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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개봉한 영화 <지구>의 한 장면
 2007년 개봉한 영화 <지구>의 한 장면
ⓒ 엠플러스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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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도.

국제사회가 정한 지구 기온 상승의 마지노선이다. 일교차가 큰 온대지방에선 피부에 와 닫지 않는 수치이지만 지난 80만 년 동안 가장 빠른 기온 변화는 1000년에 1도였다. 그런데 최근 100여 년 동안 1도 올랐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유지해야 파국을 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제 0.5도 남았다.

0.73%p.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24만 7077표를 더 얻어 승리했다. 0.5도가 인류의 존폐 여부를 가르듯 이제 박빙의 승부가 향후 5년간 대한민국호의 정책 항로를 결정한다. 전 세계 화두인 기후위기 대응도 그중 하나다. 특히 국제 정치와 경제 등 전방위적으로 파급효과가 큰 사안이다. 세계 추세를 거스르면 우리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위험의 징후] "RE100이 뭐죠?"

"기후위기보다 우리나라 정치가 더 위험합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후보자 토론회 때처럼 말로만 내지르는 게 아니라, 이제는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길 실제 수단을 갖고 있어요. 진짜 큰일 났습니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가 내비친 위기 의식이다. 지난 대선 후보자 토론회 때 "RE100이 뭐냐?"라고 되물었던 윤 당선자, 또 '탈원전 정책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이라는 그의 공약도 위험천만한 징후라는 것이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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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교체 실감…'文정부 정조준' 원전수사 급물살
- 文정부 탈원전 지우는 인수위…망가진 원전 생태계 회복 '급선무'
 
선거가 끝나자마자 연일 포털을 장식하는 이러한 원전 관련 언론 보도는 문재인 정부 때 숨죽였던 원전 찬성론자들이 쏘아 올리는 축포로 볼 수 있다. 대신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 국제적으로 '기후 깡패'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대한민국 상공에는 지구온난화의 우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500회 강연] 지구가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

지난 3월 24일 기후변화 햇빛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기후위기 전문서점인 문화공간 '길담'(서울 종로구 옥인동)에서 그를 만났다. 조 교수는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지난해 말 ㈔세상과함께는 '기후위기 전도사'로 불리는 그를 제2회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의 교육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다.

조 교수를 만나기 전, 지난 2019년에 펴낸 책 <파란하늘 빨간지구>(도서출판 동아시아)부터 읽었다. 인류 탐욕의 결과물에 대한 과학적 사실이 빼곡한 이 책을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빨간 지구에 대한 명쾌하고도 과학적인 원인과 분석, 대안뿐만 아니라 지구와 인류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도 담겼다.

그래서였다. 그부터 알고 싶었다. 4년 전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은퇴한 뒤 그는 열정적으로 기후 위기를 전파하고 다녔다. <파란하늘 빨간지구>를 낸 뒤부터 본격적으로 '환경 운동가'로 나서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려온 조 교수는 지금까지 500회 이상 강연을 했다. 왜일까?

그는 "그동안 인간이 개발과 각종 에너지원 채취 등을 통해 지구를 무분별하게 수탈해왔지만 이제는 기상이변 등을 통해 지구가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라면서 "과학이 이런 상황을 끝장낼 수 있는 사회 변혁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후 과학자의 사명감으로 읽혔다.    

[기후위기와 정치] 좋은 사람과 좋은 세상

기후위기와 정치의 관계부터 물었다.

"일회용품 안 쓰고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면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이죠. 그런데 그것만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없어요. 정부가 일회용품 안 쓰자고 계몽을 하는데, 대중교통 이용하는 게 10배 이상 효과가 큽니다. 설사 모든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정부가 석탄발전소를 한 개 지으면 무력한 존재가 됩니다. 정치를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드는 시스템으로 바꿔야죠."

그가 예로 든 것은 유럽 주요 도시의 교통 분담률이다. 자전거가 50%에 달하는 곳도 있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왜 자전거 타냐'는 내용의 설문조사를 했는데 '환경 보호' '기후위기 대응' 등에 동그라미를 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면서 "대부분 '빠르고 편리하다'는 항목을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 도로가 완벽하게 구축되면 천천히 가도 1시간에 10km는 갈 수 있다"면서 "개인이 선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정치"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른다

그렇다면 '윤석열식 정치'는 어떨까? 지난 대선 후보자 토론회 때 RE100을 모른다고 해서 실망했다는 반응도 많았다.

"저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느꼈어요. 기후 의제는 유엔 차원에서 국제적으로 정해진 겁니다. '재생에너지로 물건을 안 만들면 그걸 수입하지 않을 거야!' 이게 RE100입니다. '탄소로 물건을 만들면 거기에 관세를 때릴 거야!' 이게 탄소 국경세입니다. 우리는 에너지와 식량을 수입하고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죠. 이런 국제 흐름을 거스르면 생존 자체가 고통일 겁니다."

조 교수는 윤 당선자가 지난해 11월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하향 조정할 뜻을 밝혀 논란이 됐던 것도 상기시켰다. 그는 "우리나라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목표조차 부족하다고 국제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라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산업계에 인심 쓰듯 말하면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4일 오후 윤석열 당선자가 외부 일정을 소화하고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무실에 들어오고 있다.
 4일 오후 윤석열 당선자가 외부 일정을 소화하고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무실에 들어오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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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는 윤 당선자가 내걸었던 '탈원정 정책 폐기, 원전 최강국 건설' 공약에 대해서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구별 못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2020년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원 중 핵 발전이 4.3%를 차지했는데 수력을 제외한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5.7%"라면서 "핵발전업계가 재생에너지는 보조적 에너지원이라고 주장을 해왔는데, 이제는 핵 발전을 추월했고 해마다 그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다시 예를 들었다.

"일본은 터키와 영국에서 원전을 수주했고 5조 원을 투자한 상태에서 포기했어요. 5조 원을 날렸는데, 왜 그랬을까요? 원전 건설에 10조 원 이상 들어가고 30년 이상 돌려야 이윤이 납니다. 그때가 되면 재생에너지가 지배적인 세상이겠죠. 누가 원전을 돌릴까요? 30년 동안 10조 원을 그냥 묶어두는 것, 이건 자본 시스템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는 "일본 도시바가 미국의 핵발전 회사인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는데, 회사 전체가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라면서 "우리나라에서 핵발전소를 짓는다면 세금, 즉 공적자금을 투입하자는 것인데, 자본 시장의 시스템에 내맡기면 쫄딱 망한다는 것을 자신들도 알기에 하라고 해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SMR] 강남 한복판에 지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해외에서는 원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의 나라들은 핵폭탄 보유국가이기에 국제 정치적으로 핵 헤게모니를 쥐려면 핵발전소를 유지해야만 한다"라면서 "지금 우리는 핵폭탄을 제조할 수조차 없는 나라"라고 말했다. 

최근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SMR)도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빌 게이츠 등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탄소중립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기술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개발이 추진됐는데, 윤석열 당선자는 이를 주요 공약으로 채택해 원자력업계는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소형모듈원전(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소형모듈원전(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 두산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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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큰 원전을 지은 것은 효율 때문입니다. SMR이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하는데, 작게 만들면 비용이 더 들겠죠. 기존 원전의 4분의 1 전력을 생산하는데, 이걸 천 개, 만 개 만들어야 싼 겁니다. 10개, 20개 지어서는 답이 안 나오죠. 또 우리가 안정성을 확보한 기술이 있나요? 언제 설계하고, 테스트하고... 10년 내에 결판을 내야 할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자꾸 엉뚱한 이야기합니다."

그는 "빌 게이츠의 취지는 송전망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을 줄여 효율을 최대화하려면 전력을 쓰는 그 지역에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강남 한복판, 서울의 구마다 SMR을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라며 "그럼에도 윤 당선자측은 최근 충남 당진에 짓는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대한민국에서 지역에 사는 게 죄인가"라고 반문했다.

[원전 최강국] 우리에겐 비극의 길

그에게 '원전 최강국 건설'이라는 윤 당선자의 공약을 한 마디로 평가해 달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비극의 길"이라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지구 위기의 시대에 세계적 프레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에너지뿐만 아니라 경제의 문제이기도 하죠. 이산화탄소 감축량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엄청날 겁니다. 우린 원전으로 막겠다고 할 태세인데, 부지 마련하고 짓는 데만 10년 걸립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40%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은 기후 위기가 아니라 시장 위기를 먼저 맞게 될 겁니다."

그가 지구온도 '0.5도'보다 지금 당장은 '0.73%p'가 더 위험하다고 강조한 이유이다.


[* 기후 위기에 대한 조천호 교수의 '짧은 강연', 2편("지금 히로시마 원폭 1초에 5개씩 터져... 미친 세상 끝내야")으로 이어집니다.]
 
▲ 기후위기? '윤석열 정치'가 더 위험하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특임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를 지난 3월 24일 인터뷰했습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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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조천호, #기후위기, #지구온난화, #윤석열, #세상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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