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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말, 이전 직장에서 알게 되어 꾸준히 만남을 이어온 동료 중 한 명이 섬진강학교에서 열리는 '시인과 함께 걷는 섬진강'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섬진강의 자연을 노래한 김용택 시인의 특강도 듣고 함께 걷는다니 얼른 신청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연 속에서 봄기운을 느끼는 것만으로 힐링할 것 같았어요. 소풍 가기 전날 밤의 아이처럼 새벽 6시 40분 출발을 위해 밤새 뒤척였습니다.
 
김용택 시인문학관 회문재
 김용택 시인문학관 회문재
ⓒ 장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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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쯤 지나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김용택 시인의 생가인 회문재(回文齋, 글이 모이는 집)에 들어가니 그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사람이 서로 기대는 게 인문이라며 농촌의 불문율인 도둑질, 거짓말, 막말을 못 하는 마을 공동체의 삶을 설명했습니다. 회문재 옆의 서재와 오백 년 동안 마을을 지킨 느티나무도 알려줬습니다. 
 
오동나무
 오동나무
ⓒ 장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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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착하기 전날 소나기가 와서 봄꽃이 졌다는데요. 다행히 산속의 오동나무와 자개 나무는 보랏빛으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게 봄꽃이라는데요. 오동나무꽃은 가장 늦게 피는 봄꽃이랍니다.

가구 제작을 위한 나무로만 알았고 꽃이 피는지는 몰랐습니다. 보라색으로 펴서 하얀색으로 지는 꽃을 직박구리가 따먹는다네요. 꽃 안에 벌이 있어서 그렇답니다. 자개 나무꽃 역시 늦게 피는데 꽃이 피면 꾀꼬리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꾀꼬리가 부르는 노래를 받아 시를 쓰는 시인의 삶이 부러웠습니다. 

회문재가 있는 진메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 3.9km에 이르는 섬진강 자전거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강에서 원앙과 왜가리를 함께 보고 수달, 다슬기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팽나무의 고풍스러운 자태도 느꼈습니다. 생각보다 가까이서 김용택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편하게 질문도 주고받았습니다.
 
자건거길에서 바라본 섬진강
 자건거길에서 바라본 섬진강
ⓒ 장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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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폭이 좁아 이게 무슨 개천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섬진 개천'이라고 답하는 등 유머 감각 넘치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정감있게 다가왔어요. 근래 들어 가장 많이 웃었습니다. 75세인 그가 젊게 사는 비결은 유머 감각이 아닐까 싶어요. 개구쟁이 같은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 모릅니다. 
 
임실 김용택 시인문학관 앞에서 김용택 시인
 임실 김용택 시인문학관 앞에서 김용택 시인
ⓒ 장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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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출연했던 사실을 의외로 모르는 분들이 많더군요. 전 어떻게 그의 얼굴을 알았는지 영화를 봤을 때 대번에 알아차리고 흐뭇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매일 저녁에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광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까지 나왔겠죠?

영화감독을 제외하고 영화를 가장 많이 본 사람 중 하나일 거라고 자부하던데요.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포털을 보며 각종 정보를 살펴보는 데 그중 하나가 새로 나온 영화 소개랍니다. 넷플릭스와 영화관 중 어디를 이용할지 그때 판단한다고 해요. 

섬진강에서 태어나 38년 동안 선생님으로 부임하며 섬진강을 오갔는데 아직도 매일 섬진강 주변을 산책하고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해 질 녘에는 아내와 함께 천천히 산책한다는데요. 자연 속에서 부부가 책을 읽고 글 쓰며 담소를 나누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서재에서는 마을 사람들과 시를 쓴다는데요. 시 수업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여쭈었습니다. 각자 시를 써 와서 나누기만 할 뿐 수업도 합평도 없답니다. 그야말로 시가 좋아 즐기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 그 과정에서 원고는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김용택 시인은 책을 읽는 삶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는 살아있는 동안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시인과 함께 웃고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3시간이 흘러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랜 친구와 만났다 헤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다정하게 손을 흔들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섬진강 주변 산의 푸르른 나무와 강에 비친 유화 같은 연둣빛 나무, 보라색 봄꽃, 무엇보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삶의 정수를 나누어준 시인 덕분에 왕복 6시간의 고된 여행길이 동네 산책길처럼 가벼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일과삶 브런치, 블로그와 뉴스레터에 동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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