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재춘언니>를 연출한 이수정 감독.

영화 <재춘언니>를 연출한 이수정 감독. ⓒ 시네마달


노동자들의 유쾌한 투쟁기를 그리겠다며 시작한 촬영이 10년을 훌쩍 넘겼다. 그 결과 우리 사회 노동 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이 된 콜트콜텍 노동자 이야기가 이 감독의 손에서 제법 색다른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게 됐다. 지난 3월 3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재춘언니>의 이수정 감독을 1일 오후 서울 수유너머104에서 만날 수 있었다.
 
2007년 4월, 콜트악기 노동자 부당해고 이후 13년간 이어진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측의 일방적 부당해고, 나아가 자본과 기업 친화적인 법 체계는 물론이고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가늠할 수 있는 사건이다. 2014년 대법원에서 끝내 노동자의 패소를 결정한 후에도 이어진 이들의 투쟁은 그간 김성균 감독의 <기타 이야기> <꿈의 공장> 등을 비롯해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같은 독립예술영화에서 직간접적으로 조명해왔다.
 
끝까지 '즐겁게' 투쟁 

이수정 감독의 <재춘언니>가 특별한 점은 임재춘이라는 한 인물과 콜트콜텍 노동자로 이뤄진 콜밴이라는 밴드 활동을 중심으로 10년 넘는 투쟁기를 관객에게 부드럽게 전달하는 데 있다. 활동가들 사이에서 특유의 수더분함과 친화력 때문에 '언니'라는 호칭이 붙곤 했던 재춘씨는 길고 힘든 투쟁이 좌절의 연속만은 아닌, 연대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문화의 힘을 체감하는 경험이기도 하다는 걸 증명했다.
 
"2009년 어떤 감독과 극영화를 해보자고 얘기하던 때였다. 기타를 만들던 폐공장에서 뮤지션들이 음악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였다. 그 와중에 김성균 감독님의 다큐 <기타 이야기>를 알게 됐다. 그 영화로 콜트콜텍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고, 너무 놀라서 <꿈의 공장>도 봤다. 그러다가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에 연대하는) 희망버스에 타게 됐는데 다큐에 나왔던 임재춘님이 계시더라. 반가워서 인사했다. 마치 아는 사람인 것처럼 그분도 답하시더라.
 
그때만 해도 콜트콜텍 이야기를 영화로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2012년 7월, 한 작가님 초대로 인천 콜트 폐공장에서 열린 전시를 보게 됐다. 안 그래도 폐공장을 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카메라를 들고 갔지. 아무도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공장 자체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재춘 언니> 관련 사진.

다큐멘터리 영화 <재춘 언니> 관련 사진. ⓒ 시네마달


투쟁 초기만 해도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법적 싸움을 불사하며 강경 노선이었다. 그 와중에 대전 콜텍 공장 인원을 중심으로 문화 투쟁이 시작됐고, 이수정 감독 또한 본격적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우주최강콜밴>이라는 초기 제목이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법원 판결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길어봐야 3년으로 생각했던 투쟁 또한 길어지게 됐다. 그 사이 이수정 감독은 영화 제작 지원 사업에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 와중에 임재춘씨가 자신의 노동일기 출판기념회에서 감독에게 적어준 '끝까지 함께 합시다'라는 글귀가 자극제였다고 한다.
 
"계획대로 2014년에 영화를 완성했다면 저도 다른 일을 하며 가끔 그분들을 떠올리곤 했을 것이다. 근데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때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관련 작업에 참여했고, 너무 마음이 아픈 나머지 시를 읽자 싶어 <시 읽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길어졌다. 초조함이 물론 있었지만 내 안에서 숙성되는 느낌이 들더라.

다큐라는 게 짧게 치고 갈 게 있고 긴 호흡이 미덕인 게 있다. 2014년 대법원에서 이분들이 (부당해고 문제 등에 대해) 최종 패소했고, 함께 투쟁하던 장석천 사무장이 현장을 떠났다. 구성을 바꿀 수밖에 없었지. 2020년 초에 새롭게 편집하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임재춘님 시선으로 가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 근데 편집하던 친구가 눈물을 흘리더라. 현장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데, 그 반응이 나오는 걸 보고 이거 되겠다 싶었다."


"상황 나쁠수록 기본을 공부해야"
 
이수정 감독은 결과적으로 임재춘씨의 이야기가 중심이 됐지만 금속노조 콜트, 콜텍 지부장들을 비롯해 여러 노동자들의 이야기 또한 카메라에 담아 왔음을 강조했다. 노동 운동, 투쟁기가 생소한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좀 더 경쾌한 분위기,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택한 것일 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노동자의 현실이 어렵고 절망적인 건 한국뿐 아닌 전 세계가 비슷한 것 같다. 봉준호 감독 <기생충>에 전 세계가 공감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 때 관객분들에게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현실에선 재판에 지고 절망적일지라도, 저항하고 싸우는 한 살아있는 것이다. 고난과 고통을 경험해야 행복도 느낄 수 있듯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노동 운동에 대해 학교 교육이 잘 안 돼서 혐오나 부정적 시선이 있는 편인데 투쟁이라는 게 이상한 사람이 악쓰는 어두운 이야기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 투쟁을 밝고 재밌게 할 수도 있다. 혼자 고립됐을 때가 어둡고 컴컴한 법이지 연대하고 같은 상황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맛난 거 먹고 움직일 때 힘이 커진다. 우리가 서로 보듬고 지켜주면 자본의 폭력성은 저절로 소멸될 것이라 본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같은 철학자도 한 얘기다. 자본주의 폐해 해결은 시골이나 평화로운 외국으로 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 안에서 다른 세계를 만들어야지. 그중 한 방법이 공동체 투쟁일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재춘 언니> 관련 사진.

다큐멘터리 영화 <재춘 언니> 관련 사진. ⓒ 시네마달


한국영화아카데미 4기 출신으로 <미술관 옆 동물원> 등의 상업영화 프로듀서, <우렁각시> <감자 심포니> 같은 독립 극영화 등의 프로듀싱을 맡았던 이수정 감독은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긍정하고 있었다. 상업영화 입문 전까진 한겨레영화제작소 소속으로 민중 영화 운동에 헌신하던 그였다. 현재까지 그가 발표한 여러 다큐는 어쩌면 사회를 영화로 바꿔볼 수 있다는 당시의 믿음이 출발점일 것이다.
 
"극영화 감독 준비를 꾸준히 했었다. 결혼하고 출산하며 제법 긴 경력단절을 겪기도 했다.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더라. 여러 인연으로 극영화 프로듀싱을 했는데 이후엔 혼자 해볼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깔깔깔 희망버스>로 장편 다큐에 데뷔한 셈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발표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도 다큐를 만들다가 극영화를 하듯 저 또한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극영화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인물 혹은 비전문 배우를 데리고 극영화를 해보고 싶다. 아녜스 바르다도 90세까지 다큐와 여러 극영화를 만들었다. 제 롤모델이다(웃음).
 
자본주의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간교해졌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최저임금 철폐, 고용 유연화 얘기가 나왔다. 자본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회귀할 것 같아 바짝 정신 차려야 하는 상황이다. 노동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문재인 정권 때도 결국 자본에게 유리한 사회였는데 대체 노동자를 위한 정부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노동에 대해 더 얘기가 많이 됐으면 한다. 지금 청년들이 힘들어진 걸 두고 정치권에선 자꾸 혐오 정서를 부여해서 관심을 돌린다. 그걸 갈라치기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럴수록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건 형편이 어려운 당시 독일 사람들에게 유대인을 적으로 생각하게 해서였다. 미디어에 끊임 없이 가짜 정보가 떠돌고, 혐오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는데 이럴수록 정치 철학이든, 사회를 판단하게 하는 기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인터뷰 말미 이수정 감독은 지금껏 촬영한 분량을 두고 다른 형태의 영화화 제안이 있다거나 아카이빙 제안이 있으면 적극 협조할 것이란 의지를 드러냈다. 노동 운동사에 남을 다양한 기록이 있는 만큼 그는 "민주노총에서 하든 아카이빙으로 이런 걸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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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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