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7 07:50최종 업데이트 22.04.2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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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사무소 소재지인 연주1리 배바우마을에 온 제비 4월 8일에 처음 온 제비들이 상점 처마 밑에 모여 있다 ⓒ 최수경


"거 참 제비가 오면 사흘 있다 아버지 제삿날이여."
"제비 멍때리기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어요."


충북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도덕리·종미리 일대 마을은 매년 제비가 찾아와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운다. 특히 안남면사무소가 있는 신작로에 제비 둥지가 가장 많다. 슈퍼, 식당, 다방, 이발소뿐만 아니라, 우체국이 있을 땐 우체국 마크 아래에도 제비 둥지가 있었다.
 

둥지 속의 새끼 제비들 장소를 가리지 않는 배바우마을 상점 처마 아래에 둥지의 모습 ⓒ 최수경

 
매년 제비를 맞는 철물점 사장님은 제비가 오는 걸 보고 제삿날이 가까워졌음을 안다. 제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주민은 제비가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멍 하니 바라보면 힐링이 된다고 했다. 자세히 관찰하니 안남면사무소가 있는 건물에도 제비 둥지가 많다. 마치 제비가 안남면의 상징이 되고 싶은 것처럼.
 

우체국의 상징인 제비 로고 아래 둥지를 지은 제비 안남우체국이 면사무소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우체국과 면사무소 상호 옆에 제비둥지를 지었다 ⓒ 최수경

 
제비는 오래 전부터 안남면의 상징이었다. 제비가 마을을 처음 찾은 때를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던 새라 그것의 존재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농업의 방식이 바뀌면서 제비는 우리 곁에서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다. 최근 기후변화 영향 또는 친환경농업의 확대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제비의 출몰이 보고되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는 물론이고 농촌 어디에서도 제비 보기 어렵다.  
 

제비 둥지를 구경하는 사람들 제비 둥지를 보거나 제비의 새끼 키우기를 관찰하는 것은 즐거운 탐조이다 ⓒ 최수경

  
그러나 이 마을은 40년 전 수질보호를 위한 규제지역이 되어 자연스럽게 친환경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봄이 되면 예나 지금이나 제비가 온다.
 

안남면 금강 주변 풍경 대청호 광역상수원을 보호하고자, 안남면 일대 수변구역은 대부분 친환경농사를 주로 하고 있다 ⓒ 최수경

 
제비가 매년 찾아오는 마을

올해는 4월 8일에 제비가 왔다. 이미 사용했던 둥지를 재사용하거나 새로 짓기도 한다. 둥지 재료는 인근 농지의 흙과 잡풀이다. 숲이나 하천가에서 서식하는 새들의 둥지에는 비닐과 플라스틱 노끈이 다수 섞여 있지만 제비집은 오로지 천연재질로만 짓는다.
  

금세 자란 새끼들 둥지가 작을 정도로 새끼가 자라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 최수경

 
알은 한 배에서 4~5개 낳는다. 둥지가 있는 곳이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처마라서 그 모습을 가까이 관찰할 수 있다. 제비가 사람과 가까운 곳에 둥지를 짓는 이유는 뱀이나 천적으로부터 둥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제비가 주인의 얼굴을 기억한다는 말도 있는데, 실제 이 마을 식당이 장소를 조금 옮겼는데도 여전히 그 식당으로 따라와 둥지를 지어, 주인은 그 말이 사실이라 믿고 있다.
 

마을 식당 처마 밑의 제비 둥지들 주인장의 뭍생명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 최수경


제비는 날아다니며 사냥을 하기 때문에 곤충이 많은 지역을 먹이 터로 한다. 제비가 친환경농업과 연관이 있는 이유다. 날이 흐리면 제비들이 신작로를 낮게 날아다닌다. 이 때 읍내의 차들과 쏜살같이 나는 제비가 충돌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제비는 달리는 차바퀴 속으로 더 빠르게 지나가는 묘기를 부린다.
  

배바우마을을 날아다니는 제비들 자동차와 사람들, 제비가 마을 중심부를 가로지르면 혼잡하다 ⓒ 김준희

 
최근 옥천군 안남면 일대가 환경부에서 지정한 국가생태관광지역이 되었다. 생태관광은 생태계가 우수하고 자연경관이 수려한 지역을 대상으로 환경보전과 지역주민의 복지향상을 고려해 만든 여행이다. 그간 대청호 수변구역이라 규제 중심으로 자연이 보존되었는데, 이를 현명하게 이용하여 지역을 활성화하고 경제적 자립도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금강과 안남천 합류점 수몰로 인해 대부분 농토가 잠긴 가운데, 대청호 수위에 영향을 받는 지역이다 ⓒ 최수경

 
생태관광 방문자가 매력을 느끼는 자원은 생물자원과 그 서식지, 생태계 경관자원과 깨끗한 공기, 물이다. 제비는 귀소, 친환경, 보은, 친숙, 빠름 등 우리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생물자원이다. 안남면 주민들은 오랫동안 마을을 찾고 있는 제비를 보호하고 개체수를 늘리자고 뜻을 같이 했다. 더 많은 제비들을 마을로 불러 모으려면 친환경농사를 더 열심히 확대해야 한다.
  

거꾸로 된 한반도 지형 등주봉 경관과 잘 보존된 자연, 깨끗한 공기와 물 등 생태관광 자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충족한 옥천군 안남면 일대 ⓒ 최수경

 
제비로 하나된 주민들

도시를 벗어난 사람들이 마을 제비둥지에서 새끼를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즐겁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주민들의 마음도 엿볼 수 있다. 제비 둥지를 통해 공동체의 힘을 발견한다.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의 돌탑 옥천군 금강변에는 선돌과 고인돌, 돌탑 문화가 보존 전승되고 있다. ⓒ 최수경

 
마을에 소재한 안남초등학교 학생들도 "제비프로젝트"를 통해, 옥천형 생태관광에 함께하고 있다. 환경교육을 통해 제비의 생태, 친환경농업과 생태관광, 공동체와 생명윤리, 지속가능발전과 기후변화 등을 마주한다. 교육과 모니터링에는 학교 안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교가 속해 있는 지역차원까지 참여한다.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복을 받았듯 제비가 가져다 줄 마을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안남면의 특산물인 안남옥수수와 친환경 토양에서 자란 감자가 익어갈 때쯤이면, 생태관광 방문객들은 둥지가 좁을 정도로 큰 새끼들과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기 위해 더 분주하게 날아다닐 어미제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민들은 한결 같이 일할 사람이 없어 마을이 소멸될지 모를 걱정을 안고 있다. 친환경농사도 힘에 부쳐 점점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 아는가. 제비가 가져다 줄 박씨가 마을이 지속가능한 삶을 가져다주는 박씨가 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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