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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기자말]
나는 혼자 놀기 귀신이다. 혼자 책 보고 영화 보고 기사 읽고 멍 때리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세상엔 내 관심을 받고자 차례를 기다리는 주제들이 널려 있어서 시간을 배분하며 돌봐주기 빠듯하다.

그 와중에 틈틈이 어제 있었던 일도 돌아봐야 하고, 십 년 전 일도 떠올려주고, 지키지 못할 계획들을 잔뜩 짜고, 하늘과 나무를 보며 공상도 해야 된다. 나도 언젠간 할 일을 다 끝내고 심심해 보고 싶은데, 내 머릿속이 팟캐스트고 넷플릭스라서 가능할까 모르겠다.

20대에는 사교적인 성격이 되려고 노력했다. 교수님께 "승원이는 다 좋은데 좀 더 밝았으면 좋겠어"란 말을 들은 뒤로, 아침마다 거울 보며 웃는 연습을 하고 하루에 두세 건씩 약속을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교수님이 정말로 "승원이는 밝지"라고 말씀하시는 거다. 뿌듯하고 기뻤다.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그런데 주기적으로 현타가 왔다. 나는 사교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사람들의 기대치에 끌려 다니고 있었다. 왜 꼭 밝아야 되지? 따뜻하고 편안한 어둠도 매력 있지 않나? '힘들어서 그렇게는 못 되겠으니 이런 나라도 받아들여줘'라는 마음이었다.

성격 개조에도 한계가 있다. 7년간 내향성과 외향성을 연구한 수전 케인은 책 <콰이어트>에서 이것을 '고무줄'에 비유했다. 우리 성격은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라는 거다. 나는 항상 무리하게 늘어나서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고반응성 아이들
 
 
왜 난 사람을 안 좋아할까. 이런 마음이 비인간적인 것 같아 숨기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은 모호한 구석이 있다. 어떤 사람이 좋아도 그와의 만남이나 관계 맺기는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 내가 딱 그랬다.

내향인과 외향인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외부 자극의 정도가 다르다. 자극을 잘 받는 편도체(뇌 변연계의 일부. 동기, 학습, 감정 관련 정보를 처리함)를 타고난 사람들이 있는데, 신경계의 이런 민감도가 '잘 알아차리는 속성'을 만든다.

이에 따라 내향인은 차이에 민감하며 복잡한 정서를 갖게 되고, 긍정적 경험과 부정적 경험 모두에서 강한 영향을 받는다(다만, 우울이 지속되면 전두엽 기능이 떨어져 민감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 불편한 경우 치료가 필요하다).

이렇게 '고반응성'을 타고난 아이들은 기질에 우울과 불안 등의 위험요소가 있지만 다정하며 협조적이고 정의로운 경향이 있다. '쉽게 시들 수 있지만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강하고 근사하게 자라는 난초'와도 같다(데이비드 도브스가 <애틀랜틱>에 실린 글에서 제시한 '난초 가설').

내향인과 외향인이 잘 섞여 있을 때 팀의 업무 효율이 가장 높았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으니, 내향인의 사회적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건 선입견이다.
 
“자신의 스위트 스폿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을 지치게 하는 일을 그만두고 새롭고 만족스러운 일을 시작할 힘이 있다.” 수전 케인은 최적으로 자극되는 수준을 ‘스위트 스폿’이라 부르며, 자신이 이 지점을 찾고 있음을 이해하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수다로 기분을 푸는 게 좋은지, 집에서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는 게 좋은지 말이다.
▲ 최적의 자극 찾기 “자신의 스위트 스폿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을 지치게 하는 일을 그만두고 새롭고 만족스러운 일을 시작할 힘이 있다.” 수전 케인은 최적으로 자극되는 수준을 ‘스위트 스폿’이라 부르며, 자신이 이 지점을 찾고 있음을 이해하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수다로 기분을 푸는 게 좋은지, 집에서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는 게 좋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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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다'란 말이 칭찬으로 쓰일 때 사교성과 외향성을 암시하는 게 씁쓸하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긍정적 태도는 필요하지만, 사회 전반에서 활달한 성격을 권하는 건 개인의 기질을 무시하고 이상적인 성격 유형을 결정짓는 일면도 있다. 사는 방식에 정답이 있을 리 없고, 나는 시들어 있던 나를 이제라도 잘 키워내고 싶다. 강하고 근사한 난초로.

대인기피와 내향성 사이

'스몰톡(smalltalk)'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땐 이렇게 생각했다. 그게 '스몰'이라고요? 체감상 그건 'XL-talk'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하지만 만남에 대한 부담감이 하고 싶은 일에 걸림돌이 된다고 느낄 때는 좀 편안해지고 싶었다. 관계를 벗어나 살아갈 순 없으니까.

대화가 즐거울 때도 많지만, 드는 품이 크다. 우선은 ADHD 문제다. 약을 안 먹었을 때의 의사소통 과정은 이렇다. 머리는 기름때 낀 듯 안 돌고 말은 툭툭 끊어져 들리는데, 딴 생각과 주변 소음이 훅훅 끼어든다. 움직이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와중에 청각 신호를 붙잡아 여러 선택지를 두고 의미를 추측하는데, 거기 필요한 기억이 자꾸 흐려진다. 가까스로 내 입에서 나올 말을 검열하며 맥락에 적절한 반응을 골라낸다.

상대의 대화 진행이 유독 빠르거나 화법이 생략적일 땐, 전력으로 뛰던 뇌가 공중곡예를 시도한다. 이렇게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대화는 마치 혀에 랩을 씌우고 음식 맛을 보는 것처럼 무감각하다.

이게 기본값이라면 '돌부리에 걸리는 느낌'들은 따로 있다. 보통 30분 정도면 에너지가 고갈되지만 쉬자고 하거나 자리를 털고 일어설 강단이 없다. 그 외 장소, 이동, 음식 등 건강 때문에 제한되는 자잘한 선택들을 공유하다 보면 미안해지고,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게 설명하는 게 쉽지가 않다. 내가 관심 갖는 주제들은 사람들을 당황시켰는데 그런 얘기를 피하다 보니 나에 대해 할 말이 없어졌고, 내 감정을 외면한 채 떠들다 오면 더 고립된 느낌이었다. 

요즘은 미안해할 기력이 사라져서 내 상태를 조금씩 전달하게 됐다. 까다로워보여도 별 수 없다. 누가 여행이나 장시간 모임을 권하면 조심스레 사정을 설명하고, 대화 중 갑자기 일어나 움직이거나 머리를 식혀야 할 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입을 뗀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알기 위해 몸과 마음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나를 존중해준 사람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존중은 이것뿐이다. 내 마음과 상황을 신중하고 진실하게 전하는 것.

소통의 조건
 
지인들이 ‘무리하지 마’라고 말해줄 때 제일 안심되고 고맙다. 관계에 너무 많은 걸림돌을 가진 것 같아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내가 미완성 상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마다 수용 가능한 자극의 한계는 다르고, 행복의 조건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표현할 수 있으면 된다.
▲ 강요 없는 이어짐 지인들이 ‘무리하지 마’라고 말해줄 때 제일 안심되고 고맙다. 관계에 너무 많은 걸림돌을 가진 것 같아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내가 미완성 상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마다 수용 가능한 자극의 한계는 다르고, 행복의 조건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표현할 수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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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감당 못 할 급발진을 자주 하는데, 그중 하나는 작년에 2시간짜리 일반인 인터뷰를 흔쾌히 수락해 버린 일이다. 얼떨결이었다. 시민기자로서 인터뷰어가 됐을 때도 고전한 기억들이 생생하건만. 

그래, 나한텐 나를 드러내는 연습이 필요해. 미리 받은 질문지를 보며 몇 번이나 대답을 연습했다. 그런데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니 질문이 거의 다 즉흥적이었다. 속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거기에 휩쓸려갔다. 아오, 결국 치명적인 말실수를 세 개나 하고 돌아와서는, 수정을 요청하니, 전체를 취소하니, 하며 일주일을 끙끙 앓았다.

그래도 해본 게 어딘가. 나는 심심함은 잘 몰랐지만, 늘 공허했다. 누군가와 감정과 생각을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사 한 발 나아가려다 두 발 물러서더라도, 그것 자체가 어딘가로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일원으로 산다는 건 '치고 빠짐'의 연속이 아닐까. 자극 속으로 들어갔다가 안전지대로 돌아오길 반복하는 일. 사회성의 전진과 뒤처짐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내 둘레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넘나들 수 있다면 그걸로 되는 거다.

그래서 느슨한 연대를 좋아한다. 관계의 형식에 얽매이면 자신을 드러내기가 더 어렵다. '나'로 있을 수 없으면서 '우리'를 요구받을 때, 우리는 같이 있어서 더 외로워지고, 소통보다 고립을 택하게 된다.

2년 전부터는 집에서 화상 앱으로 모임에 참여했다. 주 1회 있는 명상 모임, 달마다 하는 시민기자 교육과 환경활동가 모임 등이었다. 이것도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 용기가 필요했지만, 같은 이상을 추구한다는 점에 집중하면 내 마음의 문제가 조금 작아보였다. 

강의 앱과 습관 만들기 앱에서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글쓰기 플랫폼, 심리학 동영상 채널, ADHD 커뮤니티에서 댓글로 위로와 조언도 나눈다. 평생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던 마음을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의 공감으로 치유하는 경험은 신기하고 뭉클했다.

요즘은 종종 안부를 나누고 문화행사에 같이 가는 ADHD 지인들도 생겼다. 서로의 기복을 대강 이해하기에, 잠수도 거절도 무던하게 받아들이며 흘러가는 대로 흐르는 사이다.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언제나 본격적일 필요는 없다. 나는 여러 집단에서 느슨하게 교류하며 관계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줄었다. 한 집단에서 유대감과 공감을 다 채우려는 욕구를 내려놓은 거다.

소통에 필요한 조건은 하나다. 다 이해할 수 없을 걸 알지만 그래도 이해에 가까워져 보고 싶은 마음. 가까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라도 이 마음을 잊기 쉽다. 그러니 어떤 모습, 어떤 거리이면 어떤가. 나는 여기 이렇게, 당신은 거기 그렇게 살고 있으면 됐지. 당신의 매력적인 어둠을 멀리서도 알아볼 사람은 반드시 있다.

덧붙이는 글 | * 브런치에도 연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adhdworker)
* 다음 화는 'ADHD인이 주변을 돌본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내향인 설명 부분 참고 도서:
- 수전 케인, <콰이어트>, 알에이치코리아.
- 전홍진,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글항아리.

* 추천 자료:
- 오카다 다카시,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인간관계가 귀찮은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동양북스.
- 말 못하는 예민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말하는 방법 (박재연 소장님) https://www.youtube.com/watch?v=W_Ev1agULKg
- 나의 가치를 지키며 상대방과 거리를 두는 방법 (박재연 소장님) https://www.youtube.com/watch?v=JKL4pfYBZtM


태그:#성인ADHD, #내향성, #사회공포, #대인기피, #느슨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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