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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씨앗을 모으기 위해서 씨앗을 모은다. 정말 다 심기 위해서인지 이제는 잘 모를 지경이 되었지만, 어쨌든 씨앗을 모아 놓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그리고 누군가 씨앗을 원한다고 하면, 집으로 초대한다. 부담 없이 나눠줄 것이 있다는 것은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준다. 

때로는 이 씨앗이 편지봉투에 담겨서 멀리 날아가기도 한다. 때론 내가 또 이런 씨앗 봉투를 선물 받듯이 말이다. 씨앗을 나누는 마음은 작은 물건을 나누는 마음보다는 생명의 근원을 나누는 기분이어서 그런지 설렘이 늘 함께한다. 그곳에 가서 잘 싹을 틔울지 호기심 가득한 마음까지 함께 실려가는 것이다.

씨앗을 모으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특히 나처럼 깔끔쟁이 남편과 산다면, 미안한 마음을 안고 이렇게 너저분하게 씨앗을 널어놓고 말려야 한다. 덜 마른 상태로 담아놓으면 곰팡이가 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적은 봉투를 옆에 놓고 씨앗을 말려야 나중에 혼동되지 않는다
 이름을 적은 봉투를 옆에 놓고 씨앗을 말려야 나중에 혼동되지 않는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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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참 여러 가지 형태로 나온다. 낙하산을 타고 날아가는 엉겅퀴 종류도 있고, 꼬투리 안에서 여러 개가 쏟아져 나오는 콩주머니 같은 스타일도 있다. 꽃이 진 자리 안쪽에서 금세 까맣게 변하는 분꽃은 세상에서 가장 수집하기 쉬운 씨앗에 속할 것이다.

마당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모이기 시작한 씨앗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야심찬 마음으로 봉지를 직접 만들었다. 비닐봉지에 담아도 되지만, 빛이 차단되는 것이 더 좋고, 숨을 쉴 수 있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집에 있는 갈색 종이백을 잘라서 풀로 붙여서 만들었다. 이면지를 사용해도 좋다.

이면지를 사용한다면, 다음과 같이 만들면 종이 손실을 최대화해서 자를 수 있다. A4지 한 장으로 3개가 나온다. 정확한 사이즈가 필요가 없다면, 그냥 눈대중으로 3등분 한 다음에 다음과 같은 모양으로 잘라도 좋고, 나중에 포켓에 일정하게 담아서 보관하려면 6x9cm가 되도록 만들면 더 좋다. 

씨앗을 잘 보관하기 위한 특급 비법 
 
종이의 손실을 최대로 줄이기 위한 씨앗 봉투 접는 법이다.
 종이의 손실을 최대로 줄이기 위한 씨앗 봉투 접는 법이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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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씨앗이 점점 많아져서 그 숫자가 감당이 되지 않자, 나는 그냥 봉투를 구매하기로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동전 보관용으로 작은 크기의 봉투가 판매되고 있었다. 여기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동전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동전을 보관하느라 이 봉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은데 씨앗을 넣기 딱 좋은 크기였다. 

그러자 봉투는 넉넉해졌는데, 이걸 어디에 보관하느냐가 또 문제였다. 처음에는 긴 바구니에 쭉 세워두면 자리 차지도 안 하고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담아보니, 그 안에서 자꾸 쓰러지기도 하고, 가지런히 서 있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금방 찾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집에 있던 자료들을 바인더에 정리하려고 문구점에 갔는데,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니 포켓형의 속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큰 씨앗 봉투는 반으로 접어서 넣으면 된다.?
 큰 씨앗 봉투는 반으로 접어서 넣으면 된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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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맞을지 모르겠다면서도 한 묶음을 사들고 왔는데, 씨앗봉투를 끼워보니 맞춘 듯이 들어갔다! 나는 신이 나서 종류별로 정리를 해서 끼워 넣었다. 꽃씨와 채소류를 구분해서 넣기 시작했는데, 그보다 세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바인더를 두 개 장만하여, 하나는 꽃씨를 담고, 다른 하나에는 채소의 씨를 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세분화하여, 예를 들어 한 페이지는 전부 잎채소, 다음 페이지는 호박 종류와 파 종류... 이런 식으로 찾기 쉽게 분류를 하였다.

그리고 두 개의 바인더가 혼동되지 않도록, 인터넷에서 예쁜 꽃 사진과 농산품 사진을 찾아서 출력하여 앞에 끼워두었다.
 
꽃 그림과 채소 그림으로 나눠서 담아 놓았다
 꽃 그림과 채소 그림으로 나눠서 담아 놓았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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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씨앗 분류 완료! 이제는 정말 편하게 찾아본다. 남편은 혹시 이걸로 모자라지 않겠느냐고 놀리기도 하지만, 정말 이걸로도 부족해진다면, 아마 그때는 새 집을 구해서 이사를 가야 할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 다 심느냔 말이다!

다 못 심어도 좋다, 나눌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이렇게 이국 땅에서도 한국의 농산품을 키우 먹을 수 있고, 또 씨앗을 서로 나눌 수 있을 만큼 풍성하니 마음이 넉넉해진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같은 글이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태그:#씨앗보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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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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