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0 11:48최종 업데이트 22.05.2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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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9일 현재, 이재명 후보 사무실 앞에 전봇대처럼 가지가 잘린 채 서있는 가로수가 보인다. ⓒ 최진우

 
"이재명 후보가 현수막을 잘 보이게 하려고 가로수를 잘랐다?"
"아니다. 계양구청이 이전에 자른 가로수다."


때 아닌 가로수 논쟁이 벌어졌다. 여기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까지 '나무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페이스북을 글을 올리며 논쟁이 더 커졌다.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헐뜯기 위해 만든 가짜 뉴스일까? 아니면 이재명 후보가 가로수를 자르고도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양측의 공방 속에 가짜 뉴스까지 더해져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진실은 간단하다. 이재명 후보와 잘린 가로수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필자가 인천시 계양구청의 가로수 벌목을 중단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에 본 사건의 내막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계양구청 가로수 학살 사건의 진실을 지금부터 살펴보자.

계양구 가로수 학살 사건의 전말

커다란 집게발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아스팔트 위에 뒹굴던 잘린 나뭇가지들을 힘센 손으로 한 움큼 집어 올렸다. 조금 전까지 살아있던 나무들이 졸지에 쓰레기로 전락했다.
 

폐기물 수집 운반 차량이 집게발로 잘린 가로수 가지를 집어 올리고 있다. 지난 2월 20일 찍은 사진이다. 트럭 좌측 뒤편 도로 건너편에 이재명 대통령 후보 현수막이 보인다. ⓒ 최병성

  
지난 2월 20일, 인천시 계양구의 아름드리 백합나무 가로수가 무참히 잘려나갔다. 여름철 길을 가는 이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던 고마운 가로수들이었다. 그런데 모든 가지들이 잘려나가 전봇대같이 기다란 몸통만 남았다.
  

멀쩡한 백합나무 가로수 가지를 잘라 전봇대로 만들었다. 잘린 가지들을 폐기물 차량에 싣고 있다. 지난 2월 20일 모습이다. ⓒ 최병성

 
참혹하게 잘린 나뭇가지들이 바닥에 가득 쌓였다. 탄소와 먼지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어 주던 나뭇가지들이었다. 집게차가 잘린 나뭇가지들을 연신 짐칸에 쑤셔 넣었다.

계양구의 참혹한 가로수 가지치기는 다른 도시의 가지치기와는 차이점이 있다. 단순히 가지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나무 기둥마저 싹둑 잘라냈다.
  

계양구청은 가로수를 밑둥까지 잘라버렸다. 'HAPPY GREEN 계양'이라 써있지만, 참혹한 모습이다. ⓒ 최병성

 
작업자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계양구청에서 이 나무들이 위험목이라며 소나무로 교체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 백합나무 가로수들이 정말 위험목이었을까? 결코 아니다.

오래된 가로수들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며 지나가던 차량과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겉보기에는 크고 멀쩡해 보이지만, 속이 썩어 텅 비어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계양구청이 위험목이라며 자른 나무의 그루터기들을 살펴보았다. 멀쩡했다. 나무속에 동공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몇 그루 있었지만, 이렇게 무참히 잘라야 할 만큼 위험목은 아니었다.
 

계양구청이 자른 가로수들. 위험목이라 할만큼 동공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 최병성

 
계양구는 왜 멀쩡한 백합나무 가로수를 잘라냈을까. 산림청으로부터 내려 온 '바람길 숲' 예산 때문이다. 지난해 산림청은 인천시와 평택시 등 8개 지자체에 각 100억 원씩의 바람길 숲 조성 예산을 지원했다. 계양구도 인천시에 배당된 예산 중 일부를 받았다.

'바람 길 숲'이란 가로수가 없는 곳에 가로수를 심어 탄소를 흡수하고 시원한 도시를 만들라는 뜻에서 산림청이 지자체에 예산을 지원한 사업이다. 그런데 계양구청은 크고 아름다운 백합나무를 베어내고 소나무 심는 작업을 진행했다.
  

계양구청은 계산역 인근까지 아름드리 백합나무를 잘라내고 소나무를 심었다. 도로 좌측에 전봇대처럼 잘린 백합나무가 보이고, 도로 우측에 백합나무를 베어내고 소나무를 심은 것이 보인다. 지난 2월 20일 모습이다. ⓒ 최병성

 
계양구청이 심은 소나무를 살펴보았다. 나무마다 바람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나무 상태가 좋지 않아 영양주사를 맞은 흔적이다. 심지어 새로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잘려 그루터기만 남은 소나무들도 있었다.
  

계양구청이 백합나무를 베어내고 심은 소나무마다 영양주사를 맞은 흔적이 보인다. 심자마자 죽어 베어버린 소나무들도 있었다. ⓒ 최병성

 
당시 현장에서 산림청 관계자에게 전화했다. 바람길 조성 예산으로 인해 계양구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장 사진 몇 장을 보냈다. 산림청은 즉시 계양구청에 공사 중단을 요청했다. 산림청의 신속한 조치로 백합나무 가로수 벌목 공사는 중단됐다.

이재명 후보와 윤형석 후보 사무실로부터 계산역을 향하는 도로변에 있는 백합나무마다 바닥에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계양구청이 자를 나무 번호를 적어 놓았던 것이다. 필자가 산림청에 공사 중단을 요청하여 이 나무들은 살아남았다. 백합나무의 지름을 측정해보았다. 흉고직경이 약 60cm에 이른다. 이렇게 크고 좋은 나무들이 계양구청의 잘못된 정책으로 사라질 뻔했던 것이다.
  

계양구청이 자르기 위해 번호를 써놓은 백합나무 가로수들. 흉고직경이 60cm에 이르는 아름드리 나무들이었다. 다행히 산림청을 통해 공사를 중단시켜 많은 나무들이 살아남았다. ⓒ 최병성

 
5월 19일 현재, 계양구청의 가로수 학살로부터 살아남은 백합나무들이다. 도시에 싱그러움을 안겨주고 있다. 큰 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심은 이팝나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계양구청은 원래 소나무를 심을 계획이었으나 공사 중단과 함께 도시에서 소나무가 가로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일자 이팝나무로 교체한 것이다.
  

계양구청의 가로수 학살을 중단시켜 살아남은 백합나무 가로수들이다. ⓒ 최진우

 
바람길 숲을 조성한다며 수백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집행 과정과 타당성을 검토하지 않은 산림청의 게으름과 멀쩡한 가로수를 베어낸 계양구청의 폭력적인 가로수 학살 정책이 빚은 참극이었다.

선거판에 가로수 불똥이

그런데 이 문제가 선거판으로 튀었다.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가 '이재명 후보가 현수막 사진을 가리고 있는 가로수들을 잘랐다'고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그리고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언론들이 논란을 확산시켰다.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의 페이스북 . 조선일보를 공유하며 나무에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글을 올렸다. ⓒ 이준석

 
여기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무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며 조선일보 기사를 공유해 논란을 확대했다. 이 대표의 페이스북엔 이재명 후보를 향한 비난의 댓글들이 넘쳐난다.
  
지난 2월 20일 찍은 사진을 보자. 자른 나뭇가지들을 폐기물 수집 차량에 싣고 있다. 졸지에 모든 가지를 잘리고 전봇대로 변한 나무들이 줄줄이 서 있다. 사진 뒤편 좌측 건물에 이재명 대통령 후보 당시의 현수막이 보인다. 잘린 나무들은 이재명 후보 사무실 앞만이 아니다.
 

2월 20일 찍은 사진이다. 전봇대로 남은 가로수들 도로 좌측편에 이재명 후보 사무실에 걸린 현수막이 작게 보인다. 2월 20일 당시 이미 도로 좌측에 백합나무를 베어내고 소나무를 심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최병성

 
사진 속 잘린 나무들은 이재명 후보 사무실 도로 건너편이다. 거리도 멀다. 

계양구의 가로수 벌목은 계양구청이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한 일이다. 필자가 현장에 도착해 공사를 중단시킨 2월 20일에도 이미 많은 나무들이 잘려나갔고, 곳곳에 소나무까지 심은 상태였다.

이렇게 사실관계가 확실함에도 윤형선 후보는 오늘 아침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또다시 이재명 후보가 2월과 3월에 물이 오르는 가지를 계속 잘라냈다고 주장했다.
 
윤형선 : 이분 선거 사무실 앞에 수십 년 된 큰 나무가 물이 올라서 아주 보기에 좋았는데 가지치기를 다 해서 젓가락 같이 돼서 지역 주민들이 고목 만들어놨다고 차라리 파헤치지.

진행자 : 그 나무, 보도에 따르면 2월에 처리됐다. 이렇게 얘기가 되던데요.

윤형선: 아닙니다. 2월에 한 번 가지치기가 좀 됐었고요. 그 후에 그때가 3월 대선 때입니다. 3월 대선 때 막 물이 오르는데 다 쳐버렸더라고요. 그리고는 3월, 4월, 5월 거의 3개월 동안 진짜 예쁘게 물이 오른 거죠. 그동안 모르는 걸 쳐냈습니다. 제가 그 자료 사진 저희 거하고 비교한 사진도 가지고 있습니다.

윤형선 후보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증거는 다음 사진에서 쉽게 확인된다. 2월 20일 현장 사진이다. 이재명 후보 사무실 도로 건너편에서 한창 벌목 중이다.
 

지난 2월 20일 계양구청이 소나무 심는다며 백합나무를 자르는 작업 중이다. 좌측 도로 건너편 이재명 후보 사무실 앞은 계양구청이 나무 가지를 모두 잘라 전봇대로 만든 상태다. ⓒ 최병성

 

사진을 확대해봤다. 이재명 후보 사무실 앞 나무는 가지 하나 없이 잘려 있다. ⓒ 최병성

 
2월 20일 현재 이재명 후보 사무실 앞에 가로수들이 모두 잘려 있다. 사진을 조금 더 확대해보자. 계양구청이 이미 가지를 모두 잘라 놓은 상태다. 윤형선 후보의 주장처럼 예쁘게 물이 오르는 가지를 자를 게 없다. 내가 사진을 찍은 2월 20일은 추운 겨울이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잎이 나는 시기는 4월 중순이 지나야 한다. 윤형선 후보가 찍어두었다는 사진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가지가 잘려 전봇대가 된 나무가 5월이 되어서야 겨우 몸통에서 잎사귀 몇 장을 달기 시작한 모습이다. 2월에 자르고 다시 또 가지를 자를 만큼 나무 성장이 빠르지도 않고, 2.3월엔 나무가 자라지도 않는다. ⓒ 최병성

 
당시 계양구청의 가로수 벌목 소식을 듣고 달려가 현장 확인 후, 산림청을 통해 공사를 중단시킨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이재명 후보 사무실 도로 건너편이다.

가로수들이 잘린 것은 이재명 후보 사무실 앞만이 아니다. 이재명, 윤형선 후보 사무실로부터 계산역에 이르는 도로변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이재명 후보가 현수막을 가리는 가로수를 자른 것이 아님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계산역 3번출구 앞이다. 계산역까지 백합나무 가로수 베어내고 소나무를 심었다. 이재명 후보 사무실의 현수막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 최병성


가로수를 사랑하는 이준석 대표에게
 

장승이 서 있는 것처럼 가로수들이 몸뚱이만 남긴채 잘려나갔다. 특정한 한 곳이 아니라, 전국에서 벌어지는 일로 수시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 최수경

 
그동안 전국에서 무참히 잘린 가로수에 대한 언론 보도가 계속 이어져 왔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왜 이재명 사무실 앞 가로수 3그루가 잘렸다는 조선일보만을 공유하며 가슴 아파하고 진상규명을 다짐하는 걸까.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처럼 가로수를 학대하는 나라는 없다. 외국에 나가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도시의 가로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깃줄에 걸린다며 자르고, 낙엽 쓸기 귀찮다고 자른다. 나무가 자기 모습으로 자라도록 놔두지 않아 기형적인 가로수가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는 기후 여건상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다고 오해하지만 그렇지 않다.
 

싱가포르는 전 세계에서 도심 가로수가 가장 아름다운 나라다. ⓒ 최병성

 
싱가포르의 가로수들을 보자. 울창한 도시 숲을 이루고 있다. 싱가포르의 가로수들이 무성한 것은 나무가 잘 자라는 기후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가로수 가지를 참혹하게 자르지 않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시에 있는 은행나무길이다. 외국의 가로수처럼 보인다. 경이로움과 감동을 준다. 아산시 은행나무길처럼 우리나라도 가로수들이 잘 자랄 수 있다. 자르지만 않으면 된다.
 

충난 아산시 은행나무 길의 모습이다. 자르지 않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되었다. ⓒ 최병성

 
중앙정부와 지자체마다 도시 가로수가 탄소와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도시 열섬현상을 완화시켜준다며 가로수 심기에 엄청난 예산을 퍼붓고 있다. 가로수의 역할은 나무 잎사귀에 달려 있다. 그런데 닭발과 몽당손이 되어 잎사귀 없는 없는 가로수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전 세계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도시 숲을 통한 탄소 흡수를 강조한다. 가로수를 닭발로 만들며 탄소중립을 외치는 이율배반적인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이준석 대표의 가로수 사랑이 진심이라 믿는다. 잘린 가로수를 지켜주지 못해 안타까워한 이 대표가 더 이상 대한민국의 가로수들이 무참히 잘리지 않도록 앞장서서 법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에게도 부탁드린다. 두 후보 중 당선되어 국회에 들어가는 분은 제일 먼저 가로수 가지치기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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