 보복을 예고했다. 스트레스에 시달린 피해자는 결국 휴대전화를 바꿔야했다.
 
김태현의 스토킹이 더욱 끔찍하게 다가오는 것은, 남녀를 막론하고 우리 일상과 주변에서 누구든 어디에서든 벌어질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권일용은 "피해자에게 집착하면서 피해자와 내가 연결될수 있는 고리가 끊어졌다고 생각하게 되면 상대방의 삶을 파괴하려는 심리를 갖게 된다.고 스토킹 범죄의 특징을 설명했다. 게스트 허영지는 "좋아하는 것과 스토킹의 차이를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3월 23일 오후 5시 30분경 피해자의 집으로 잠입한 김태현은 먼저 일면식도 없었던 피해자의 여동생과 어머니를 살해했다. 그리고 오후 11시가 넘어 늦은 밤 귀가한 피해자와의 약 20~25분에 걸친 실랑이 끝에 미리 절취한 과도로 그녀를 살해했다. 사인은 경동맥 손상으로 인한 과다출혈이었다.
 
김태현은 세 모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이후에도 이틀 넘게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팔목에 자해행위를 하다가 정신을 잃은 김태현은 다음날에 깨어나 시신드을 앞두고 태연히 주방에 있던 맥주와 우유를 마시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김태현은 결국 수상을 느낀 피해자 친구의 신고로 검거됐다.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 채널A


김태현은 체포된 이후 줄곧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을 범행장소로 정한 것이나 도피일을 벌기위하여 휴무일 하루전에 범행날짜를 기록한 것. 청테이프와 과도 등 미리 준비한 각종 범행도구, 피해자들의 휴대폰 기록 등을 종합할때 치밀한 계획범죄였다는 정황은 넘쳐난다.
 
권일용은 세 모녀가 모두 치명적인 목부위에 공격을 당했다는 것을 지적하며 "가해자의 공격 방식과 피해자의 방어흔적, 공격 부위를 고려할 때 처음부터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 살인 의도가 분명하다는게 증명된다. 저항할 수 없는 피해자를 살해할 목적으로 공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태현은 경찰에 체포될 위기에 놓이자 스스로 자해하다가 정신을 잃었고 흉기가 목에 꽃힌채로 병원에 이송됐다. 그리고 보름 뒤에 붕대를 감은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등장했다. 권일용은 "전혀 상처가 나고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찌르지 않았다. 목소리도 경동맥도 멀쩡하다"며 피해자들을 인정사정없이 잔혹하게 살해할 때와 달리 자신의 목숨 앞에서는 한없이 소심하고 비굴했던 김태현의 찌질함을 꼬집었다.

또한 권일용은 김태현이 카메라 앞에서 선보인 쇼를 지적하며 "30년 가까이 경찰을 하면서 형사에게 팔을 놔달라는 범죄자는 처음 본다. 놔달라고 했다고 저걸 왜 놔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또한 당시 코로나19 문제 때문에 굳이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된다는 걸 미리 공지했지만, 기자들의 요구에 김태현은 스스럼없이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공개했다. 권일용은 이를 두고 "'이 범죄의 원인은 피해자들에게도 상당히 있다. 나는 아주 파렴치한 인간은 아니다'라는 심리를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영지는 진심어린 사죄나 반성-죄책감보다는 "마치 자신의 목적을 다 이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있는게 너무 괘씸하다"며 김태현의 뻔뻔한 태도에 분노를 금하지 못했다.
 
김태현은 살인, 절도, 특수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2014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여기서 권일용은 김태현이 받은 5개 혐의 중 "황당한 것이 포함되어있고, 꼭 있어야할 것이 하나 없다"고 지적했다. 바로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이었던 '스토킹'이 죄로 인정되지못한 것.
 
판결에는 스토킹 대신 '경범죄처벌법 위반'이라는 혐의가 적용되어있었다. 세모녀 살해사건이 벌어진 2021년 3월 23일까지만 하더라도 스토킹은 고작 10만원 이하의 벌금이 주어지는 경범죄에 불과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3월 24일 국회에서 22년만에 개정된 스토킹처벌법이 통과되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을 내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법 개정 이후 6개월 뒤인 2023년 10월부터 새로운 법이 시행됨에 따라 김태현의 스토킹은 개정된 법을 적용받지 않았다.
 
경미한 처벌로 스토킹 범죄를 피해간 김태현은 재판정에서는 어떻게든 사형을 피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김태현은 재판기간 내내 수십장의 반성문을 써가며 선처를 호소했다. 검찰은 3심까지 계속 사형을 구형했고 유족 측도 수십장의 탄원서와 진정서를 제출하며 엄벌을 호소했지만 최종은 결국 무기징역이었다.
 
권일용은 "재판부도 많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저는 왜 고민했는지 왜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겠고 답답한 심정이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형과 무기징역의 가장 큰 차이는 가석방 자격의 유무다. 무기징역에 있어서는 20년이 지나면 행정 처분으로 가석방 자격을 얻을수 있다. 어떤 중범죄를 지은 자라도 언젠가는 사회로 돌아올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생기고, 만일 김태현이 20년 뒤에 가석방이라도 된다고 가정하면 그의 나이는 여전히 40대 중반에 불과하다.

2심 재판부는 김태현에 대한 판결문에서 사형 선고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이 23년째 사형이 실질적으로 집행되지 않아 형벌로서의 실효성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가해자의 잔혹한 중범죄를 고려할 때 '가석방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으로 집행되어야한다.'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나마 유족들과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을 어느 정도 의식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
 
하지만 마지막 대법원 판결에서는 무기징역을 확정하며 '가석방을 불허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결론을 내렸다. 출연자들은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억울한 피해자들을 지켜주지 못한 무능한 법과 공권력이, 잔혹한 살인자에게는 형평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가해자의 권리는 보호해주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사람의 사소한 호의를 호감으로 착각하여 시작된 스토킹은, 결국 살인과 한 가정을 파괴하는 끔찍한 비극으로까지 이어졌다. 김태현은 이미 피해 여성을 만나기 이전에 두 번의 스토킹을 저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여성에게 전화를 통한 음란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김태현이 벌금을 선고받은 날은 2021년 3월 10일, 그로부터 김태현은 2주 뒤 끔찍한 세모녀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
 
만약 김태현이 첫 번째 스토킹 범죄를 저질렀을 때 엄중한 처벌을 받았더라면 그 이후에 피해자들이 당한 끔찍한 비극은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최근까지만 해도 스토킹-데이트 폭력 등이 엄중한 범죄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의 법과 사회적 인식이 피해자들이 당해야했을 유무형의 정신적 고통들에 대하여 좀 더 공감대를 가져야할 이유다.
블랙 악마를보았다 노원구세모녀사건 김태현 스토킹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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