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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앞다리 한 근으로 불고기를 만들었다. 독서실에서 빌려온 요리책 레시피를 참고했다. 저울까지 달아가며 하라는 대로 했지만 기대한 맛은 아니었다. 혹시 몰라 업소에서 쓰던 토치까지 가져와 불맛도 내봤지만, 기분 나쁜 탄내만 났다. 염도는 충분한데 맛이 자꾸 비었다. 간장도 설탕도 충분히 넣었는데.

원인이 뭘까. 레시피보다 설탕을 더 많이 넣었어야 했나 짐작만 할 뿐. 아내는 그럭저럭 괜찮다며 남기지 않고 먹긴 했지만, 원하는 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날은 괜히 찝찝하다. 일단 내가 먹을 때 만족스럽지 않으니까. 매 끼니가 소중한 사람에게는 그 실패가 생각보다 꽤 크게 다가온다.

누구나 요리가 망할 때가 있다. 30년 차 파인 다이닝 셰프도, 20년 차 전업주부도 실패는 한다. 특히 처음 시도하는 메뉴는 반드시 시행착오가 생긴다. 차이가 있다면 식당의 메뉴는 내부적으로 시행착오를 겪기에 손님들은 그 과정을 모른다는 것뿐이다.

모든 음식은 도전과 실패의 결과물
 
믿기 힘들겠지만 마파두부다. 만들고 보니 된장찌개가 되어 있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마파두부다. 만들고 보니 된장찌개가 되어 있었다.
ⓒ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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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는 이 시행착오가 가족들에게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엄마가 생활 정보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시도한 메뉴들이 밥상에 올랐을 때처럼. 분명 늘상 먹던 메뉴들인데도 괜히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분명 평소 먹던 순두부찌개인데 엄마가 TV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뭔가 어색한 맛이 나는 경험 말이다(이건 음식을 만드는 엄마조차도 인정하는 바다). 이는 누구나 겪는 일이다.

익숙하게 해온 음식이어도 예전 조리방식과 차이가 있다면 한 번에 맛을 내기 쉽지 않다. 재료가 바뀌면 자연스레 조미료의 계량도 바뀐다. 이에 맞춰 불 조절, 조리 시간, 재료를 다루는 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레시피란 그만큼 섬세하다. 조리 과정에서 생기는 화학적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처음 시도한 음식은 대부분 과하게 익거나, 또는 덜 익거나, 너무 짜거나, 또는 너무 싱겁다.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거나, 맛이 어딘가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시도부터는 다르다. 첫 번째 시도와는 다르게 음식의 맛이 현격히 달라져 있다. 어떤 경우라도 첫 번째 요리보다도 못한 두 번째 요리는 없다. 같은 실패를 똑같이 반복할 요리사는 없으니까. 결국 새로운 요리는 두 번 이상을 시도해야 완전히 내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란 곧 실패의 과정 그 자체인 셈이다.

당연히 가장 많은 실패는 가정집이 아닌 식당에서 벌어진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는 게 저녁시간 생활 정보 프로그램이다. 저녁시간 맛집을 소개하는 레퍼토리가 늘 그렇듯, 말미에는 그 맛을 내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은 사장님들의 인간승리가 예외없이 나온다.

연매출 20억짜리 닭갈비가 탄생할 때까지 실패한 양념만 드럼통으로 몇 자루가 될 거라는 사장님. 감자탕의 맛을 내기까지 버린 돼지 등뼈만 수천 개가 넘을 거라는 사모님. 당연히 그런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천 번의 실패는 천 번의 발전을 의미하니까.

실패할수록 요리는 맛있다
 
우리가 좋다고 느끼는 모든 결과물에는 같은 실패를 겪기 싫은 누군가의 마음이 스며들어 있다.
 우리가 좋다고 느끼는 모든 결과물에는 같은 실패를 겪기 싫은 누군가의 마음이 스며들어 있다.
ⓒ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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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아니냐고 하겠지만, 사실 이렇게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같은 방식의 실패를 경험하는 건 누구에게나 우울한 일이니까. 우리가 좋다고 느끼는 모든 결과물에는 같은 실패를 겪기 싫은 누군가의 마음이 스며들어 있다. 더 익혀보고, 덜 익혀보고, 넣어도 보고, 빼 보기도 하며 수많은 문제들을 고쳐낸 과정의 총합인 것이다.

사 먹는 음식과 가정식이 차이를 보이는 건 그 지점이다. 맛을 내려고 재료를 한 트럭 버리는 가정집은 없으니까. '와! 사 먹는 맛이다'라는 말이 최고의 칭찬일 수밖에 없는 건 그래서다(해서 '집에서 먹던 그 맛이에요'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에 한 콩나물무침이 그랬다. 다음날 냉장고에서 꺼내보니 콩나물을 무칠 때 보이지 않는 국물이 반찬통에 흥건했다. 한 젓가락 먹으니 수분이 다 빠져 밧줄을 씹는 것 같은 식감이 났다. 양념의 소금기 때문에 콩나물에서 수분이 빠져나간 탓이었다. 순간 좌절. 그래도 이제는 안다. 어떤 메뉴든 다음에 할 때는 더 맛있으리라는 걸.

지금은 콩나물을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삶아 놓는다. 그 다음 콩나물 삶을 물을 식혀둔 뒤, 반찬통에 데친 콩나물을 넣고 보관한다. 먹고 싶을 때 바로바로 무쳐 먹을 수 있도록 방식을 바꾼 것이다. 이렇게 하니 시간이 지나도 아삭한 콩나물을 먹을 수 있었다(그래도 사흘 안에는 다 먹자).

사실 그것 말고도 배운 게 하나 더 있다. 부족한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다는 게 얼마나 큰 고마움인지. 그 자체가 더 나은 음식을 위한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그간 엄마가 새롭게 시도한 그 많은 메뉴들이 별로였던 건 우리가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만드는 사람은 먹어주는 이들을 고맙게 여기고, 먹는 사람은 만드는 이를 생각하며 맛있게 먹어주면 실패는 이내 배움이 된다. 그러니 만든 사람도 먹는 사람도 요리가 망했다고 좌절하지 말자. 다음에 할 때는 더 맛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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