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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절, 가끔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와 요리를 해 주었다. 자취 경험이 있는 터라 완전한 '요알못(요리를 잘 알지 못하는)'은 아니었기에 뭘 만들든 그럭저럭 먹을 만하게 내놓을 자신은 있었다. 실제로 그랬다. 

처음엔 간단한 파스타나 볶음밥을 만들었다. 여자친구로부터 괜찮은 반응이 나오자 시도는 점점 더 과감해졌다. 코코넛 밀크 베이스의 치킨 카레나 분짜처럼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집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요리의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반응이 좋았다.

정말로 맛있는 건지 맛있게 먹어주는 건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어쨌거나 기뻤다. 맛있게 먹어주는 애인이 있다는 사실도 기뻤지만, 혹시라도 여자친구와 같은 집에 살게 될 때 밥 차리기를 여성에게 강요하는 남자는 아니라는 안도감을 준 것 같아서 내심 좋았다.

하지만 기쁨에는 꼭 대가가 따랐다. 놀러 온 여자친구가 돌아간 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엄마는 주방 상태를 보시고 꼭 한 소리를 하셨다. 

"벽에 이 기름때 이거 뭐야! 이 접시는 왜 또 식탁에 있고. 냄비 뚜껑은 왜 또 여기 있어. 해 먹었으면 제대로 치워야지! 하이고!"   

주방 정리는 안전한 요리를 위한 행위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진짜다). 사고는 바로 이럴 때 난다.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진짜다). 사고는 바로 이럴 때 난다.
ⓒ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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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누군가의 밥을 차리는 입장이 아닌 이상 요리는 생색의 도구로서 유용하다. 특히 연애 시절 요리는 다른 취미들에 비해 많은 이점이 있다. 남성성과는 대비되는 매력을 어필하기도 쉽고, 스스로가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에도 좋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취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이후의 정리까지가 요리의 완성이라는 걸 쉽게 잊는다는 것이다. 연애 시절 자신의 요리 실력을 뽐내며 가정적인 남자임을 어필하던 이들이 남편 타이틀을 달자 슬금슬금 주방에서 멀어지는 이유기도 하다.

본래 요리란 곧 청소와 정리다. 요리를 하면 당연히 청소와 정리를 생각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아예 요리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아내들 입장에선 맛없는 밥을 만드는 것보다 싫은 게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일이다.

특히 정리. 쓰고 난 물건은 반드시 제자리에 두자. 언제? 요리를 진행하는 공정마다. 이렇게 말하면 당연히 '좀 있다가 몰아서 치우면 되지 않나?', '각자 일하는 스타일이 저마다 다를 수도 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일하는 스타일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무엇을 하든 각자 더 생산적인 방식을 택하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습관을 들여야 하는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나 또한 처음에는 요리를 하는 공정마다 모든 물건을 원위치에 가져다 놓는 직원들의 모습이 강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방이 난리가 난다는 사실을 아는 데에는 단 며칠이면 충분했다.

직원들 옆에서 보조를 맞추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주문이 한꺼번에 몰렸다. 주방 정비를 하던 오후 4시쯤이었다. 하필 또 판을 벌여놓고 파를 썰고 있던 때였다. 주문이 우르르 들어오자 사모님과 직원들은 순간 약속이나 한 듯 칼이랑 도마를 씻어서 제자리에 놓은 뒤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순간 생각했다. '그냥 한켠에 밀어놓고 하면 안 되나? 그 시간에 메뉴 하나 더 만들겠네' 싶었는데 뒤를 도는 순간 손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들리는 와장창 소리. 그릇을 꺼내려 움직이는데 미처 정리 못한 웍을 쳐 떨어뜨린 것이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저 도마를 안 치웠으면 다른 누군가가 다쳤겠구나.

주방에서 안전사고는 바로 그럴 때 난다. 급하게 휙 뒤돌다가 뭘 건드려서 사달이 나는 시나리오. 뻔하지만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원래 있던 자리에 물건이 정리돼 있다면 그런 일은 애초에 벌어지지 않는다. 정리 자체가 안전을 위한 행위인 셈이다. 주방은 효율적인 동선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공간이므로 기본적으로 협소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불도 있고, 칼도 있고, 겹겹이 쌓아놓은 그릇들도 있다. 정리를 제대로 안 하다 다른 조리도구나 물건들을 건드려 떨어뜨릴 수 있다. 요리를 소재로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서 주인공 알프레도 링귀니가 사수 콜레뜨에게 정리정돈 때문에 잔소리를 듣는 건 그 때문이다.

이 원칙은 가정집 주방에서도 유효하다. 크게 와닿지 않는다고? 정리 안 된 난잡한 주방에 불쑥 아이가 들어왔다고 생각해보자. 그 공간에서 아이가 팔을 뻗거나 뒤 돌 때 주변에 쌓아둔 물건들이 있다면? 생각조차 하기 싫다.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고 확률을 줄이려면 주변의 지형지물이 예측 가능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프라이팬 잡기 전에 치우고 닦을 생각부터
 
환풍기 철망. 닦기 귀찮다고 차일피일 미뤘다간 피눈물이 날 수 있다.
 환풍기 철망. 닦기 귀찮다고 차일피일 미뤘다간 피눈물이 날 수 있다.
ⓒ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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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가 물리적 안전을 위한 행위라면, 청소는 화학적 안전을 위한 행위다. 단순히 싱크대를 청결히 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주기적으로 환풍기와 주변 벽면을 닦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볶음요리나 고기 굽기를 즐기는 가정이라면 특히나 필요한 일이다. 업소들의 경우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날을 잡고 환풍기를 닦는다. 쇠고기를 굽는 수제 햄버거집이나 볶음요리가 기본인 중식당은 매일 환풍기를 닦기도 한다.      

특히 환풍기 청소는 난이도가 꽤 높다.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고개와 팔만 쳐들고 솔질을 해야 한다. 가끔 기름 찌꺼기나 세제 녹인 물이 눈에 들어갈 때도 있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눈에는 기름찌꺼기가 들어가고 그런 난리가 없다. 여름에는 뜨거운 공기 때문에 온몸에서 땀이 줄줄 난다. 청소하는 내내 욕이 절로 나온다.

다행히 가정 환풍기는 크기도 작고 철망을 분리해서 닦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욕을 하며 솔질을 할 필요까진 없다. 어쨌거나 가정집 환풍기도 기름때는 낀다(생각보다 많이). 수월한 청소를 원한다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닦아줘야 탈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기름 찌꺼기가 뭉쳐서 닦기가 더 곤란해진다. 그때는 구시렁구시렁 욕을 하며 환풍기를 청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게 끝이 아니다. 주방에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사각지대들이 존재한다. 주방과 조리도구에만 신경을 쓰는 탓에 선반과 찬장에 먼지가 가라앉는 건 꿈에도 모르고 살 때가 많다. 여기도 주기적으로 닦아줘야 먼지 묻은 밥을 먹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이것도 환풍기를 닦는 일만큼이나 귀찮고 까다롭다. 

또 있다. 벌레가 생기지 않게 주기적으로 수채 구멍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고 개수대와 조리도구를 수시로 소독해야 한다. 특히 날채소를 만지고 요리할 때에는 고무장갑 안쪽을 반드시 소독해줘야 혹시 모를 식중독을 막을 수 있다(여기야말로 세균이 번식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샐러드, 김밥 등의 요리를 할 때는 반드시 고무장갑 안쪽을 소독해주자. 재료가 멀쩡한데 배탈이 났다면? 대개 범인은 둘 중 하나다. 소독 안한 도마. 그리고 고무장갑.
 샐러드, 김밥 등의 요리를 할 때는 반드시 고무장갑 안쪽을 소독해주자. 재료가 멀쩡한데 배탈이 났다면? 대개 범인은 둘 중 하나다. 소독 안한 도마. 그리고 고무장갑.
ⓒ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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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업소에서는 기본적으로 하는 일이다. 늘 하는 얘기지만 업소의 주방과 가정의 주방은 본질적으로 같다. 공장이냐 가내 수공업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일들을 규칙적으로 해줘야 주방이 온전히 돌아갈 수 있다. 비로소 요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의 주방이 되는 것이다.

남편들이 이벤트로 요리를 하는 경우 대부분은 음식을 만들어 놓은 뒤의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조금 더 한다고 해봐야 설거지를 하는 정도다. 아내들이 크게 감동하지 않는 건 그래서다. 요리만 하고 맛있다는 칭찬만 받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즐거움 뒤엔 의무가 따르는 게 집안일이다.

정리와 청소 그리고 요리는 한 몸이다. 주방 일을 가사로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했다면 프라이팬 잡기 전에 치우고 닦을 생각부터 하자. 식구들의 안전이 걸린 일이다. 재료를 다듬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는 일은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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