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핏줄, 직업, 외모 등은 획일화된 기준으로 평가 당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상속에서는 지금도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을 전제로 한 많은 '차별'들이 무의식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4월 21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써클하우스>에서는 '차별하는 다수 vs 유난 떠는 소수'라는 주제로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불편한 시선을 감수해야하는 MZ세대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폴란드의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동조실험'을 통하여 집단의견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소신을 지킬 수 있는지를 알아봤다. 이에 기반하여 출연자들은 사전에 모의하여 이승기를 속이는 몰래카메라를 진행했다. 왼쪽에 하나의 선을 그리고, 오른쪽에는 각각 길이가 다른 3개의 보기를 배치하여 왼쪽과 길이가 같은 선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내는 문제였다.
 
이승기는 정답인 B를 골랐지만, 출연자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정답이 A라고 우기며 이승기에게 의아하다는 반응으로 몰아갔다.이승기는 잠시 당황했지만 결국 끝까지 B가 정답이라는 소신을 지켰다. 실제 애쉬의 동조실험에서는 집단의견에 휩쓸려 피실험자의 75%가 다수에 동조하는 오답을 선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승기도 "만일 회사나 조직처럼 마냥 편하지 않은 집단이나 관계에서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저도 집단의견을 따라갔을 수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오은영은 "동조현상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다수의 의견에 따르지 않으면 혼자 고립될 것 같기에 모두가 YES할 때, 혼자 NO를 외치며 소신을 지키기 힘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심청이가 겪어야 했던 인종차별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 SBS

 
이날의 주제는 '차별하는 다수 vs 유난떠는 소수, 이 구역의 별난 사람들'이었다. 혼혈 모델 심청이, 여자 목수 뚝딱이, 남자 간호사 싹싹이, 탈모인 디자이너 햇님이 등 역대 가장 개성 넘치는 게스트들이 등장했다.
 
유교걸 심청이(배유진)는 한국인 엄마와 나이지리아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 국적의 21살 모델이었다. 심청이는 모친의 성을 따라 흥해 배씨로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받은 엄연한 한국인이었다.
 
심청이는 외적인 이미지와 달리 어머니의 영향으로 보수적이고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유교걸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심청이는 어릴때부터 남들과 다른 피부색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던 순간들을 고백했다. '깜둥이', '흑누나' 등등 어릴 때부터 차별적인 발언이나 대우를 겪은 일이 수없이 많다고. 눈에 띄는 외모 때문에 사소한 잘못도 부풀려지거나 오해받는 상황이 많았다고 고백하며 남들보다 튀지 않기 위하여 외모와 개성을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해야 했던 안타까운 과거를 회상했다.
 
부당한 차별을 겪었을 때 맞서 싸우는 것과 무시하는 것, 어느 쪽이 나을까. 노홍철은 "마음은 싸우고 싶은데 결과적으로 본인이 더 힘들어진다"며 현실의 어려움을 언급했고, 리정은 "차별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문제니까 일일이 공들여 대응할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리정은 미국 유학 시절 현지에서 유일한 동양인으로 친구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야 했던 자신의 당황스러운 경험을 언급하며 심청이의 고민에 공감했다.
 
하지만 마냥 참고 무시하면 오히려 만만하게 생각하기도 쉽다. 심청이는 놀림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한 명이 시작하면 여러 명으로 불어나는 악순환을 거론하며 "무시보다는 설명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잘 알아듣게 말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털어놨다. 한가인은 "말을 해야 나중에 또다른 사람에게 같은 피해가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심청이의 의견에 동의했다.
 
오은영은 "참교육에 나서지 않으면 마치 불의에 굴한 듯한 패배감이 드는 것"이라고 분석했고, 심청이도 "거기서 왜 그말을 못했지 하는 후회가 든다"고 인정했다. 오은영은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마틴 루터 킹의 '어느 한쪽도 혼자 걸어갈 수는 없다'는 어록을 인용하여 "인종차별은 뿌리깊은 문제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개인이 이를 바꾸려 홀로 싸우다보면 개인이 상처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며 개인적으로 맞서지 못했다고 심청이가 패배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위로했다.
 
이승기는 '단일민족'을 강조하면서 정작 한국인이 해외에서 당하는 인종차별에는 민감한 우리 안의 모순을 지적했다. 오은영도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적 편견의 뿌리에 단일민족 개념이 들어가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은영은 "심청이에게 무례한 누군가를 그 자리에서 참교육하는 것보다는, 그 상황을 본인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오은영은 가까운 사람들과 꾸준한 정서적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가인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딸로 인하여 어머니가 속으로 더 걱정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홍철은 '말한다고 해결이 될까?', '부모님께 상처가 되지 않을까?'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심청이가 어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오은영은 "소통이란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건강한 소통은 좋은 마음만이 아니라 힘든 마음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소통'과 '해결'은 다른 것이다. '말해봤자 해결이 안 될 텐데'라는 생각도 우리가 소통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은영은 "어머니를 사랑하기에 홀로 버티는 마음은 알겠지만, 가까운 사람과의 정서적 소통을 미루다보면 마음의 짐은 더 무거워질 수 있다. 당장은 어머니가 속상할수 있지만 내 아이가 의논조차 안 한다면 그게 더 가슴아픈 일"이라고 당부했다. 오은영은 "심청이는 누가 봐도 토종 한국인"이라고 칭찬했고 심청이는 "또 한번 인정받았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의 진정성 남에게 증명할 필요 없어"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 SBS

 
뚝딱이는 18살부터 일을 시작하여 어느덧 4년차 목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호주에서 유학하다가 자퇴 후 현장에 뛰어든 뚝딱이는 "대학은 배우고 싶은 게 있어야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목표없이 대학을 가서 남들처럼 사는 것이 나다운 건가라는 고민이 있었다"며 자신만의 뚜렷한 소신을 밝혔다.
 
건설 현장의 특성상 모든 것은 남자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뚝딱이도 현장에서 여자가 혼자다 보니 숙소에서 출퇴근, 화장실까지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남자 간호사인 싹싹이도 여초 현상이 강한 직업 특성상 유일한 남자간호사로서 겪어야 했던 불편들을 공유하며 뚝딱이에 공감했다.
 
현실적으로 '차별이 아닌 차이'를 느낀 순간도 있었다. 뚝딱이는 "인정할 건 인정해야되더라. 체력이나 힘에서 (남자 동료들보다) 뒤지는 건 사실이다. 대신 그래서 체력관리도 열심히 하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나만의 장점을 찾기 위하여 노력했다"고 밝혔다.
 
뚝딱이는 건설 관련 일을 '노가다'로 비하하는 직업적 편견에서부터, 어린 여자라서 겪어야 했던 나이와 성별에 대한 선입견을 고민으로 밝혔다. 자신의 꿈을 관심받기위한 콘셉트질이라고 의심하는 이들 때문에 '콘셉트충'이라는 비난까지 듣기도 했다고. 오은영은 "콘셉트라는 말이 진정성을 의심받는 느낌이 들어서 더 싫었던 것"이라고 분석하여 뚝딱이는 격하게 공감했다.
 
뚝딱이는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증명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이야기 때문에 가족까지 비난하는 악플러들도 있었다고. "사람도 일도 무서워졌다. 1년 동안 무급으로 일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도 안 믿어준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꿈을 꿔도 되는 걸까"라며 눈물을 흘렸다.
 
오은영은 "진정성은 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지, 남에게 증명할 필요는 없다. 나의 진정성을 왜 남에게 증명해야 하나"는 해답을 제시했다. 뚝딱이는 금세 표정이 환해지며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이다. 수많은 편견을 들을 때마다 내가 틀린 걸까봐 걱정했는데 '괜찮아, 내가 나를 인정하면 된거야'라고 다짐했는데 이런 말을 저에게 해준 사람이 정말 없었다"며 기뻐했다. 뚝딱이는 "가장 하고 싶은 게 나의 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는 목표를 드러냈다.
 
남초현장에 뚝딱이가 있었다면 여초현장에는 싹싹이가 있었다. 승무원에서 간호사까지 여성이 대부분인 현장에서 청일점으로 활약해왔던 싹싹이는 여초 집단에서 적응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했던 일대기를 설명했다. 대화에는 무조건 참여하고 여자 동료들이 좋아할 만한 최신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신상품 정보를 미리 확인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고. 싹싹이는 누가 눈치를 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하여 "루틴이 됐다. 제가 이렇게 해야 여기서 살아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답했다.
 
싹싹이는 남자 간호사라서 받게되는 편견을 고백했다. 소아과 간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아이가 울 때마다 여자 간호사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받거나 심지어 멱살까지 잡히기도 했다고. '남자라서 여자보다 섬세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은 남자 간호사들이 겪어야 하는 숙명이었다. 연애를 할 때도 여초 집단에서 근무하는 직업 때문에 '여자가 많을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난처한 경우가 많다고. 여자 동료와 친구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특성상 연애 때문에 친구들과 거리를 두다보면 연애가 잘못되었을 때 사랑도 대인관계도 다 무너지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런데 오은영은 "여초집단이 아니었어도 동료들과의 만남을 그렇게 신경썼을까"라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싹싹이가 "절대 안 쓴다"라고 답하자, 오은영은 "그럼 동료를 여자로 보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싹싹이를 당황하게 했다.
 
오은영은 "의료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본인이 더 많이 느껴야 한다. 동료는 여자가 아닌 동료일 뿐이라고 당당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한다.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간호사들은 남녀를 떠나 모두 태양같은 존재"라고 당부했다. 싹싹이는 "제 이야기를 좀더 잘 설명할 수 있어야겠다"며 반성했다.
 
탈모인의 고충 토로한 햇님이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SBS <써클하우스>의 한 장면. ⓒ SBS

 
'대머리 대통령'으로 불린다는 햇님이는 탈모인의 고충을 토로했다. 굼벵이먹기, 치약바르기 등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도 많이 해봤고 결국은 모발이식까지 시도했다고. 하지만 햇님이는 "시술전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대머리"라는 웃픈 고백으로 폭소를 자아냈다. 햇님이는 본인의 경험담을 토대로 이목구비가 각기 다른 탈모인들의 헤어라인 디자인을 고안하는 '대머리 디자이너'의 길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햇님이는 출연자들의 머리 상태를 분석하며 이승기-노홍철-리정은 탈모 가능성이 없다는 의견을 내놨고, 사자머리 숱으로 유명한 오은영에게는 "유토피아이자 오아시스"라고 극찬했다. 공교롭게도 올백머리를 한 한가인에게는 "관리가 필요해보인다. 위로 올라가는 머리의 흐름이..."라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며 한가인을 충격에 빠뜨렸다.
 
외가와 친가쪽이 모두 탈모 유전이라는 햇님이는 "탈모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할 만큼 스트레스가 컸음을 고백했다. 20대 때부터 찾아온 탈모로 인하여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결혼을 포기하겠다는 마음까지 가졌다고, 공짜를 좋아하거나 정력이 뛰어나고, 대중매체에서 우스꽝스럽게 희화화되는 등, 대머리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선입견도 햇님이를 힘들게 했다.
 
햇님이는 "사람은 내면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내가 어떻게 보여지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나. 다른 이의 눈빛을 읽어봐야 비로소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라며 대머리로서 겪어야 하는 고충을 솔직하게 밝혔다.
 
오은영은 "2020년 기준으로 탈모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가 23만 명, 탈모 인구 추정치는 1000만이다. 개인적으로 저희 남편도 대머리다. 하지만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탈모로 겪는 고민은 공감하지만, 이것이 내가 받는 영향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햇님이가 보여준 매력은 머리카락의 숫자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탈모란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 몰두하여 많은 것을 미리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당부했다.
 
햇님이는 "탈모 이야기를 몇십년간 하지 못하고 살아간 분들이 많다. 남들을 대변하여 이런 이야기를 깊이있게 나눌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어쩌면 나 스스로 편견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닌지 내면을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였다"는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오은영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차별적 언어들을 자제할 것을 제안했다. 살색은 살구색, 결손가정은 한부모 가정, 유모차는 유아차, 벙어리장갑은 손모아 장갑, 사투리 고쳐는 표준어를 바꿔 등으로 정정해야 한다는 것. 오랫동안 쌓여온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변화는 아주 작은 것부터 천천히 한걸음씩 진행되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써클하우스 탈모 인종차별 오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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