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정태춘"이라는 이름의 무게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인디플러그

 
"정태춘"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인지하는가에 따라 한국현대사 세대구분이 가능하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겐 태산처럼 거대한 이름 혹은 건드리면 톡 하고 과거의 기억과 상념이 쏟아지는 보물 상자 같은 존재. 하지만 어느 시점 이후 잊힌 '과거'의 가수. 다른 누군가에겐 이름 자체가 생경할 것이다. 2019년 데뷔 40주년을 맞은 정태춘의 가수로서의 궤적은 그 물리적 시간의 길이만으로도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에 대해 추억을 가진 이들에게 그 이름 세 글자는 단순한 물리적 시간이 아니다. 정태춘은 누군가에겐 잊고 있던 세상과 자신의 연결고리인 동시에 이제 그만 놓고 싶은 어떤 신념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로 화제의 인물을 조명하고픈 작가들에게 정태춘이란 이름은 난공불락의 요새이자 끝판 왕에 가깝다. 그의 생애와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것은 곧 영욕의 한국현대사를 통째 압축해내겠다는 작가적 야심의 동의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대중적 인지도나 음악적 업적으로 본다면 그 앞에 다른 몇 개의 이름이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정태춘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다. 다른 '전설'들이 노래로 세상을 위로하고 대중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경지의 극한에 이르렀다면, 정태춘은 자신이 노래하던 세상의 아픔과 비통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그 어둠의 심연까지 이르고자 도전해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1978년 데뷔하자마자 MBC 신인가수상과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 부문상을 수상할 만큼 유망하던 대중가수는 반체제 민중가수로 변신하는 모험을 서슴없이 택했다. '코페르니쿠스적 변환'이란 표현이 요즘엔 그리 어렵지 않게 쓰이긴 하지만 정말이지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변'이었다. 하지만 그저 민중가수로 전환한 게 아니라 예술적 고민과 깊이를 가져와 민중가요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건 물론, 대중가요 표현범위 경계를 광활하게 넓히는 데도 일조했다.
 
그렇게 정태춘이란 이름은 다른 전설들에 비해 한 시대를 장악한 '제왕'으로 불리기엔 모자라도 음악이 그저 여흥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으로 평가된다면 그 정점에 도달한 가치로 남았다. 그의 노래에는 음악 이상의, 혹은 음악이 담을 수 있는 극한의 경지가 압축되어 있기에, 그의 다큐멘터리에는 그가 활동해온 40년간의 한국사회 전반이 고스란히 담게기게 마련이다. 과연 극장 개봉용 영화 1편에 그 소우주가 온전히 들어갈 수 있을까? 사실상 불가능한 미션이다.
 
가수의 다큐멘터리 영화이기에 돌출하는 문제는 또 있다. 정태춘의 노래는 특정세대에게는 전주를 듣자마자 떨림으로 혹은 혐오나 부정의 감정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의 노래에 담겼던, 한국사회 변화의 바람이 정체된 순간 이후 정태춘이란 이름과 그의 노래들은 유물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즉 그의 노래와 파급력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영화가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일종의 거대한 수수께끼가 되는 셈이다. 그의 노래와 과거의 일정한 시간을 등치할 수 있는 경험을 가졌던 이로선 도저히 풀 길 없는 수수께끼다.
 
역으로 그의 노래에 담긴 한국현대사의 단면들, 그리고 그 단면을 통합하면 보이는 구조에 관심이 없거나 제반지식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과연 정태춘의 노래와 그 노래가 만들어진 과정, 그리고 노래가 미친 파장이 영화를 본다고 전달될 수 있을까 또한 만만치 않은 의문이다. 그의 노래는 파편적 사건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점차 거대한 나무처럼 한국사회의 불의와 모순을 들여다보는 현미경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의 작품세계를 해석하는데 "작가주의"적 접근이 통용되는 것과 동일하게 접근하게 된다. 정태춘의 음악세계가 보여준 부침은 곧 고스란히 그의 노래가 왜 특정시기엔 이렇게 나왔고 왜 특정시기엔 침묵했는가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지난한 작업을 수반해야 한다. 그의 삶과 그가 처했던 사회, 그리고 그 결과물로 탄생한 노래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2_"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같은 도전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인디플러그

 
많은 이들이 상상하고 기대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그의 기록영화가 준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태춘의 데뷔 40주년을 맞이해 정태춘과 인생의 동반자 박은옥은 참 오랜만에 전국투어를 기획한다. 때맞춰 기록작업을 거쳐 영화 제작이 준비되었다. 가수의 음악세계를 넘어 그 일대기를 담아내려는 야심찬 기획의 일환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예정을 조금씩 넘기기 시작하자 목마름은 깊어만 갔다.
 
1년쯤 연착한 영화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이란 제목으로 완성된 영화는 40주년 기념 투어 현장에서 현재형으로 선보이는 정태춘, 그리고 동반자이자 예술적 동지인 박은옥의 노래 공연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초과해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두 사람이 함께 걸어온 현대사의 기록들을 담아내는 난제를 포괄하려는 시도였다.
 
정태춘과 박은옥의 연대기는 한국사회와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영웅 헤라클레스의 모험 중 아우게이아스 왕의 우리 청소처럼 제대로 소화해내기 극악의 난이도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주인공들의 궤적이 워낙 거대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원래 1시간 30분을 살짝 넘기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거의 두 시간을 꽉 채워 모습을 드러냈다. 정태춘· 박은옥의 장대한 여정 중 굵직한 덩어리들을 빼먹지 않고 소개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회였을 테다.
 
사실 애초 1편의 영화로 정태춘과 박은옥의 40년을 담아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시작부터 불가능한 미션인 것이다. 영화를 만든다면 수많은 변형이 가능하다. 정태춘과 박은옥의 인생 동반자 관계만 다뤄도 영화 1편 제대로 나올 것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큰 족적이라 할 비합법 음반 두 장에 담긴 시대상 위주로도 대하소설 뺨칠 게 탄생할 테다. 음반 사전심의 폐지 투쟁만 해도 장편 기록영화 하나 너끈히 뽑는다. 그가 장기간 음악활동을 휴지하던 시기에 있었던 사건사고들로도 의미 있는 기록영상이 나올 수 있다. 40주년 콘서트는 그냥 공연실황 다큐멘터리로만 나와도 가치가 차고 넘친다.

아무튼 최초의 영화가 도착했다. 영화를 보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불가능한 숙제를 풀기 위해 제작진은 끙끙 앓아가며 분투했을 것이다. 처음 기획이 80% 분량을 온전히 정태춘의 음악만으로 소화하려 했다는데 역시 그렇게 집중하기란 힘겨워 보였다. 그렇지만 특히 후반부에선 원래 제작 비전이 상당부분 구현되어 콘서트 현장에 와 있는 듯 착시가 휘몰아치곤 했다.
 
3_<아치의 노래, 정태춘>에 담긴 것들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아치의 노래, 정태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인디플러그

 
영화의 전반부에는 간략하게나마 가수의 연대기가 요약된다. 70년대 중후반 시골청년 정태춘의 데뷔 초반, 그리고 인생의 동지 박은옥과의 만남, 80년대 들어 조용필과 대학가요제의 물결 속에서 음악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방황, 사회운동과 결합하면서 제도권 인기가수에서 '운동권' 가수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차례로 펼쳐진다. 그의 민중가수와 대중가수 경계를 넘나드는 편력 중에서 두 세계를 잇는 대표적 사건, 음반 사전심의 검열에 정면으로 도전해 마침내 철폐에 이르는 업적까지 시간 순으로 죽 이어진다. 여러 숱한 고난도 겪었지만 빛나는 성취의 시기가 그렇게 지나간다.
 
하지만 한국사회 변혁을 꿈꾸던 당대 사회운동의 쇠퇴와 함께 가수의 영향력도 예전과 같지 않은 '환멸'의 90년대 후반이 시작된다. 정태춘의 활약도 점점 뜸해지고 고민은 깊어만 간다. 마치 잠수함 속 공기가 탁해지면 비명을 질러 위기를 알리는 토끼 같은 존재처럼, 대중운동과 혁명의 촛불이 희미해지는 것과 함께 가수의 생명력도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절이다.
 
21세기 초엽, 정태춘은 고향 평택에 귀환한다. 그런데 하필 '진보정권'이라 불리던 대통령 정부 하에서 대추리 미군기지 강제수용이 일어난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초토화의 한복판이 된다. 공권력에 맞서 가수는 동네 주민으로 싸움에 결합한다. 논두렁에서 시위를 하고 연행 당한다. 그리고 5.18 광주, 광화문에 연이어 등장하며 중요한 시기마다 빠지지 않고 기다리던 이들 앞에 나타난다. 그렇게 21세기를 횡단해 나간다.
 
(특정세대의) 많은 이들이 비합법음반 시절의 정태춘을 가장 진하게 기억할 테다. 하지만 가수는 영욕과 부침 속에서도 여전히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고 그 고민을 예술과 접목하는데 손을 놓은 적이 없었다. 영화에서 과거의 정태춘이 성취했던 공적 위업이 동료 세대나 음악평론가, 후배 가수들에 의해 증언된다면, 정태춘의 현재적 의의와 가치는 의외성을 띄거나 그리 유명하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로 전달된다. 정태춘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청소년 인권활동가나 그의 곡을 공연에 쓰게 된 아티스틱 스위밍 선수, 40주년 기념 전국투어에 관람 온 불치병을 앓는 팬들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전반부가 연대기적으로 정태춘의 자취를 좇는 해설에 가수의 노래들이 주석과 설명 대신 수록되는 식이라면, 후반부는 40주년 라이브 실황 중간 중간에 코멘트가 삽입되는 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후반부에서 특히 압도적인 노래의 힘이 (짧은 삽입이 아닌) 거의 풀 버전에 가까운 음악에 실려 제대로 진가를 발휘한다.
 
전반부를 상징하는 순간은 1990년 발표된 '비합법음반', <아 대한민국>에 수록된 당대 사회상의 고발, "우리들의 죽음"이 등장하던 찰나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정태춘과 박은옥의 예술적 초월성을 돋보이게 하던 순간은 "92 장마, 종로에서"와 "사람들 2019'ver."에서 정점에 달한다. 물론 '운동권'이 되기 전 대중가수로서 정태춘을 애호하는 이들에게는 "사랑하는 이에게"나 "시인의 마을"이 반가울 것이다. 대표곡으로 분류되진 않아도 "저 들에 불을 놓아", "양단 몇 마름", "건너간다" 같은 서정조의 주옥같은 곡들도 각자의 지분과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못했던 21세기 들어 발표한 신곡들의 등장에선 가수의 팬이라도 처음 듣는 체험이 적지 않을 법하다.
 
그런 감정의 고양이 극점에 달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정태춘의 음악세계에 대한 세간의 논란을 함축하는, 아니 그의 노래가 담아내려 분투해온 우리 사회의 모순을 투영하는 결정적 찰나는 "5.18" 40주년 광주 투어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수로서 정태춘의 녹슬기는커녕 세계관의 깊이가 더욱 다듬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정동진 3"의 앙코르 장면은 전율에 가까운 풍경이다. 못 믿겠다면 영화를 한번 보시라.
 
4_"첫 번째" 영화가 끝나고

 
영화에는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누차 언급했던 것처럼 거대한 덩어리를 물리적으로 담아내기 힘든 한계는 끝내 극복되지 못했다. 원래 가능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정태춘이라는 거대하게 돌출한 봉우리에서 각자가 보고 싶었던, 좀 더 강조되었으면 하는 지점을 온전히 다 다루는 것 역시 성립 가능하지 않은 숙제였음을 확인했다. 가수의 사회적 역할 때문에 오히려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음악성에 대한 조명도 보고 싶었고, 시대를 증언하는 것을 넘어 그 시대 자체였던 '가객', '음유시인'의 영향력을 입증할 풍부한 인터뷰나 증언도 추가되었으면 하고, 음악 다큐멘터리로서 보다 음악에 몰입할 수 있게 강렬하고 총체적인 연출도 보고 싶었다. 이루 형언할 수 없을 만치 더 보태고 싶은 게 '팬심' 한 가득이다.
 
영화가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한 것보다 더 불가능한 미션은 정태춘의 영화를 글로 소개하는 것이다. 이게 더 어렵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각자의 정태춘이 존재하며, 그들 각자의 정태춘은 개인의 삶에 어떤 형태로건 자리를 차지한다. 수십 수백만의 기록 르포와 영화가 이미 각자의 상상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무모한 시도의 뒤를 이어 다양한 방법론으로 정태춘과 그의 노래를 소재로 하는 도전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엔 정태춘의 음악을 당대에 접하지 못한 세대가 그의 노래를 듣고 예찬하는 게 심정적으로 온전히 와 닿지 않았다. 가능하지 않다고 오만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생각이 정태춘을 오히려 가두고 폄하하는 짓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여전히 그가 30년 전 비합법음반에서 고발하던 한국사회의 모순과 불의는 구조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2016년 11월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흘러간 옛 노래였을까. 아니올시다.
 
영화가 끝났다. 아쉬운 게 적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든 누군가는 한창 전에 시도했어야 할 작업이 너무 늦지 않게 때맞춰서 완성되었음은 명백하다. 또한 위대한 가수의 명곡들이 그 노래들의 의의를 살려내며 펼쳐지는 것만으로도 본 작품을 볼 가치와 의의는 충분할 테다. 어찌 되었건 우리에겐 지금도 정태춘과 박은옥이 건재하다. 그 당연한 사실을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그저 추억을 넘어 볼 만한 가치가 넘치는 작품일 것이다.
 
글로 정태춘이 담긴 영화를 소개하는 건 너무 힘들다. 글을 쓰기보다 막연히 오랜만에 정태춘의 보석 같은 노래들을 다시 들으며 생각에 잠긴 시간이 더 길다. 다시 만난 정태춘과 박은옥의 음악은 늘 그 자리에서 지쳐 회피하거나 도망쳤던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그를 모르던 이들이 어떤 식으로 정태춘과 접속하게 될지 무척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작품정보>
 
아치의 노래, 정태춘 Song of the Poet
2021|한국|다큐멘터리
2022.05.18. 개봉|113분|전체관람가
감독 고영재
주연 정태춘, 박은옥
출연 고창영, 김미현, 김용환, 김은희, 민영애, 박만희, 신고운, 신지아, 염주현,
원서하, 유연이, 유주현, 유지연, 은성태, 이경남, 이수경, 이영국, 정태의,
최문정, 최선용, 최치선, 홍윤경
제작 ㈜인디플러그
공동제작 문화예술기획 봄
제공 ㈜인디플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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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의 노래, 정태춘 정태춘 박은옥 음악영화 독립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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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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