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 영화 포스터

▲ <메두사> 영화 포스터 ⓒ Coatesgold


어느 날 영국의 작가 모랄(리처드 버튼 분)이 괴한의 습격을 받아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수사를 맡은 형사 브루넬(리노 벤추라 분)은 모랄이 남긴 의문의 메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와 자주 대화를 나누었던 심리학자 존펠드(리 레믹 분)를 알게 된다. 존펠드는 브루넬에게 모랄은 비행기도 추락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염력을 지닌 소유자로 광기에 사로잡혀 온 세상을 위협하는 재난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고 털어놓는다.

1970년대는 '오컬트 영화(초자연적인 사건, 악령, 악마 등을 소재로 다룬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시대다. 1973년 개봉한 <엑소시스트>는 그해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며 오컬트 붐을 일으켰다. 이후 미국의 <오멘>(1976), 이탈리아의 <서스페리아>(1977)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국에서 만든 <메두사>(1978)의 인기도 대단했다. 비록 미국에선 관객을 사로잡는 덴 실패했지만, 영국에선 흥행에 성공했다. 1978년 7월 8일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해 25만 명(서울 기준)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1978년 외화 흥행 1위인 <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1977)가 54만 명이 들었고 우리나라 영화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여자>(1977)를 37만 명이 보았으니 <메두사>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메두사> 1973년 작가 피터 반 그리너웨이가 발표한 동명의 소설(영화의 원제는 <메두사 터치>다)을 원작으로 한다. 각색은 1982년 <간디>로 제5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은 존 브릴리가 맡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 JFK >(1991), < LA 컨피덴셜 >(1997), <버드맨>(2014), <애드 아스트라>(2019) 등을 만든 거물 영화제작자 아논 밀천의 첫 번째 제작 영화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메가폰은 주로 TV에서 활동하던 잭 골드 감독이 잡았다.
 
<메두사> 영화의 한 장면

▲ <메두사> 영화의 한 장면 ⓒ Coatesgold

 
국내 개봉 당시에 수입사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독수리 요새>의 리챠드 버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를 뒤쫓는...<시시리안>의 리노 벤츄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를 이해하는...<오멘>의 리 레믹크"를 홍보 문구로 썼다. 이 표현은 <메두사>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았다. 가공할 힘을 지닌 모랄의 실체를 아는 존펠드가 사건을 조사하는 브루넬에게 진실을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를 보여주는 플래시백(모랄을 만난 여러 사람의 회상)에서 또 플래시백(존펠드와 만난 모랄의 회상)으로 들어가는 형식을 사용하다 보니 여타 오컬트 영화들에 비해 복잡한 편이다. 추리 영화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오멘>과 <캐리>(1976)는 재앙을 일으킬 정도의 가공할 능력을 지닌 자가 주인공으로 앞세워 대히트를 기록했다. 소재만 놓고 본다면 <메두사>는 <오멘>과 <캐리>를 무척 닮았다. 그러나 <메두사>를 소재를 베낀 단순한 아류작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원작 소설이 이들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메두사>만의 개성도 뚜렷하다. <메두사>는 <오멘>(선악), <캐리>(모성, 성장)와 달리 정치, 사회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모랄은 우주 탐험, 원자력 발전소 등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은유한다. 한편으로는 가공할 힘을 손에 넣은 인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악몽의 미래를 모랄을 통해 보여준다. H.G 웰스의 소설 <투명인간>처럼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영화의 원제 <메두사 터치>는 엄청난 능력을 상징하는 '메두사'와 손에 닿는 건 황금으로 바꾸는 '미다스의 손(Midas touch)'를 모두 포함한, 기술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저주일 수 있다는 걸 경고하는 제목인 셈이다.
 
<메두사> 영화의 한 장면

▲ <메두사> 영화의 한 장면 ⓒ Coatesgold

 
1978년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메두사>를 본 관객의 대부분은 배우에 이끌려 선택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만큼 <메두사>의 캐스팅은 면면이 화려하다. 먼저 리처드 버튼은 <나의 사촌 레이첼>(1952), <성의>(1953), <베킷>(1964), <추운 곳에서 온 스파이>(1965),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 <천일의 앤>(1969), <에쿠우스>(1977)로 무려 7차례나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조연상 후보(아카데미는 리처드 버튼에게 한 번도 상을 주지 못한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에 오른 위대한 명배우다.

직전에 <엑소시스트 2>(1977)에 출연했기에 다시금 오컬트 영화에 나오는 걸 꺼렸던 리처드 버튼은 3주 동안만 촬영하는 조건으로 <메두사>의 출연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놀라운 재능으로 모랄에게 악마성과 입체감을 입혀주었다. 특히 영화 속에서 발산하는 리처드 버튼의 강렬한 눈빛은 실로 소름 끼친다.

<오멘>에서 악마 데미안의 어머니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리 레믹 역시 <메두사>도 오컬트 영화라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리 레믹은 존펠드 역할로 영화에 우아한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현금에 손대지 마라>(1953),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 <두 번째 숨결>(1966), <그림자 군단>(1969), <시실리안>(1969)로 유명한 리노 벤추라는 이성의 시각으로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역할을 멋지게 소화한다.

<메두사>가 개봉한 지 어느덧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메두사>는 배우의 연기, 서스펜스, 재난 묘사가 뛰어나고 <오멘>과 <캐리>의 영향 아래 나온 작품들 가운데 가장 잘 만들어진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이젠 제목조차 낯설 정도로 대중에게 잊힌 상황이다. 제대로 된 심리 공포물(여기에 범죄, 공상과학, 재난도 살짝 추가됨)을 찾는 분이라면 <메두사>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확신한다. 만화 <데스노트>와 영화 <언브레이커블>(2000)은 <메두사>의 영향을 분명 받았다. 이유는 궁금하다면? 영화를 보고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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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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