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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경동 시인 시집
▲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송경동 시인 시집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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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이 6년 만에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라는 시집을 엮어냈다. 그의 시는 한국사회 민중 투쟁의 기록이다. 시인을 만나는 자리가 대부분 거리 집회장이고, 투쟁 현장과 집회에서 그는 늘 가슴을 후려치는 시를 낭독하기 때문이다. 거리가 그의 문학의 산실이고 삶의 현장이기에 그의 시는 민중 투쟁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내가 송경동 시인을 처음 만난 곳도 2010년 혹독한 찬 바람이 몰아치던 한겨울, 용산참사 현장이었다. 

그는 시끄럽고 추워 종종걸음으로 바삐 지나치는 사람들과 자동차 소음, 경찰의 집회 방해 방송이 한 데 섞인 그 공간에서 예의 가슴을 후벼파는 쇳소리로 시를 낭독하고 있었다. 제발 이 현장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온몸으로 절규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회가 끝나고 손세실리아 시인이 후배라며 송경동 시인을 소개했을 때 잠깐 눈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헤어졌다.

용산참사 현장, 기륭 투쟁 현장, 세월호,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쪽방촌 화재 희생자들, 물대포로 쓰러져긴 백남기 농민 추모시, 이름 없이 쓰러져 간 촛불시민, 투쟁 장을 누비다 삶의 자리를 옮긴 무명 사진 작가, 이주 노동자, 민중의 투쟁 현장에 늘 서 계시던 거리의 신부 문정현, 백기완 선생에 대한 그의 시는 지난한 민중의 투쟁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누군가에겐 '꿈꾸는 소리'로 들릴지라도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을 할 때 꿈은
2011년 세계 자본의 중심인 뉴욕 월가에서
1퍼센트의 금융자본주의에 맞선 99퍼센트의 저항운동을
외쳤던
주코티 공원 텐트촌을 상상하며
광화문 광장에서부터 청와대 앞 도로까지
분노한 사람들의 텐트로 덮어버리자는 것이었다
꿈같은 소리 하지 말라 했다

(중략)

야심찼던 '퇴진 단지' 택지분양에 실패하고
이순신 동상 아래에 세운
모델하우스 텐트촌에 만족해야 했지만
광장상설무대, 촛불기원탑, 광장극장 '블랙텐트'
궁핍현대미술광장,광장신문, 광장토론회,마을회관
마을진료소,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 등을 둔
작은 코뮌은 만들어본 듯하다

그때마다 그렇잖아도 바쁘고 일 많은데
꿈꾸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질책과
비웃음을 듣곤 했지만
뭐 사는 게 별거 있는가
이제 와 무슨 권력이나 부나 명성 얻을 것도 없고
뒤늦게 철든 이들 따라 무슨 욕심차리는 것도 추해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네

-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일부
 
그가 제시하는 투쟁 방법이 다른 이에게 '꿈꾸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로선 '혁명이 늪에 빠진 시대에 예술이 앞장서기' 위한 문화실천적 대안이자 새로운 혁명의 길을 여는 시작의 발걸음이다. 혁명의 연장이며 예술과 꿈의 실현이기에 그의 꿈은 헛된 꿈이 결코 아니다.

그의 시집은 서가에 가지런히 꽂힌 장식용 책과는 결이 다르다. 시인을 자처하는 대부분 시인들의 시집은 고작 지인들에게 읽힐 뿐이다. 문학을 자기 위안 삼는 이들과 자부심의 원천으로 삼는 이의 시는 독자에게 기억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천수만의 민중이 모인 집회장 현장에서 육성으로 듣는 송경동 시인의 시는 그 울림이 오래 가슴에 남는다. 그는 시의 지평을 단순한 문학의 경계를 넘어 삶의 전 영역과 역사로 확장시켰다.

뛰어난 시인의 시는 몇몇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테지만 송경동 시인이 현장에서 온몸으로 써낸 시는 용산 참사 현장을 기억하는 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용균을 떠올리는 한, 세월호를 잊지 않는 한, 36년 투쟁 끝에 하루 만에 복직과 퇴직을 함께 한 한진중공업 김진숙, 백기완 선생과 이애주 춤꾼과 물대포로 쓰러져 간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는 한, 삶과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한 잊지 않고 기억될 것이라 확신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의 도서관에 소중한 흔적으로 자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소곳한 문장 하나 되어
천천히 걸어나오는 저물녘 도서관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말하는 거구나
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얌전히 닫힌 입

애써 밑줄도 쳐보지만
대출받은 책처럼 정해진 기한까지
성실히 읽고 깨끗이 반납한 뒤
조용히 돌아서는 일이 삶과 다름없음을

나만 외로웠던 건 아니었다는 위안
혼자 걸어 들어갔었는데
나올 땐 왠지 혼자인 것 같지 않은
도서관

- <삶이라는 도서관> 전문
   
투쟁의 거리에서 문장이 시가 되어 걸어 나오는 시인을 가진 시대는 축복이다. 시인이 '삶의 도서관'으로 혼자 걸어 들어갔다가 돌아서 나오는 길이 외롭지 않은 까닭은 같은 시대, 같은 삶의 현장을 살아내는 수많은 민중들이 그가 밑줄 긋고 문장으로 엮어 들려주는 시를 뼈에 새기며 공감하기 때문이리라. 시대의 아픔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그의 창작 활동이 언제까지고 외롭고 쓸쓸하지 않기를 바란다.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송경동 (지은이), 창비(2022)


태그:#송경동 시인,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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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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