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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명 vs. 1.617명

2022년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놀라운 바람이 일어났다. 7년 동안 소수노조의 지위에서 차별과 탄압을 받았던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가 과반수노조의 지위를 확보하는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복수노조 상황에서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이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었던 기업노조를 탈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은 금속노조를 선택했다. 노조 규모는 뒤바뀌어 한국타이어지회 조합원은 2412명, 기업노조는 1617명이 되었다. 오랜 세월 현장을 민주화하겠다는 열망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노동자들의 활동으로 큰 성과를 이뤄냈다.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는 2014년 11월 27일 민주노조의 열망을 가지고 창립총회를 통해서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과 금산공장은 한국노총 고무산업연맹의 한국타이어노동조합(기업노조)이 52년 동안 존재한 곳이었다. 기존의 기업노조는 위원장을 간선제 방식으로 선출하고, 임·단협을 위원장이 직권조인 할 정도로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심지어 대의원 선거에는 회사가 대놓고 개입할 정도로 노동조합이 꼭두각시 노릇을 했음에도 철옹성처럼 견고했다.

수년간 현장에서 노조민주화 활동을 진행했지만, 현장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의 통제는 더욱 심해졌다. 한편 2006년부터 2007년까지 15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했다. 한국타이어 현장은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서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골병이 들어도 치료받을 권리와 현장 개선 요구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상황이 이랬기 때문에 지회 설립을 준비하던 노동자들은 금속노조가 설립되면 현장노동자들이 바로 금속노조로 가입을 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공장 안에서 간부들이 가입서를 받기 위한 선전전을 해도 회사 관리자와 반장들이 떼로 나와서 간부들을 끌고 나갈 정도로 참담했다.

이에 한국타이어지회는 현실을 인정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의 돌파구를 찾았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문제를 제기하고 산재로 치료받을 권리를 찾는 활동이었다. 47명으로 시작한 한국타이어지회는 대전공장과 금산공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4조3교대 근무로 인해서 안정적인 조합 활동을 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러나 현장을 조직하기 위해서 6명의 노동자들이 현장노안팀을 구성하고 교육과 회의를 통해서 한국타이어 현실을 드러내고 현장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산재인정투쟁과 노동부 감독

한국타이어지회는 2015년부터 공상과 산재은폐가 일상이었던 공장에서 재해자를 조직하고, 산재인정 싸움을 통해서 한국타이어의 현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자회견, 산재은폐 고발 등을 통해 재해를 드러냈고, 산재인정 노동자 수가 늘어나면서 한국타이어는 산재다발 사업장이 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부의 정기감독이 시작되었다. 그 이전까지 한국타이어는 노동부에 보고된 재해율이 낮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자율안전대상 사업장이었다.

한편으로는 산재인정 투쟁을 하면서 지회는 근로복지공단 현장조사에 참여를 보장받는 투쟁을 하였다. 이는 기존 기업노조 활동과 다른 새로운 모습을 현장노동자들에 보여주어 현장의 공신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재해자를 주체로 세우면서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도록 하였다. 고용노동부의 정기감독이 진행되면 한국타이어지회는 감독 대응 활동을 하였고, 현장노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현장 개선 활동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산재인정 투쟁이 쌓이면서 올해 고용노동부가 고시로 발표한 추정의 원칙 확대 적용 대상에서 한국타이어 대부분의 공정과 다수의 상병이 대상으로 포함이 되는 성과를 만들었다.

중대재해와 작업중지권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으로 작업중지권 쟁취 투쟁을 논의했다. 문재인 정부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책 속에서 작업중지와 관련된 노동부 행정지침이 만들어지던 2017년, 금산공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에 지회는 해당 중대재해 개입과 투쟁을 통해서 전국에서 최초로 전면 작업중지를 18일간 이어지게 하였다. 다만 회사와 교섭대표노조의 반대로 특별근로감독에 지회는 참여가 배제되었다. 그럼에도 지회는 특별근로감독 이후에 회사의 개선대책에 대한 이행점검을 노동부에 요구하면서 노사정 TFT(고용노동부 대전노동청, 안전보건공단, 한국타이어, 고무노조, 금속노조) 구성을 통해서 개선대책에 대한 감시활동을 해왔다.

2020년 한국타이어지회는 6년 동안 소수 노조로서의 활동으로 인하여 간부와 활동가들이 지쳐가고 있었다. 해당 시기 고용노동부 정기감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전공장에서 협착사고가 발생했다. 재해자는 혼수상태에 있다, 뇌사 판정을 받았다. 이에 지회는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와 함께 상황실을 구성하고 해당 사고를 중대재해로 규정하고 대책 활동을 진행하면서 조직을 다시 정비해갔다. 고용노동부 대전청은 사망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중대재해로 규정할 수 없다며 지회의 특별근로감독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지회의 끈질긴 투쟁 끝에 사회적 압박을 받은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결정하였다. 지회는 바로 특별근로감독대응팀을 구성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이끌어가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만들었다. 또 이 투쟁을 통해서 소수노조인 상황에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준하는 기구를 설치하기로 회사와 합의를 하였다.

이제 한국타이어지회가 과반수노조 지위를 확보하였고, 대전공장에서는 근로자대표 선거를 통해 명실상부하게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간 고무노조의 민원처리 창구 역할만을 하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노동안전보건은 전문가 아닌 노동자의 몫

올해 지회는 한국타이어의 산재예방계획 수립,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교육 등 알권리 확보, 중대재해 대책, 노동강도 완화를 비롯한 적정인력에 대한 논의를 진척해야 한다. 또한 지난해 시작한 직업성 암 환자 찾기 사업을 통해서 직업성 암 산재 승인 사례를 넓혀가는 활동 역시 지속할 것이다.

많은 노동조합에서 노동안전보건의 문제는 전문적이라는 인식이 있어 어려워하고 기피하는 경우가 있다. 임금인상이나 복지의 하위 영역으로 치부하며 담당자의 몫으로 넘기는 경우도 있다. 이 두 경향은 결국 노동안전보건활동과 운동이 조직의 활동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걸림돌이 되게 한다.

어용노조와 민주노조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임금인상은 노동과정에 대한 결과를 가지고 사측과 교섭과 투쟁을 통해서 만드는 것이다. 민주노조는 노동과정의 결과가 제대로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임·단협에 집중한다.

다른 한편에서 노동안전보건의 영역은 생산에 대한 노동자의 자기결정권 싸움이다. 생산을 둘러싼 노동시간, 작업방식, 작업환경, 노동강도에 대해 사측이 정해놓은 규칙과 방식을 노동자가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몸과 건강이 반영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 노동안전보건활동이다. 따라서 담당자나 일부 전문가에게 위임하거나 대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온전히 내게 하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서 전체 노동자들이 한 걸음씩 내딛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직화의 무기로서 노동안전보건활동이 현장에 자리 잡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태진 님은 한노보연 회원으로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안부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노동_안전_보건_활동, #금속_노조, #한국_타이어_지회, #민주_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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