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앵커>에서 메인 뉴스 진행자 정세라를 연기한 배우 천우희.

영화 <앵커>에서 메인 뉴스 진행자 정세라를 연기한 배우 천우희.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신인 감독과 실력파 배우의 만남이었다. 메인뉴스 앵커 자리를 지키고 싶은 한 여성의 욕망과 몰락, 그리고 자기 인식을 배우 천우희가 표현해냈고, 그 바탕엔 전문직 여성의 심리를 모녀 관계에 빗대 파헤친 정지연 감독이 있었다. 영화 <앵커> 개봉을 앞둔 홍보 기간 중 천우희를 온라인으로 만났다.
 
그간 신입사원, 혹은 막내 작가 등을 연기한 바 있는 천우희는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도 있었지만 경력이 쌓여가면서 한 번쯤 제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시기였다"며 출연 계기부터 솔직하게 전했다. 그의 말대로 <앵커>에서 그가 맡은 정세라는 메인뉴스의 전달자로써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치열하게 분투해 온 인물이다. 우연히 한 모녀의 살인 후 자살 사건을 취재하다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는 과정을 온몸으로 연기했다.
 
비틀어진 모녀 관계
 
천우희는 "아나운서 출신 앵커로 발음과 발성도 중요했지만, 온도 차가 큰 정세라의 심리 변화를 표현하는 게 더 어렵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영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가 해리성정체장애인 만큼 관련 자료 또한 감독과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
 
"관객분들이 납득하려면 연기하는 인물이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박증을 내보이는 거지만 특수한 정신병처럼 보이길 원치 않았다. 세라가 품고 있는 야망, 성취욕이 외부적으로 드러나야 연민받을 가능성도 커질 거라 생각해 섬세하게 표현하려 했다.
 
감독님이 이 작품을 굉장히 오래 준비하셨다. 수집한 자료와 책을 제게 빌려주셔서 저도 읽었고 영상 자료도 많이 봤다. 해리성정체장애가 새롭게 다가오더라. 전 다른 인격을 연기하는 거지만 자료 속 그분들은 안에 다른 인격이 존재하는 거잖나. 많이 관찰하면서도 결코 그걸 제 연기에 대입하려 하진 않았다. 후반부에 따라오는 반전에 오류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철저히 세라로 연기하려 했다."

 
 영화 <앵커> 관련 이미지.

영화 <앵커> 관련 이미지.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에서 이혜영 배우가 연기한 세라의 엄마가 중요한 축이다. 세라의 강박증은 바로 엄마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처럼 묘사되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딸의 행동을 제약하고 이런저런 요구와 강요를 반복하는 엄마는 영화 후반부 작은 반전을 이끄는 동력이 된다.
 
"직접 선배님과 마주하는 신이 많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지점이 생기더라. 선배님과 같은 의상을 입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제가 시나리오를 읽으며 상상했던 이미지 그대로를 선배님께서 준비해 오셨다. 뭔가 통하는 기분이었다. 카메라 밖에서 선배님의 모습을 감탄하며 지켜봤다. 외적으론 카리스마가 넘치시는데 직접 뵈니 소녀 같으셨다. 제가 일찌감치 팬이어서 서로 잘 몰랐을 때도 선배님의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선배님도 제 작품을 보고 오셨더라. 너무 감사했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모녀 관계나 엄마를 표현할 때 너무 단면적 모습만 보이거나 보고 싶은 모습만 주로 표현된 것 같다. 현실은 더 다양한 사례가 있잖나. 모녀 관계라는 게 애증이다. 마냥 헌신일 수 없지.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게 아닌데 다들 엄마의 모습을 유지하길 바란다. 거기서 충돌이 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앵커>는 극적이면서도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은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앵커>에서 메인 뉴스 진행자 정세라를 연기한 배우 천우희.

영화 <앵커>에서 메인 뉴스 진행자 정세라를 연기한 배우 천우희.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더 다양한 여성 서사 나오길 기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전문직 여성은 남성보다 여러 면에서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결혼과 출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만큼 수명도 짧다는 게 통계적으로 드러나곤 한다. 천우희는 "아마도 일하는 여성에 대해 관객분들이 공감하실 게 많을 것 같다"며 "꼭 여성과 남성을 나눌 필요 없이, 어떤 강박과 욕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본다"고 생각을 밝혔다.
 
"여성 서사가 적은 현실적인 문제를 잘 알고 있다. 굳이 젠더 이슈로 분류해서 여성 서사를 늘려야 한다는 건 아니다. 결국 완성도가 중요하니까. 다만 여성 서사를 세밀하게 써주실 분이 더 나오길 바라는 것이다. 갈증은 항상 있다. 여성 서사에서 제 연기를 완성도 높게 하는 것도 중요한데, 흥행성도 어느 정도 볼 수밖에 없다. 그래야 그 다음 작품이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나올 여성 서사 작품을 응원하고 있다."
 
정작 영화 속 세라와 달리 천우희는 경쟁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결국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게 중요하다"며 "배우들끼리 경쟁도, 기 싸움도 싫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드러냈다.
 
"연기는 공동작업이라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다. 예전의 내 연기보다 발전하고 싶으니 그런 생각은 한다. 하지만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려고 누군가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싶지 않다. 작품은 시기가 맞아떨어져야 내게 온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틀에 구애받지 않으려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싫어하거든. 작은 영화나 예술 영화도 꾸준히 하고 싶다. 제가 좀 반항심이 있거든(웃음). 배우적 욕심을 따지면 그만큼 보폭을 넓게 가져가고 싶다. 스스로 한계를 두고 싶지 않다. 뭐가 잘 맞고 안 맞는다고 하기 보단 다 수용하고 표현하는 배우이고 싶다."

 
 
   
천우희 앵커 이혜영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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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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